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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상래 Sep 01. 2021

<바닷가 작업실에서는 전혀 다른 시간이 흐른다>_김정운

슈필라움의 심리학


어려운걸 쉽게 설명해 주는 사람이 참 고맙습니다.

50대의 인생은 그리고 써야지 생각했는데 그리 살고 계시더라고요. 정말 좋아하는 걸 하면서 사는 삶.



'슈필라움(놀이공간)'은 우리나라 말로 '여유 공간',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자율의 공간. 그 공간은 물리적 공간 + 심리적 여유를 포함합니다. 지친 하루를 성찰하며 자신과 대화할 수 있는 최소한의 공간을 말하고 있어요.

독립된 개체로서의 '자의식'을 확인하는 공간. 그것은 남자의 방이기도 하고 아이들이 방문을 잠그는 순간 생기는 방, 버지니아 울프가 얘기한 '자기만의 방'을 말하는 거죠. 제가 그토록 갖고 싶어 하는 저만의 작업실, 아뜰리에~처럼 말이에요.

여수 바닷가에서 배를 타고 더 들어가는 곳, 미역 창고를 사서 자신만의 슈필라움을 만들어 살면서 그리고 쓰고의 삶을 살고 있는 재미난 사람 김정운.



'삶이란 지극히 구체척인 공간 경험들의 앙상블'. '공간이 문화'이고 '공간이 기억'이며 '공간이야 말로 내 아이덴티티' 
'귀농', '귀촌', '텃밭'이 우리 '슈필라움'의 전부일 수는 없는 일이다.
p.12,13

귀촌을 원하는 이유, 저는 그리고 쓰고 싶은 마음을 품고 있다죠. 조용한 곳에서 방해받지 않고 하고 싶은 것을 진짜 하고 싶은 그 마음. 나만의 슈필라움을 원합니다.

시선은 곧 마음이다. 내 시선이 내 생각과 관심을 보여준다는 이야기다. 다른 동물에 기해 인간 눈의 흰자위가 그토록 큰 이유는 시선의 방향을 드러내기 위해서다. 인간의 의사소통은 바로 이 '함께 보기'에 기초한다. 다른 동물들은 시선의 방향이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는다. 소통이 아니라 사냥하기 위해서 진화했기 때문이다. 시선의 방향이 드러나지 않아야 사냥에 더 유리하다.
p.34

엄마가 늘 얘기하던 눈 작은 사람에 대한 이야기가 이걸 두고 한 건가 싶은데 말이죠. 눈이 작은 사람은 만만하지 않다는 거죠.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견해로 적어 놓습니다. 책에도 그리 나와 있고요.^^;; 저처럼 눈이 큰 사람은 마음을 숨기기가 힘들어요ㅡㅡ;;




'함께 보기'가 가능하려면 누군가는 반드시 먼저 봐야 한다.
그 누구도 스스로 먼저 내다볼 용기가 없다. 그러니 내 시선의 방향을 숨기며 타인의 행동을 몰래 훔쳐보기만 하겠다는 거다. 공유할 수 있는 가치의 부재가 '관음 사회'를 만든다.
'훔쳐보기'는 '함께 보기'가 어려울 때 흥행한다.
p.36

2002,2003년 프랑스에 있을 때, '스타 아카데미'라는 프로그램이 한창 인기를 끌었습니다. 우리나라의 '탑밴드'나 '위대한 탄생', 요즘의 '새가수' 정도를 생각하면 비슷하다 생각하시면 돼요. 벌써 유럽에선 20년 전에 '훔쳐보기' 방송이 인기 몰이를 했던 걸 보면 우리 보다 앞서 함께 보기가 힘든 사회가 아니었나 싶은데요. 우리나라 방송은 굉장히 순한 맛이라면 유럽은 매운맛? 좋아하는 감정을 가감 없이 표현하는 그들의 모습에 혼자 얼굴이 붉어졌던 기억이 있어요.^^



중요한 결정일수록 서글프다. 혼자 내려야 하기 때문이다. 여수 남쪽 섬의 미역 창고를 내 작업실로 개조하기로 한 것이다. 글도 쓰고 그림도 그려야 하는 작업실 이름을 폼 나게 지었다. 미역창고美力創考! 아름다움의 힘으로 창조적인 생각을 한다. 중략

아무 소리 없던 아내마저 이제 노골적으로 반대 의사를 보였다.
아버지만 조금 다르게 반응하셨다. "쿠바에 가면 헤밍웨이의 서재가 바닷가에 있다." 고만하셨다.
p.56,57

