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루아 라우다슈케어 SalouaRaouda Chou

중동 추상 미술의 선구자, 레바논 최초의 추상화가

by 김상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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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6년 레바논 베이루트의 Ain el Mreisa에서 태어난 Choucair는 의사, 변호사, 엔지니어 및 역사가 집안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녀의 아버지 Salim Rawda(1872-1917)는 호주에서 약초를 거래하고 약초의 가치에 대한 원고를 작성하는 국외 거주자였다고해요.


1910년 레바논으로 돌아온 그는 시 낭송을 좋아하는 브루마나 고등학교 학생인 슈케르의 어머니 Zalfa Amin Najjar(1891-1995)를 만나 결혼했어요. 그들에게는 세 자녀가 있었습니다. Anis Rawda(1911-1988)는 사업가이자 베이루트 지방 자치 단체의 일원이었고요. Anissa Rawda Najjar(1913-2016)는 사회 운동가였으며 고 Fouad Najjar와 결혼했습니다. 그리고 막내인 Choucair는 레바논 모더니즘의 가장 저명한 인물 중 한 명이 되었습니다.


Choucair의 아버지는 오스만 군대의 징집으로 다마스쿠스에 있을 때 장티푸스에 걸려 1917년에 사망했으니 일찍부터 미망인인 Choucair의 어머니는 어려운 환경에서 세 자녀를 홀로 키워야 했습니다. Choucair는 어머니에게서 영감을 얻었다고 합니다. 그녀의 어머니는 능숙한 웅변가이자 시인인 것 외에도 Najjar는 다양한 여성 단체에 소속되어 있었고 100세가 되자 Brummana 고등학교에서 메달을 수여받았다고 하니 엄마의 영향의 아무래도 컸겠죠?


Choucair는 중동 추상 미술의 선구자이며 1916년에 태어나 20세기 미술사에서 중요한 인물로 선정되죠. 회화와 드로잉, 건축, 직물, 보석, 다작을 하고 실험적인 조각품을 통해 방문객들은 Choucair가 과학, 수학, 이슬람 예술과 시에 대한 관심을 추구하는 다양한 매체에서 어떻게 작업했는지 볼 수 있죠. 50년에 걸쳐 만들어진 많은 작품은 이전에 레바논 밖에서는 본 적이 없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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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은 처음부터 Choucair의 삶의 일부였으며 그녀는 스스로가 "예술은 타고난 것"이라고 믿었다고 해요. 그녀는 아주 어린 나이에 수많은 수공예품을 제작했습니다. 1924년 그녀가 Ahlia 학교에 등록했을 때 그녀는 많은 학교 포스터를 디자인했으며 교사들의 캐리커처를 제작한 것으로 유명했습니다. 그중 일부는 학교 신문에 실리기도 했다니 그녀는 실제 일찍이 재능을 보였던 예술가네요.


1942년에 Choucair는 Omar Onsi에게 3개월 동안 미술 수업을 들었는데 그녀가 받은 정식 미술교육은 그게 전부였다고 합니다. 예술은 타고난 것이라고 말했던 그녀의 말에 고개가 끄덕여지네요. 나머지는 스스로 배웠다고 합니다. 타고난 천재가 끊임없는 노력을 하면 이렇게 거장이 되는 거겠죠. 존경스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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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oucair의 여행을 많이 다녔다고 하는데 역시 직접 보고 듣고 느꼈던 시간이 그녀에게 훌륭한 작품을 만드는데 많은 영감을 주었겠죠. 1943년, 제2차 세계대전 중 작가는 미술품을 찾기 위해 이집트로 갔지만 격동기의 박물관은 문이 닫혔다고 해요. 그래서 Choucair는 카이로의 거리를 산책하고 모스크를 방문한 그 여행의 경험이 그녀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고 합니다.


그녀는 이슬람 건축과 아랍 예술의 요소들을 결합해 그녀만의 작품들을 만들어냅니다. 회화에서 조각으로 갈수록 정확하고 기하학적인 형태로 작업을 하게 되는데 이는 원의 비율을 기반으로 했다고 하네요.

그녀는 "아랍 예술의 본질은 요점입니다."라는 말을 남기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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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로에서 7개월 동안 머물고 난 후, Choucair는 레바논으로 돌아와 1945년에 베이루트 아메리칸 대학교(AUB) 도서관에서 일하기 시작하면서 동시에 일부 철학 및 역사 과정을 공부했다고 합니다. 그곳에서 그녀는 1946년 당시 AUB의 Art Club 회장인 Moustapha Farroukh를 만나고 매주 그의 미술 수업을 들었습니다. Farroukh는 또한 클럽의 유일한 Art Gazette 호에 Choucair의 그림 중 하나가 걸리고.


1947년 Arab Cultural Gallery에서 그녀의 기하학적 구아슈 드로잉 중 일부를 전시되었다고 해요. 이 전시회는 아랍 최초의 추상 회화 전시회라고 합니다. 그 후, Choucair는 1948년에 다시 레바논을 떠나 사업차 처남 푸아와 함께 파리로 향합니다. 역시 모든 예술은 파리로! 그녀는 포스트 인상파를 넘어 세계 미술계에 대해 많이 알지 못했기 때문에 파리에 가서 힘들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곧 미술관과 박물관을 찾아 파리의 거리를 배회하던 그녀는 그곳에서 처음으로 추상미술을 접하게 됩니다.


