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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상래 Sep 27. 2021

풀꽃처럼 불꽃처럼

이삭  일리치 레비탄 Isaak Ilich Levitan

이삭  일리치 레비탄 / Footpath in a Forest, 1895

마음을 온전하게 내 것으로 가져오기 좋은 것으로 명상음악 만 한 것이 없다. 새소리, 물소리, 빗소리, 자연이 살아있다는 증거를 내뿜는 소리를 듣는 황홀감 속에서 생각의 숨 고르기가 시작된다.


무겁게 내려앉았던 돌. 하나는 어느새 사려졌고 나머지도 작아지고 있음을 느끼게 된다. 이런 마음도 내 마음이다. 두려운 마음, 바로 결정하지 못하는 마음, 생각이 많아지는 마음 모두 내 것이다. 새벽에 일어나 명상으로 나를 가만히 두는 일은 하루를 시작함에 있어 꼭 필요한 일이다. 휩쓸리지 않기 위해 애쓰는 나의 시간. 휩쓸리더라도 제 자리를 찾는 시간.


입을 잔뜩 벌리고 집어삼키려는 폭풍처럼 카오스가 지나간 나의 2주. 나를 옭아매고 있던 생각의 끈 하나를 잘라버렸다. 무거웠던 마음은 어느새 언짢은 기분이 된다. 카페인에 힘든 내가 커피를 취하듯 마신 것처럼 종일 두근대던 일. 마음이 아프다는 것으로 표현하기 힘든 날을 보내고 다시 찾아온 자리. 피아노 소리, 새소리에 마음이 평온해진다. 꼬리에 꼬리를 물던 악몽 같던 날이 지나고 숨을 제대로 쉴 수 있게 되었다.


예술가적 마음과 사업가적 마음 사이에 방황을 했던 것 같다. 경제적 자립을 꿈꾸고 있지만 내 감정이 더 중요하다는 마음을 무시할 수 없었다. 통장의 잔고를 어느 정도는 채워져야 자존감, 자신감과 좀 더 친하게 만날 수 있게 될 것만 같아서 결정을 해버렸다. 책 내는 일이 켤코 돈 버는 일이 아닐 수도 있는데... 사는 일이 다 그렇지 뭐.


나는 절대적 예술가는 될 수 없음을 느꼈다. 이중섭이나 박수근처럼은 살 수도, 살기도 싫다. 행복한 삶에는 감정의 독립과 함께 경제적 독립이 필수다. 아무리 생각해도 잘했다. 결정했으니 무조건 그 방향으로 긍정을 몰아간다. 처음부터 좋았던 건 아니지만 잘 된 일이다. 좋은 일이 일어나게 만들면 된다.


감사한 마음으로 시작할 일이다. 정신이 없거나 두서가 없는 건 내 성향이다. 가만 생각해보면 나란 사람은 늘 그렇게 허둥지둥 대며 살았던 것 아닐까? 전업주부를 하며 지낸 5년이 그나마 찬찬히 살았던 시간이었던 것 같다. 가정에 집중하고 아이에게 집중하고 신랑에게 집중하고 내게 집중했던 시간들. 어느새 마음속 힘겨운 일들이, 무겁게 내려앉는 가을 단풍잎처럼 떨어져 내린다. 일부러 벗겨 내지 않아도 시간이 흐르면 딱지가 떨어지듯 그렇게 자연스럽게 나는 치유되어 간다. 짧지 않았던 침묵의 시간. 힘겨웠고 눈물뿐이던 어둠의 시간들이 이제는 인사를 한다. 그동안 함께 여서 고마웠다고. 언제 또 만날지 모르겠지만 그때는 더 단단해져 있을 거라고...


매일을 적는 일. 살고 싶어 바둥거리며 잡았던 펜으로 나는 희망을 적을 수 있게 됐다. 오늘도 작은 도전을 이어가고 있고 내일도 작은 도전을 만들 계획에 있고 또 성취하는 기쁨을 느끼고 있다. 누구도 할 수 있다. 견디는 시간이 필요할 뿐이다. 그리고 스스로 알을 깨고 나와야 할 때를 언제든 잡으면 된다. 언제고 늦지 않다. 오늘 안되면 내일 다시 시도하고, 그래도 안되면 또다시 하면 된다. 아까운 시간이란 없다. 모든 시간에서 삶을 배운다.


