#자기 밖으로 나가는 감을 잃은 건 아닌지

삶을 대하는 가장 기본적인 태도

by 김상래

핸드폰에 저장되어 있기를 '아름다운 분'. 나보다 연배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항상 웃음 띈 얼굴로 '예의'가 몸에 그대로 흡수된 그분을 처음 만났던 곳은 미술관이었다. ‘예쁘다’, ‘멋있다’라는 말보단 ‘풍겨오는 느낌이 참 아름다운 분이구나’라고 생각했다.


얼마 전, 그분께 이러이러한 자리가 있으니 공고문을 보고 지원을 해보는 게 어떻겠냐는 연락을 받았다. 평소 열정을 가득 품고 무언가를 계속 도전하고 있는 내게 "선생님의 열정을 제가 잘 알기에 연락드려요"

그분은 몇 군데가 있으니 두루 살펴보고 원하는 곳에 지원서를 넣어보라는 거였다. 하려던 분야의 일은 아니었지만, 일부러 생각해서 연락 주신 그 마음이 고마웠다. 느지막이 퇴근한 신랑은, 글을 쓰려고 준비하고 있던 내가 마음이 전혀 없는 것처럼 보인 게 답답했는지 어르듯이 말했다. 평소 운이 좋은 편이니 내 운을 한번 실험해 보라고,


“이거 되면 당신 진짜 운은 타고난 거야. 다들 하려고 지원자들이 넘쳐나는데 한번 해보지 그래?”

“그... 그럴까? 이거 돈도 별로 안되고 10개월 임시직인데...”


지원서 마감일까지는 하루 반나절이 남았다. 알려주신 곳의 리스트들을 살펴보고 한 군데를 정했다. 아이가 잠든 시각에 일어나 실로 오랜만에 자기소개서를 작성했다. 다운로드한 양식에 맞춰 두 장을 넘지 않게 그간 내가 어떤 일을 하고 살았고 앞으로의 포부는 어떠하며 열심히 할 수 있을 것이라는 다짐을 적었다. 내 진실한 마음은 단 한 줄도 들어가 있지 않은 형식적인 자기소개서였다. 필요하다는 서류 몇 개를 더 준비하고 나는 잠이 들었다.


다음날, 신랑은 테이블 위에 올려진 내 서류들을 보더니 ‘파이팅’이라고 아침 인사를 건네고 출근을 했다.

이런 일은 눈앞에서 빨리 헤 치우는 편이 속이 편하다. 달랑달랑 서류를 들고 미술관엘 들어가니 담당자가 나와 서류를 살핀다.


“어, 선생님 주민등록 등본이 안 보이네요? 수원 거주자임이 확인되어야 해요. 그리고 경력 부분은 해당 경력만 인정이 됩니다. 필요한 서류 부분 다시 한번 읽어보셔야 할 것 같아요.”

“아, 네. 그럼 제가 다시 준비해서 가지고 올게요”


발그스름해진 얼굴을 마스크란 것이 절반 이상 가리고 있다는 사실이 다행스러운 시간이었다. 그렇게 차로 15분 거리 집으로 돌아와 주민등록 등본을 뽑고 경력 사항란을 수정하고 해당 증명서를 출력한 뒤 다시 그곳으로 갔다.


“서류는 이렇게 주시면 될 것 같습니다. 서류 합격하시면 문자로 연락이 갈 겁니다. 수고하셨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내키지 않는 일엔 꼭 실수가 있기 마련이다.


며칠 후, ‘1차 서류 전형에 합격하셨습니다. 축하드립니다.’ 합격 문자를 받았다. 그날 오후에 내 운을 실험하는 과정에서 성공함을 알리는 전화를 받으며 나는 없던 마음이 조금씩 생겨났다. 가끔 들여다보던 인터넷 카페를 뒤적였다. 이 일이 얼마나 중요한 일이고 대학원을 졸업하고 준학예사 시험을 보고 또는 학예사 시험을 봐놓고도 경력으로 증명할, 별것 아닌 것 같이 보이는 임시직도 합격이 되지 않아 도대체 어디서 경력을 쌓아야 하냐고 속상함을 털어놓는 젊은 친구들의 글들이 빼곡하게 적힌 것을 확인했다. 내 의지와는 관계없이 그저 합격의 당위성을 찾고자 살피던 시간, 자만심이 스모그처럼 퍼져 올라오는 것을 느꼈다.


일주일 뒤 면접이 있다. 그저 면접 따위, 별 관심 없어 보이는 내게 '면접 준비를 해야 하는 것 아니냐', '자기소개서에 무슨 내용을 썼는지는 기억하고 가야 하는 게 맞지 않겠냐'며 신랑은 나를 여간 답답한 사람으로 생각하며 충고를 아끼지 않았다. 그래도 말끔하게 가야 한다는 생각에 세미 정장 차림의 롱코트를 걸쳤다. 과하지 않은 화장, 조금은 어려 보이도록 신경을 쓰고 발목까지 오는 검정 부츠를 꺼내 신었다. 자기소개서 내용이야 내가 썼으니 기억하고 있고 질문도 뻔하지 싶어 편한 마음으로 그곳을 다시 찾았다.


