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상래 Sep 16. 2021

자기 최면

파블로 피카소/Girl Before a Mirror 1932

파블로 피카소/Girl Before a Mirror 1932

원론적인 문제에 봉착했다. 나는 왜 글을 쓰는 걸까? 그리고 왜 책을 내고 싶은 걸까?

왕복 4시간이 넘는 거리. 일주일 내내 골머리를 앓다가 찾아간 출판사. 라디오 DJ를 하면서 책 관련 매거진을 운영하고 출판사 대표이면서 다양한 시도를 하는 전형적인 외향형인 사람을 만났다. 나는 사람 간의 어떤 기류를 포착하는 편이다. 나와 맞는 사람일까? 일을 함께 진행하기에 무리가 없을까? 서로가 탐색전을 펼치는 미팅.


결국, 원점으로 돌아와, 나는 왜 책을 내고 싶은 걸까? 생각보다 빠르게 출간 제의가 몇 군데서 들어왔다. 신이나 방방 거리던 며칠이 지나고 미팅 날짜가 다가오니 묘한 기분이 들었다. 현실과 동떨어진 이상 세계에 있다가 한 발짝 물러서 나를 바라본 느낌. 뭐 하려고 그러는 거야? 이성적인 생각, 현실적인 생각이 곧 부정적인 생각으로 이어졌다. 해서 뭐 하려고. 배우 정우성도 책을 내고 '서울국제도서전'에서 사인회를 열며 열심히 홍보하고 있어. 난 유명인사도 아니고 인싸도 아닌데 그 많은 책이 쏟아져 나오면 누가 내 책을 사준대? 얼싸 좋다. 구름 위를 걷다가 내가 왜 이러는 걸까? 쪼그라드는 마음. 내 글이, 내가 경험한 일들이, 내가 뭐라고. 누가 알아주길 바라는 게 아니라면 왜 글을 쓰고 책을 내려는 거야? 결국, 목적이 뭐야? 책 팔아봐야 돈 버는 것도 아니잖아. 강연한다고 치면 뭐로 할 건데? 내가 뭐라고. 누가 연락을 준다고. 하아~ 한숨이 자꾸만 흘러나왔다.


나는 뭐든 할 수 있어. 라며 자신감에 부풀어 지구라도 뚫을 기세더니 막상 눈앞에 원하던 일이 닥쳐오니 덜컥 겁이 났다. 고작 이깟일로도 가슴에 무거운 돌을 지고 마는 나다. 하지만 이렇게 세상 밖으로 나오기까지 얼마나 오래 걸렸는가 생각해보자. 내 입장에선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일 런지도 모른다. 무던히도 애쓰며 하나씩 차근차근 숨을 고르며 글쓰기를 시작했던 날을 떠올려본다. 간절함. 내겐 간절함이 있었다. 무엇이든 시작해서 살아 있음을 느껴야 했다. 절실함. 그것 없이는 한 발자국도 나가지 못했을 것이다.


지금 이 상황을 깨야 한다. 알을 깨고 나와야 한다. 두려움을 이겨내야 한다. 안되면 말고! 어쩌라고! 내가 하고 싶다는데? 자신감으로 무장한 채 덤벼도 모자랄 판에 뒷걸음질이라니. 기회라고 생각하면 될 것을. 쫄보. 내 마음은 여전히 닫힌 문을 제대로 열지 못했다. 힘차게 나아가야 할 때, 떠안게 될 불안을 먼저 생각했다. 지금은 나만 생각하자.


새는 알에서 깨어 나오기 위해 힘겹게 투쟁한다..

알은 세계다.

태어나려면 한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새는 신에게로 날아간다.

그 신의 이름은 아프락사스!



데미안에 나오는 너무도 유명한 문장들이다. 작년엔 데미안을 몇 번이나 읽고 또 읽었다. 그 안에 등장하는 '북스테후데'의 '파사칼리아'를 찾아 듣기도 했고 '싱클레어'가 되어 보기도 여러 번.

40과 50 사이는 열정과 예술성을 가진 사람에겐 위기의 시절이자 불안의 시기라고 헤르만 헤세가 말하지 않았던가. 시작도 하기 전에 뒤돌아 보는 일은 하지 말자. 지금은 뭐라도 뚫고 나와야 하는 때가 맞다.


나는 힘든 시기를 지나 평온한 시기로 접어드는가 싶었는데 아니었다. 50이 지나면 잔잔한 시기가 찾아온다고 했던 말도 옛말이다. 우린 100세를 살아야 하니 인생의 절반을 보냈을 뿐인데 편안한 시기가 찾아올 리 만무하다. 주변을 보자. 60이 넘어도 젊고 70이 넘어도 왕성하게 활동하는 사람들이 많다. 지금 준비하면 50 이후엔 열심히 달릴 수 있다. 미래의 내 모습을 보다 선명하게 떠올리자. 어떤 사람으로 살고 있을지. 주저앉아 있을 수가 없다. 내 안의 새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편안한 삶만을 살아오지 않았다. 쌓아온 과거를 돌아보면 참 고집스러웠다. 그 고집스러움이 나를 나아가게 한다는 걸 명심하자.


체한 듯 걸려 있는 이 답답함을 뽑아내야 다른 음식들을 삼킬 수 있을 것 같다. 꿀꺽하고 삼켜야 버려야 할까? 결정장애도 아닌데 왜 이리 답답하게 구는 걸까? 일주일을 생각하고 가서도 모르겠는 상황. 지금은 더 복잡한 머리. 나는 어떤 결론을 내려야 할까? 모든 건 내가 결정할 일이다. 이게 내 인생에 얼마나 도움이 될는지는 아무도 예측할 수 없다. 내가 열심히 움직이면 내가 세상에 알려질까? 알려지면? 유명인사가 되려고? 그건 아니었잖나. 그렇다고 출판물이 나오고 곧바로 사라지길 바라는 바도 아니다. 기왕이면 많이 팔려서 내 글에 묻은 진정성을 알아주길 바라는 거다. 나 이렇게 힘들었는데 그래도 빠져나왔다. 세상 아직 살만하고 우리 같은 아줌마들도 할 일이 있다. 그러니 아이들에게만 목매고 있지 말고 세상 밖으로 나올 용기를 내라. 무엇이든 시작하면 그걸로 새로운 삶으로의 출발이다. 그걸 전하려는 거잖나.


쓰다 보니 글이 모아졌다. 그러면서 환경이 바뀌고 사람이 바뀌더니 성취하는 일들이 생겨났다. 자신감이 생겼고 다시 일어서고자 하는 의욕이 솟아났다. 기쁨과 고통은 다르지 않다. 그것은 하나여서 모두 안고 살아야 하는 것들이다. 나는 완벽할 수 없다. 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작은 도전을 행동으로 옮기고 그것이 실현됐을 때 내 존재를 확인한다. 나를 실현하는 일, 나도 별이 될 수 있다고 믿는 일. 내 지금의 괴로움은 온전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 증거이다.


복종하자. 전적으로 나에게. 내가 믿고 있는 신념에게. 나도 누군가에게 의미 있는 사람이 될 수 있다고.

작가의 이전글 <바닷가 작업실에서는 전혀 다른 시간이 흐른다>_김정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