‘당신에게 가장 지우고 싶었던 시간은 언제였나요?’ 얼마 전에 찾아간 ‘화전마을학교’에서 우연히도 뽑게 된 카드, 지금의 내 모습을 보게 됐다. 지나고 나니 이렇게 글을 쓸 수 있게 됐지 않나. 지우고 싶었던 순간도 모두 나의 기록에 남아 내게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도록 만들어주고 있으니 그 짧은 찰나, 수많은 기억들이 스치며, “생각해보면 지우고 싶었던 순간, 시간은 없네요.” 웃음이 흐르는 나의 대사였다. 내가 글을 쓰고 있고 그 안에 견디기 힘들었던 기억들을 녹여내며 치유를 맞이했다고 길게 말하진 않았다. 다만, 그 몇 초의 순간에 내게서 떨어져 나와 진정한 나를 보았다. 이젠 괜찮아지는구나. 괜찮아지려 하는구나.

사람들을 만나는 일이 두려웠던 오랜 시간. 밖으로 나와 사람들을 만나니 내 아픈 마음을 꺼내 보며 치유되어 감을 느낀다. 얼마나 다행인 일인지 모르겠다. 얼마나 잘한 일인지 모르겠다.


살아가면서 갈등이 없겠는가. 앞으로는 절대 불행한 일이 벌어지지 않을 거라는 보장도 없다. 그럴 땐 기억하게 될 것 같다. 그 보다 힘든 시절을 견뎌 낸 나 자신을. 연약한 내가 자랑스러워 주춤거리더라도 멈추더라도 시간이 더 오래 걸리더라도 나는 다시 세상 밖으로 나오게 될 거라는 걸 믿는다.


잔뜩 흐린 하늘. 회색 구름 사이에 나만의 태양이 빛나고 있음을 안다. 지금이 아니어도 언젠간 빛나리란 것도 알고 있다. 세상이 알아주는 빛이 아니더라도 과감하게 내 안에 스스로 반짝이는 빛을 보며 갈 수 있을 것 같다. 길가에 어느샌가 피어있는 이름 모를 풀꽃처럼, 한없이 자기 몸을 태우며 불을 뿜어내는 불꽃처럼 그렇게 살면 된다. 그렇게 살고 싶다.

아무도 몰라줘도 내가 알아주면 된다. 충분히 빛나고 있고 잘 살고 있고 많이 애썼고 더 많이 인내했다고. 그렇게 내 인생을 살고 싶다. 내 생을 한껏 껴안으며 살아내고 싶다.

생애 단 한 번인 내 삶을 두 팔로 꼭 껴안으며 잘 살아주고 싶다. 나는 어쩌면 다음 생애에도 나로 태어나고 싶게 될지도 모르겠다.




이삭  일리치 레비탄 Isaak Ilyich Levitan
[Russian Painter.  Peredvizhniki  : 1860 ~ 1900]
레비탄 (Issac Ilyich Levitan)은 20세기가 시작되기 전 러시아에서  가장 사랑받는 풍경 화가였어요. 그의 작품에는 서정과 철학 그리고 자연과 인간과의 관계에 대한 작가의 고뇌가 들어 있다고 평론가들은 말하곤 합니다.

레비탄은 서정적인 러시아 풍경화가들의 영향을 받았어요. 그러나 초기부터 개성 있는 자신의 방식으로 그림을 그렸고, 대표적인 무드 풍경화 (Mood Landscape)로  불리면서 러시아 지식인들의 열렬한 사랑을 받았으며 그는 그림뿐 아니라 시와 음악에도 무한한 열정을 갖고 있었다고 합니다. 다재다능한 예술가가 아니었나 싶어요. 사실, 모든 예술은 하나로 이어져 있다고 생각합니다.

레비탄은 지금의 리투아니아 지방의 가난한 유태인 가정에서 태어났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마을에서는 독일어와 불어를 가르쳤고 나중에는 프랑스 회사의 통역으로 일했다니, 교육을 받은 집안이라고 할 수 있겠죠. 11살 때 모스크바로 이사를 가서는 모스크바 예술학교에 입학했는데. 공부를 잘했는지 물감 한 박스와 그림 붓 두 다스를 받았다는 기록이 남아있다고 합니다.

“자연의 장엄한 아름다움 속에서 신비를 느끼면서도 그 웅대한 느낌을 표현해 낼 수 없는 나 자신의 무능력함을 깨닫는 것보다 더 비극적인 일이 또 있으랴!"
- Isaak Levitan

마음이 편안해지는 그림 한 점,  그림으로 치유 받는 오늘이 되셨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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