1940년대 이후 베이루트 예술계에서 보기 드문 여성의 목소리인 Choucair의 작품은 서양 추상화의 요소와 이슬람 미학을 결합합니다. 이슬람 디자인의 전통에서 끌어온 모듈식 형태, 선 및 곡선의 우아한 사용과 함께 재료에 대한 실험적인 접근이 특징인데요. 제가 파리에 살 때 이슬람 문화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독특한 음악, 문양, 색상, 삶의 방식에 매력을 느꼈던 적이 있어서 살루아 라우다 슈케어 할머니의 작품에 애착이 간다고 해야 할까요?


나무, 금속, 석재 및 유리 섬유로 만든 195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Choucair의 조각과 초기 추상 회화의 광범위한 예와 Self-Portrait 1943 및 Paris-Beirut(중동의 파리) 1948과 같은 주요 구상 작품에 중점을 둡니다.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그녀의 많은 작품이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습니다.


그녀는 파리 국립 미술학교( École Nationale des Beaux Arts)에 등록하게 되는데 3년 반 동안 파리에 머물며 다양한 예술 현장을 목격하고 관찰하게 되죠. 하지만 그녀는 자신만의 방식과 다름을 알고 스튜디오에 들어간 지 3개월 만에 그곳을 떠나게 됩니다.


1950년에 그녀는 파리의 Salon des Réalités Nouvelles에 참가한 최초의 아랍 예술가 중 한 명이었죠. 레바논으로 돌아오기 전, 그녀는 1951년 파리의 Colette Allendy 갤러리에서 첫 전시회를 가졌고, 개인전에는 파리에 있는 동안 제작한 그림 외에도 베이루트에서 원래 전시했던 작품이 포함되었다고 하는데요. 전시회는 베이루트보다 훨씬 성공적이었고 Art and Art d'Aujourd'hui 잡지의 비평가들은 그녀의 작품을 호평하였습니다. Art d'Aujourd'hui 평론가는 Choucair의 대담한 형태를 "석공(stonecutter)"의 형태와 비교했다고 하니 그녀의 장인 정신이 담긴 재능을 알만하죠. 1953년에 그녀는 저널리스트 Youssef Choucair와 결혼했고 그들은 함께 예술가가 된 Hala라는 딸을 낳았습니다.


1959년에는 조각에 집중했고 1962년에 조각은 그녀에게 모든 것이 되었습니다. 1963년 그녀는 베이루트의 공공장소에 석조 조각품을 제작한 공로로 국가 관광 위원회 상을 수상하기도 했습니다. 1974년 레바논 예술가 협회(Lebanese Artists Association)는 베이루트의 국립 관광 협의회(National Council of Tourism)에서 그녀의 작품에 대한 명예 회고전을 후원하기도 했죠. 1985년에 그녀는 아랍 화가 연맹으로부터 감사상을 받기도 합니다. 1988년에는 레바논 정부로부터 메달을 수상하기도 합니다. Saleh Barakat이 조직한 회고전은 2011년 베이루트 전시 센터에서 개최되었습니다. 2013년 Tate Modern은 Choucair의 작품에 대한 첫 번째 국제 회고전을 개최했습니다.


Choucair의 작업은 자연 관찰과 완전히 분리된 아랍 기하학 예술에서 영감을 얻은 아랍 시각 예술의 특징인 추상화 정신의 가장 좋은 예 중 하나로 손꼽히고 있습니다. Choucair는 American University of Beirut에서 권위 있는 명예박사 학위를 받기도 합니다.(2014년 5월)

그녀의 작품 "시"는 루브르 아부다비에 대여된 상태라고 하네요.


2016년 6월에 100세가 된 Choucair. 그녀의 언니이자 여성 인권 지도자인 Anissa Rawda Najjar도 거의 103년을 살았다고 하니 장수 집안인가 보네요. Choucair는 2017년 1월 26일 베이루트에서 다양한 작품을 남기고 사망했습니다.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오래도록 장수한 레바논 최초의 추상화가 '살루아 라우다 슈케어'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테이트 모던 사이트에서 그녀의 다른 작품도 만나보세요.

Saloua Raouda Choucair – Exhibition at Tate Modern | Tate






그렇다면 우리나라 최초의 추상화가는 누구? 김환기라고 많이들 생각하실 텐데 개인적으로 저는 비슷한 시대를 살았던 남관 선생님을 들고 싶네요. 한국의 미를 잃지 않으면서도 서양의 추상화에 지지 않는 실험정신이 투철했던 분 이죠. 1960년 피카소, 장 뒤 뷔페, 타비에스 등 유명 거장들이 참가한 망통 회화 비엔날레에서 대상을 받았던. 가까운 시일 내에 남관 선생님의 그림도 좀 올려봐야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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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관 선생님의 작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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