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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상래 Sep 27. 2021

문득, 떠오른 ‘머리말은 어떻게 시작해야 할까?’

폴 세잔(PAUL CÉZANNE)

귀스타브 제프루아의 초상 Portrait de Gustave Geffroy  폴 세잔(PAUL CÉZANNE) /1895년경

이번 추석은 우리 가족이 간성으로 향하는 대신 어머님께 올라와 달라고 부탁을 드렸다. 여기저기 아프다며 심장을 바꿔 달라는 차를 달래 가며 내려갈 자신이 없었다. 지난번처럼 내려가다 차가 서버리면 곤란했다. 오가며 쓰는 경비도 만만치 않은 탓에 내린 신랑의 결정. 오랜만에 어머님을 모시고 행궁동이며 지동시장, 수원화성박물관을 모시고 갈 요량이었다. 하지만 어머님이 가보고 싶은 첫 번째 코스는 백화점이었다. 팔순이 코 앞인 어머님의 기억 속엔 백화점은 부자들만 다니는 특별한 곳이라는 인식이 남아 있으셨다. 식품 코너에는 백만 원이 넘는 조기가 진열되어 있다고 하던데 도대체 그게 어떻게 생겼는지 궁금해서 견딜 수가 없으셨던 거다. 클렌징 오일로 화장을 지우고 클렌징 폼으로 세안 마무리를 하는 시대에 콜드크림을 사러 백화점엘 가고 싶어 하시는 이유도 있었다. 지동시장쯤 가면 그 옛날 화장품 가게가 있을 테고 그곳엘 가면 콜드크림을 구할 수 있겠지 싶어 다음날로 미룬 참이었다.



젊은 시절, 기사 딸린 차를 타고 밍크를 입으셨던 어머님은 백화점이 가고 싶으셨던 거다. 젊은 시절 추억을 꺼내 입고 싶으셨던 거다. 내가 운전대를 잡고 집에서 15분 거리, 광교로 향했다. 점심시간도 다가오니 건축물 구경도 할 겸 장소는 ‘갤러리아백화점’으로 잡았다. 9층 고메 월드 ‘정돈’, 대기 번호 ‘23번’을 부여받고 구름처럼 보이는 투명한 스카이워크를 걸었다. 대기시간이 남아 스마일 빵집에도 들렀다. 명절이 지나고 지금까지도 냉장고 안에는 그때의 빵이 남아 있다. 배고픔의 충동구매 흔적. 식사는 안심 돈카츠와 등심 돈카츠로 정했다. 돈카츠는 늘 그렇듯 먹고 나면 입안 가득 얼얼한 기운이 남는다. 잘 튀겨진 튀김옷이 잇몸과 이 천장을 죄다 훑어내는 통에.



2021년 백화점 1층엔 ‘콜드크림’이 있을 리가 만무하다. 그래도 꼭 확인하고 싶다셔서 “엄마, 그러면 1층에 엄마가 다녀와요. 그리고 엄마 보고 싶으신 곳 모두 보고 와요. 우리는 여기 서점에 있을 테니.”

이럴 땐 그저 중용을 지킨다. 내가 이래라저래라 할 상황이 아니다. 어머님을 가장 잘 아는 건 신랑일 테니 한 발짝 뒤에서 대화를 듣는다.

“어머님 혼자 어떻게 다녀오시라고 해? 같이 가야 하는 거 아니야?”

