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개가 가득 깔린 호수. 그린과 옐로의 따뜻함이 아련한 기억처럼 다가오는 그림 한 점. 흐릿한 섬의 잘려나간 부분이 꼭 내 기억같이 느껴진다. 흐릿한 기억은 잘린 섬의 그림자로 잔상처럼 남는다. 멀어진 시간은 진한 블루를 남기지 않는다. 멀리 옅어진 블루와 시선 가까이 있는 그린과 옐로의 경계가 모호해진다. 기억은 그렇게 모호한 경계의 잔상만을 남기는 게 아닐까.
구스타프 클림트 <아터제 호수의 섬> 1901
구스타프 클림트의 그림 중 좋아하는 그림이 두 점 있는데 하나는 ‘여성의 세 시기’라는 그림이고 또 한 점은 ‘아터제 호수의 섬’이다. 그의 수많은 화려한 금박 그림들을 뒤로하고 이 그림을 좋아하는 이유는 화려하지 않지만 오래 두고 봐도 질리지 않는다는 점이다. 볼수록 많은 생각을 불러일으키는 이유기도 하고.
구스타프 클림트 <여성의 세 시기> 1905 / 우리 집에도 한 점
지금은 내 삶의 여백일까? 아니면 무언가 밀어내고 채우는 시기일까?
어쩌면 내게 정말 중요한 순간 인지도 모른다. 꽉꽉 채워진 삶을 살다가 찾아낸 여백의 시간. 선택과 집중의 시간. 나만의 루틴을 만들고 밀어낼 것과 채울 것을 구분하는 시기. 쉬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제대로 무언가를 찾고 있는 시간. 여백인 듯싶지만 채우고 있을 시간. 지금이 내 인생의 중요한 순간이 되기를 나는 오늘도 나를 다독인다. 남들의 시선이 아닌 오롯이 내 시선으로, 내 선택으로 시작한 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