저도 우리 아이에게 남들처럼 안된다 반기를 들게 아니라 더 넓은 세상 이야기를 해줄 수 있는 엄마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그렇게 믿어주는 한 사람이 있기에 자신의 삶의 기준을 온전히 세우고 정말 행복한 일이 어떤 것인지 찾아가며 살게 되는 게 아닌가 싶어요. 이 대목에서 김정운 작가의 아버지 정말 멋있습니다. 짱짱!!!! 저도 끊임없이 배우고 무언가 해보려는 마음이 부모님의 믿음이 있기에 가능한 게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때론 저를 안타깝게 생각하시는 부모님이지만^^;;(저는 행복한데 뭐랄까 너무 욕심이 없어 보인다나요?ㅋㅋ)

그래서 유한이가 그렇게나 창조적인 거구나 싶던 대목^^;;
한국 사회의 온갖 모순은 무엇보다도 주택이 '사는 곳(사용가치)'이 아니라 '사는 것(교환가치)'이 되면서부터라고 나는 생각한다. 오십 대 후반의 나이.... 이 나이에도 내 '사용가치'가 판단 기준이 되지 못하고, 추상적 '교환가치'에 여전히 마음이 흔들린다면 인생을 아주 잘못 산 거다. 추구하는 삶의 내용이 없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p.60


생각해 볼만한 이야기가 아닐까요. 사는 곳과 사는 것. 사십 대 중반의 저는 사는 곳으로의 정말 내 집에 관해 고민이 많습니다. 아파트 말고, 나만의 슈필라움이 있는 진정한 내 집. 내 손으로 만들어가는 집에 대한 로망이 있습니다. 쉽지 않은 일 일수도, 어찌 보면 굉장히 단순 명료한 일 일수도 있겠는데 아이가 아직 어리다는 핑계를 보태봅니다. 밥벌이에 대한 고민도 있고요. 그래서 50 즈음으로 생각하고 있고요. 5년도 채 안 남았는데 과연.....^^;;




불안은 평형상태가 파괴되었을 때 나타나는 현상이다.
'공연한 불안'을 '가나다순'으로 정리하는 것은 '개념의 개념화', 즉 '메타 개념화'라 할 수 있다. 자신의 '생각에 대한 생각'인 '자기 성찰' 또한 이런 '메타 개념화'의 한 형태다. 개념화된 불안을 다시 한번 상대화하면 불안의 실체가 더욱 분명해진다.

자주 웃고, 잠 푹 자는 게 진짜 성공이다!
p.83


일어나지 않은 일에 대한 고민, 이미 일어난 일에 대한 고민, 손쓸 수 없는 일에 대한 고민이 96퍼센트라는데 늘 불안과 고민 속에서 사는 것은 아닐까? 생각하게 되는 대목입니다. 나는 오늘 어떤 고민을 하며 내 시간을 낭비했을까?




수시로 자신의 삶을 규정하고 있는 전제들을 성찰하며 상대화해야 명함이 사라져도 당황하지 않는다. '탈맥락화 Dekontextualisierung' 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탈맥락화'는 본질에 대한 질문이다. 철학에서는 '자기 성찰'이라 하고, 심리학에서는 '메타인지'라 한다. 미술에서는 '추상'이라고 한다.
p.87

'관계 과잉'의 삶을 수시로 탈맥락화 해야, 보다 나 다운 삶을 살 수 있는 거겠죠. 명함이 사라지던 때, 나를 대변할 수 있는 게 엄마, 아내밖에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기 힘들었죠. 지금도 아마 관계 과잉에서 벗어나 나를 찾느라 이리저리 기웃기웃해보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내 스펙트럼의 범위를 넓혀보려고 부단히도 애쓰고 살고 있습니다. 언제나 끝에는 그래서 돈은?으로 끝나지만... 창조적인 삶을 살고자 한다면 그 돈이란 놈도 언젠간 다시 제 곁에 좀 붙지 않을까요. 저희 집 부릉이가 말썽이 심해서 요새 하늘에서 돈이 좀 뚝~떨어졌으면 하는 바람이거든요.