“우리는 백화점 다니는 거 안 좋아하잖아. 사람 많은 데 가면 지치고 콜드크림이란 게 여기 있을 리가 없잖아. 그래도 간다시니까 다녀오시라고 한 거야. 전화기 있으니까 연락하시면 전화받고 우리가 움직이면 돼.” 언제나 그렇듯 매사에 칼 같은 신랑의 얼음장 같은 판단에 나도 그냥 묻어간다. 내게 더 좋은 대안이란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어머님은 궁금한 게 많으신 분이다. 호기심 가득한 어린아이 같다고나 할까? 사고가 열려 있다고 느낄 때는 마치 어린 예술가 같기도 하다. 현대에 태어났다면 아이디어가 넘치는 예술가로 다양한 방면에서 활약했을 법 한 그런 분이다. 결국, 어머님은 1층 화장품 코너에 혼자라도 가서 콜드크림을 사 오겠다고 엘리베이터를 타셨고 우리는 8층, 카페 서점에 내려가 커피를 주문하고 각자가 읽고 싶은 책을 꺼내 읽었다. 진열대에 있는 에세이 코너를 보고 있자니 내년 상반기에 나올 내 책이 궁금해졌다. 일반적인 사람들은 서가에 꽂힌 책에는 손이 안 가겠지? 진열대에 올려지거나 그 아래로, 앞면을 바라보고 있는 책에나 손이 가겠지? 그렇게 둘러보다 책 하단 쪽 출판사에 시선을 고정시켰다.



점유율 90%가 대형 출판사.

생각해보자. 나는 어떻게 책을 구매하게 되나? 일주일이면 몇 번씩 도서관엘 다니고 서점 구경도 가지만 정작 돌아오는 길에 책이 들려 있는 경우는 거의 없다. 내 경우에 그렇다는 말.(경제적 독립이 되지 않은 상태로 가정의 경제를 책 사는 돈으로 쓸 여력이 아직 없다. 이러니 엄마들과의 커피타임이란 게 내겐 사치일 뿐! 이상을 좇아 살지만, 현실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이상, 이성은 필수!) 많은 사람이 오프라인에서 책을 구매한다기보다는 온라인 구매를 할 텐데…. 출판시장은 어려운데 책을 내고자 하는 인구는 늘어나니 홍보 부분에 있어 각별히 신경을 써야 한단다. 서울국제도서전을 직접 가진 못했지만, 사진으로 많은 정보를 흡수하고 있었다. 그중 정우성의 책 홍보가 눈길을 끌었다. 장시간 앉아한 권 한 권 사인해주며 사람들에게 눈을 맞추는 일로 열을 다하고 있었다. 공인도 책을 냈을 때는 본인의 역할에 최선을 다한다. 나는 공인도 아니다. 책은 내년 상반기에나 나온다. 이런 일로 출판 계약을 하느냐 마느냐로 일주일 이상을 고민하기도 했다. 내가 뭐라고…. 책을 내서 어쩌려고? 데드라인에 쫓기는 기획자가 된 것처럼 힘든 시간을 보내고 든 생각은 ‘일단 계약하자’였다. 내가 소설을 쓴 것도 아니고 내게 있던 일들을 정리하며 지극히 온전한 나를 만났고 그로 인해 만족감을 얻었으면 그걸로 됐다. 내게 일어났던 모든 일이 내 잘못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은 거로 됐다. 혹여라도 나 같은 사람들이 읽어보고 마음에 위안을 얻어 ‘그래 내 잘못이 아니야. 나는 소중해’라고 느낀다면 내 첫 책에 대한 소임은 다한 게 아닐까?



고민을 해봤자 나를 제일 잘 아는 건 나다. 미련을 품고 사느니 그냥 써버리고 출간해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다. 몸으로 부딪쳐봐야 그제야 더 갈 것인지 그만둘 것인지를 알게 된다. 글 쓰는 일은 그림 그리는 일과 비슷하다. 내가 주인이 되어 직접 해야 하는 일. 피아노를 치고 수영을 하는 일처럼 차곡차곡 쌓여 내가 되는 일이 꼭 그렇게나 같다. 글쓰기 모임을 하거나 책을 사서 본다면 돈이 들었겠지만 나는 한 푼의 돈도 들이지 않았다. 심지어 매일 아침 적어 가는 모닝 페이지조차도 주변에서 안 쓰는 노트라고 건네주던 곳에 적기 시작했다. 아이가 학교 앞에서 받아온, 쓰지 않는 빈 노트에 시작했다. 멋 부리며 시작할 어떤 형편도 사실되지 못했기에 나는 주변에 있는 것으로부터 최대한 도움을 얻었다. 읽고 싶은 책은 도서관 어플에서 찾아 ‘찜’을 눌러놓고 때마다 빌려 읽었다. 상호대차를 신청해 며칠을 기다려 책을 읽기도 했고 필요한 문장들은 포스트잇에 따로 적어두고 수첩에 부쳐가며 자료를 남겨 두었다. 읽고 또 읽으며 내재화하는 과정을 거치면 돈 한 푼 들지 않고도 글을 쓸 수 있고 책을 낼 수 있게 된다. 포스트잇도 신랑이 회사에서 가져다준 거로 또는 여기저기 아파트 홍보한다고 나눠주던 것을 받아 모은 것으로 사용 중이다. 세상에 이처럼 돈 안 들고 나를 성장시킬 수 있는 일이 또 있을까? 그래서 만나는 사람마다 책을 꼭 읽어라. 그리고 하루 한 줄 일기라도 꼭 써보라 하고 있다. 마치 글쓰기 예찬론자라도 된 것처럼.