웬걸?


문을 열고 들어가기 전부터 이건 내가 생각했던 분위기가 아니었다. 대기자들이 띄엄띄엄 의자에 미리 와 앉아 있었고 그 인원은 나를 포함 10명이나 되었다. 달랑 1명 뽑는 자리에 서류 전형을 10명이나 합격을 시키다니 생각지 못한 상황이었다. 경력이 상당할 거라 예감되는, 연배가 있는 3분을 제외하고는 모두 어린 친구들이었다. 기본 면접 복장으로 마지막에 앉아 있는 어린 친구에게 눈이 갔다. 평범한 치마 정장에 굽이 너무 높지 않은 구두, 하나로 말끔하게 묶은 머리, 얌전한 스카프를 두르고 있었다. 평범하지만 면접장에 가장 이상적인 차림의 친구였다. 각자에게 내어주는 서류에 맞게 간단한 신상을 적고 1번부터 면접이 시작되었다. 나는 5번 목걸이를 했다. 앞사람들이 하나둘 나오는 걸 보며 추워서였는지 긴장한 탓이었는지 손이 차가워지기 시작했다. 양손을 최대한 꼭 잡고 풀었다 쥐었다. 그러는 동안 시간이 흘러 내 차례가 되었다. 안면이 있는 몇 분이 있어 모른 척 고개를 숙이고 지나가려는데 기어코 알아채고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선생님 파이팅!” 하는 소리를 외면하지 못했다. 고개를 끄덕거리며 눈웃음을 지어 보이고는 면접장 앞에 있으려니 이게 뭐 하는 건가 싶은 생각이 뇌리를 스쳐 지나갔다.


문을 열고 들어간 면접실. 넓은 공간에 앞에 남자 세 분이 앉아 있었다. 그 앞에 멀찌감치 내 자리가 마련되어 있었다. 자기소개와 소통에 관한 것, 민원이 들어왔을 경우의 대처에 대한 질문에 간단하게 답만을 하고는 앉아 있었다. 무표정의 두 분 심사위원의 “네. 다 끝났습니다” 신호를 듣고 면접실을 나왔다. 서류를 담당하시던 분이 웃으시며 인사치레로 “좋은 결과 있으실 거예요” 하는 소리를 들었다. 주차 처리를 확인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떨어졌구나’를 예감했다. 저녁에 퇴근하고 돌아온 신랑은 이번에도 내가 잘 될 것 같다며 기다려 보자고 했다. 내가 어떤 식으로 이번 일을 대했는지 불합격 메시지를 받고 며칠이 흐른 뒤 답답한 마음에 꺼내 읽던 책에서 깨달음을 얻게 되었다.


예상한 대로 마지막에 앉아 있던 평범한 치마 정장 차림의 친구가 합격했다. 사람 보는 눈은 어쩌면 다 같은 것이 아닐까 싶으면서도 그래서 이런 직종들이 더 보수적이라는 생각이 확실하게 들었다. 이번 일을 통해 내가 얻은 깨달음은 당락에 관한 문제가 아니다. 떨어짐이 속상하고 창피하단 단순한 생각 말고. 어떤 일을 대하는 나의 태도에 대해 옳지 못했단 판단이 들었다.


‘인사’

문을 열고 들어가 의자에 앉기 전에 보통 인사를 하는데 그것을 생략했다. 면접관이 물어오는 질문에 귀찮다는 듯 짧은 대답을 한 건 그다지 마음이 없었다고 치자. 면접이 끝난 시점. 앉아서든 서 서든 인사하는 것을 잊었다.


“안녕하세요. 누구누구입니다.”

“지금까지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런 기본적인 인사를 잊은 것이 시간이 흐른 지금도 참 돼먹지 못한 태도였다는 생각이 든다. 나를 괜찮은 사람으로 보곤 지원해 보라셨던 그 '아름다운 분' 께도 죄송스러운 마음이 두고두고 남는다.


“선생님, 저 면접에서 똑~떨어졌어요. 생각해주셔서 감사했습니다.”

“아깝게 떨어진 것 같아요. 다음에 기회가 또 생기겠죠.”


면접 점수가 가장 낮았다고 해도 할 말이 없는데 위로가 되라며 얹어주신 말씀에 마음이 더 불편했다. 어딘가에 소속되지 않으리라 마음을 먹었지만, 사람과 사람 간에 만남은 계속 있을 터. 이런 식으로 인생을 사는 것은 옳지 못한 일이다. 싫은 것은 하지 말든가, 하게 된다면 최선은 다하고 기본은 꼭 지킬 것을 나에게 약속했다. 남에게도 그렇지만 자신에게 이런 시간은 일부러 잃을 것을 찾는 바보 같은 행동이 되고 말았다. 마음이 있다 한들 어디서든 뭘 하며 살겠냐.


이번 일은 전에 없던 자만심에서(어쩌면 종종 품었을지도 모르는) 일어난 일이었으니 기본은 지키면서 사는 인간부터 되도록 하자. 나는 어쩌면 아이를 키우며 자기 밖으로 나가는 감을 잃은 건 아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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