우리 인생이 자주 꼬이는 이유는 '질투'와 '열등감' 때문이다. 이 둘은 동전의 양면이다. 질투가 외부를 향한다면 열등감은 내부를 향해 있다.
p.94

제게도 '질투'라는 감정, '열등감'이라는 감정이 있죠. 어떤 사람이 글 쓴 지 6개월 만에 출간을 했다는 소식을 접하면 부러운 마음과 함께 질투라는 감정이 올라와요. 서울대 법대를 나와 대형 로펌을 박차고 스스로 백수가 된 스펙 조차도 제겐 '질투', 그리고 나는 그 정도는 아니라는 생각에 '열등감'에 사로잡히기도 하죠. 글을 잘 써서 출간을 했겠구나 생각해야 하는데 다른 생각이 든다는 거죠. 스스로 넘어야 할 벽이 아닌가 싶어요. 세상의 흐름을 온전하게 바라볼 줄 아는 지혜와 마음속 고요함이 더 필요하단 생각입니다. 이런 일들로 세상에 적을 만들 필요는 없는 거죠. 내면의 부족함을 스스로 채워야 해결될 문제겠죠.^^



'상식 common sense'은 라틴어 '공통 감각 sensus communis'에서 파생한 단어다.
분노, 적개심을 야기하는 파괴적 정서가 아니라, 공유하며 교차되는 공통 감각적 경험을 아주 치밀하게 고민해야 한다. 문화예술 정책은 그런 걸 하는 거다. '상식이 통하는 사회'는 그렇게만 가능하다. 백 년 전의 바우하우스가 우리에게 주는 통찰이다.
p.123

코로나로 사회가 불안정한 분위기. 그럴 때일수록 민심을 끌어 모이기 가장 좋은 방법이 문화예술이죠. 흩어지면 더 혼란 해질 테니 좋은 뜻을 담아 사람을 모으고 문화예술로 무장~ 코로나가 준 2년. 저는 문화예술 덕분에 버티고 있습니다. 아니, 그 덕분에 무언가 할 수 있게 된 것이 아닌가 싶어요. 보다 쉽게, 누구나 알 수 있게~여전히 그 부분을 고민하고 있고요.


'나쁜 이야기'에 끌릴 수밖에 없는 타인의 반응을 통해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려는 불안한 인간이 너무나 많은 까닭이다.
'유한한 존재'의 운명인 불안으로부터 자유롭기 위해서다. 중략.
죄다 소를 그렸다. 스페인의 알타미라 동굴벽화를 그린 화가나 프랑스 라스코 동굴벽화도. 잡아먹고 나니 자신도 잡아먹힐까 두려웠던 것이다. 중략.

교양이 있어야 혼란스럽지 않고, 불안하지 않게 된다. 불안한 사회일수록 다양한 문화적 경험과 예술적 체험이 탈출구다.

공연히 불안하면 미술관, 박물관을 찾아야 한다. 그곳은 불안을 극복한 인류의 '이야기'로 가득하기 때문이다.
p.141,144

가장 공감이 갔던 부분입니다. 문화예술이 삶이 돼야 하는 부분. 동굴벽화도 설득력이 있고요.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는 이유 모두 불안한 영혼을 달래기 위함이 아닐까 싶어요. 놀러 가는 미술관, 박물관이 되도록 노력해야죠^^



비겁한 미래 예측이 난무할수록 아주 자세하게 과거를 기억해야 한다.
p.152

앞으로 어찌 될지 알 수 없는 내 인생, 그래서 기록하기로 결심한 거죠. 아주 자세히 기록하면 제 과거를 기억할 수 있을 것 같아서요.




'존경', '존중'은 어딘가에 '상하 관계'가 숨겨져 있다. 중략
서구 사회의 일상에서 강조되는 '매너' 혹은 '교양'이란 이 리스팩트의 활용 규칙이다. 중략
감탄사의 남용, wonderful, awesome, really? 는 상호 인정 규칙의 실천인 것이다. 중략

페이스북을 창립부터 이끌었던 2인자가 최근 퇴사한 후, 페이스북의 '좋아요'가 술, 도박, 마약과 같은 '도파민'에 의한 단기 피드백의 올가미라고 비판하며 자신들이야말로 인간 사회가 작동하는 근본 규칙을 망가뜨린 장본인이라고 반성했을까.
p.167,168

SNS를 시작하며 고민했던 부분, 편리한 도구로 사용하고 있지만, 언젠간 이것들을 끊고 살아야지 생각하고 있어요. 지금은 필요에 의해 선택적으로 이용하고 있습니다. 인식하고 살아야겠습니다. 기계의 노예가 되진 않을 거예요. 전 소중하니까요^^