언제고 그랬다. 시작하지 않았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일이 내겐 참 많다. 그림을 그리는 일도, 웹디자인을 했던 일, 유학길에 오른 일, 쇼핑몰 창업을 했던 일, 연하를 만난 일, 결혼하고 출산을 한 일, 아이를 키우며 일하고 공부하며 끊임없이 도전하고 살았던 것 같다. 결과가 어떻게 되는 게 중요하진 않았던 것 같다. 놓치면 아쉬울 일을 남기고 싶지 않아서였달까? 남들이 말하는 게 진짜일까? 궁금해서였달까? 직접 느껴보고 싶었다. 남들 한 번에 갈 길을 돌고 돌아 왜 이리 어렵게 사는지 나를 자책하던 때가 있었다. 많았다. 글을 쓰면서 느꼈다. 내가 이러려고 그렇게나 남들처럼 사는 게 되지 않았구나. 글 쓰는 일로 살아가려고 그랬구나 싶은 게 이게 내 직업이 되면 참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판에 손을 얹고 있으면 손가락이 미끄러져 내려간다. 하고 싶은 말이 참 많은 나인가 보다 싶다. 그래서 책의 머리말은 어떻게 시작해야 좋을까? A4용지 2장을 채우고도 결국, 원하던 글은 적지 못했다. 그래도 괜찮다. 일단 적어 놓은 글이 정식 원고에 나타났을 땐 문장을 왔다 갔다 하며 다듬어지고 빠지고 추가될 테니까. 글 쓰는데 뭣이 가장 중헌데? 일단 쓰고 보는 거지. 길든 짧든. 말이 되든 안 되든. 그래서 머리말은 차차 생각하는 거로.




폴 세잔(Paul Cézanne)

1839년 1월 19일 ~ 1906년 10월 22일)은 프랑스의 대표적 화가로서 현대 미술의 아버지라고 불리고 있습니다. 기자, 작가, 예술 평론가였던 귀스타프 제프루아는 인상주의가 정착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 사람이에요. 세잔은 모네의 소개로 제프루아를 만나게 되었다고 합니다. 둘 사이에는 대단한 우정이 싹텄다고 해요. 세잔은 제프루아에게 모델이 되어줄 것을 부탁했고 이 초상화는 그 둘의 우정을 볼 수 있는 작품이 되기도 했죠.  

1895년 4월부터 6월 사이 매일 이 작품에 매달렸지만 두 사람 간의 정치성향과 종교적인 차이로 인해 감정적 교류가 힘들었던 것이 원인이었는지 작품의 진행은 더뎠다고 하네요. 세잔은 말년에 이 초상화를 겨우 완성했다고 하는데 에밀졸라와의 우정도 성향 차이로 크게 틀어진 걸 보면 고집이 고집이^^;; 

그런 고집이 후대에 재평가되어 현대미술의 아버지라 불리는 건 아닐는지요. 저도 한 고집하는 사람이라 이렇게 또 책을 읽고 글 쓰고 있습니다. 폴 세잔의 그림은 제가 참 어려운 면이 있는데 그 어려운 면이 혹, 저랑 닮아서는 아닐까 싶기도 하네요. 비슷한 부분에서 서로가 밀어내려 하잖아요. 반대 감정이 들기도 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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