저도 천고가 높은 작업실, 창문이 큰 슈필라움을 갖고 싶어요


손으로 무엇인가를 직접 만들어내는 사람의 인격이 가장 성숙하다.
'결과'가 언제나 명확하기 때문이다.
p.195

결과의 명확성을 알고 싶어 손작업을 하고 싶단 생각을 합니다. 늘 사무실 책상에서 일하던 신랑이 은퇴 후엔 꼭 기술을 배우고 싶다고 한 까닭도 여기에 있지 싶어요. 서류 말고, 노동의 결과를 눈으로 직접 판단할 수 있는 인생을 살고 싶은 거죠. 그래야 꼰대를 면할 수 있다는 김정운 작가님의 말을 보탭니다.^^



지금 내 삶이 지루하고 형편없이 느껴진다면, 지금의 내 관점을 기준으로 하는 인지 체계가 그 시효를 다했다는 뜻이다. 내 삶에 그 어떤 감탄도 없이, 그저 한탄만 나온다면 내 관점을 아주 긴급하게 상대화시킬 때가 되었다는 이야기다.
p.221

거인의 어깨 위에 서야만 멀리 볼 수 있습니다. 작고 좁은 휴대폰 안에 갇혀 살 수 없다는 거죠. 세상은 넓고 읽을 책은 넘쳐나는데 종일 드라마만 보면서 인생을 허비할 수 없습니다. 소중한 내 인생, 한 번뿐인 삶. 환경을 바꾸기에 글쓰기만큼 좋은 게 또 있을까요. 오늘도 아이를 피아노 학원에 보내고 끄적거립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엔 또 하늘을 올려다볼 생각이고요. 잘 살고 있나. 내 인생~생각하면서 말이죠.




기능주의 건축의 위세가 하늘을 찌를 때 빈의 또 다른 건축가 프리덴스라이히 훈데르트바서는 스스로 신이 되고자 했던 모더니티의 본질을 정확하게 꿰뚫어 봤다. 그는 "직선은 무신론적이며 비도덕적이다."라고 비판했다. 아울러 '착한 곡선'을 회복하지 않으면 인간 문명의 미래는 없다고 주장했다.
p.231

훈데르트바서의 곡선에 대한 생각은 근래 들어 더 깊이 생각해 봐야 할 문제가 아닌가 싶습니다. 제 블로그에도 이에 관해 글을 올려둔 적이 있어요. 아파트만 짓고 있는 세상에서 자연과 함께 살아갈 수 있는 방법, 시멘트도 숨 쉴 수 있는 환경을 우리도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요. 작두콩 하나만으로도 푸릇함과 인간이 공존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보다 국가적인 차원에서의 자연과 인간의 공존에 대해 심도 있는 대책이 마련되어야겠어요.





두어 번에 걸쳐 책 한 권을 제대로 봤다 싶었는데 한 권의 책에서 다양한 책들을 만났고 쉽게 풀어놓은 글에서 김정운 작가님의 배려나 생각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이건 아마도 제가 이렇게 직접적으로 와닿는 글을 좋아해서 그럴 수도 있어요. 어디까지나 '개취'입니다.ㅋㅋ 외국생활을 하면서 느꼈던 부분에서 교감이 되기도 했고 자신만의 놀이공간의 필요성, 실천력이 가장 중요한 거 아니겠습니까? 저도 50 즈음엔 도전해 보고 싶어요. 아직 아이가 어리다는 핑계를 대며 용기는 조금 뒤로 밀어둡니다. 이 책의 김정운 작가님의 그림을 보며 오리가슴은 뭘까? 오리도 새류에 속하니까 보다 구체적인 좁은 마음을 나타내는 걸까? 했는데 아래와 같은 뜻이 담겨 있답니다. 그래서 더 마음에 드는 낙관입니다. '오리가슴'ㅋㅋㅋㅋㅋ


'오리가슴'은 '오르가슴'의 한국식 표현입니다. 육체적 오르가슴만 있는 게 아닙니다. 정신적, 지적 오르가슴도 있는 겁니다. 그래서 '오리가슴'을 내 그림에 빠짐없이 낙관처럼 그려 넣습니다. 즐겁게 그림 그리며 살겠다는 내 의지의 확인입니다.
p.258


김정운 작가님의 '슈필라움' '미역창고' 지극히 구체적인 공간 경험들의 앙상블~

공간이 문화고, 공간이 기억이며, 공간이야말로 자신의 아이덴티티라고 말한 그 대목에 목이 떨어져라 고개를 끄덕이게 됩니다. 저도 머지않아 저만의 '슈필라움' 그것을 갖게 되겠죠. 그날을 꿈꾸며, 이 책은 우선 작가님과 취향이 맞는 분에게 추천드립니다. 취향만 맞다면 내용은 풍성하니 강추!!!! 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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