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쿠버 정착 3일차, 아이들과 은행 계좌를 만들다

시차적응 실패한 밤, 은행 계좌 개설, 아이스크림 한 개의 행복

by 와니마미

어제 SIN 넘버를 발급해 둔 덕에 오늘 아침은 조금 여유가 있었다.

첫날 밤 아이들이 오후 8시쯤부터 다음 날 11시까지 푹 자길래
‘아이들은 역시 시차 적응이라는 게 없구나?’
라고 생각했는데…

그 생각이 화근이었나 보다.

밤 12시.

첫째가 갑자기 엉엉 울며 깼다.

“엄마 나 잠이 안 와…”

그 소리에 둘째도 깼다.
그리고 둘이 번갈아 가며 울기 시작했다.

“한국 가고 싶어.”
“아빠 보고 싶어.”
“빨리 아침 됐으면 좋겠어.”
“나 창문 보면서 안 잘래…”

정말… 미칠 판이었다.

결국 아이 둘 다 새벽 3시가 다 되어서야 잠이 들었다.
그리고 오전 11시까지 다시 깊게 잠들었다.

그렇게 우리의 벤쿠버 시차 적응은 완전히 망했다.


오후에는 Scotia Bank 계좌 개설 예약이 있었다.

2시 예약이었는데 조금 일찍 도착했다.
그런데 어디로 가야 하는지 도무지 모르겠어서 그냥 줄에 같이 섰다.

앞 사람에게 물었다.

“나 2시 예약했는데 어디로 가야 되는지 알아?”

그때 근처에서 일하던 은행 직원이 물었다.

“예약했어요?”

“YES!”

“앉아서 기다리세요. 불러줄게요.”

잠시 후 내가 예약했던 John이 나타나 우리를 작은 방으로 안내했다.

문제는 그 다음부터였다.

방에 들어가자마자 아이들이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싸우기 시작했다.

나는 급히 가방을 뒤졌다.

과자 하나.
종이.
가위.

각자 하나씩 쥐어줬다.

“I'm so sorry… 아이들이 너무 시끄럽죠…”

아이들을 먹을 것과 장난감으로 겨우 달래가며 계좌 개설을 마쳤다.

은행 업무 하나 보는 것도 아이 둘 데리고 오면 소규모 이벤트가 된다.

생각보다 은행 업무가 빨리 끝났다.


4시에 ICBC 예약이 있었는데 시간이 좀 남았다.

아이들이 하루 종일 나를 따라다니며 지루한 일만 하고 있어서 하루에 하나라도 좋은 기억을 만들어주고 싶었다.

길 건너 몰로 갔다.

안내원에게 물었다.

“아이들이 먹을 아이스크림 가게가 근처에 있나요?”

그가 알려준 곳은 Purdy's chocolati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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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은 신나서 아이스크림을 골랐다.
우리는 벤치에 앉아 간식을 먹었다.

아이들이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니
나도 덩달아 행복해졌다.

이 짧은 휴식 덕분에
나는 라떼 하나도 득템했다.

정말… 너무 꿀맛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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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를 타고 ICBC에 도착했다.

예약 덕분에 오래 기다리지 않고 바로 업무를 볼 수 있었다.

그런데 둘째가 문제였다.

컴퓨터로 면허 시험을 보는 사람들 근처에서
알짱거리며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그리고 조금 시끄러웠다.

결국 직원에게 **아주 친절한 ‘경고’**를 받았다.

그래서 둘째를 안고 업무를 봤다.

이제 나는
한 손으로 아이 안고 행정 업무 보는 스킬이 점점 늘어가고 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첫째에게 물었다.

“오늘 저녁 뭐 먹고 싶어?”

첫째가 말했다.

“매운 라면!”

나는 T&T 마트에 가서 한국 라면을 사주고 싶었다.

그래서 들어갔다.

분명히 T&T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나와 보니
Dollarama였다.

‘어쩐지 작더라…’

그래도 매워 보이는 컵라면을 하나 샀다.

집에 와서 먹어봤다.

정말…

신라면보다 훨씬 매웠다.

어른도 먹기 힘든 맛이었다.

“엄마가 미안해… 다음엔 진짜 맛있는 라면 사줄게.”

라면을 포기했다.


그래서 우버이츠를 켰다.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닭고기와 밥 메뉴를 골랐다.

결제를 눌렀다.

결제 실패.

다른 카드.

실패.

있는 카드 전부 시도했다.

모두 실패.

아이들을 굶길 수는 없었다.

결국 비상식량으로 가져온 햇반을 꺼냈다.

남아 있던 닭고기 조금, 케첩 뿌리고 김에 싸서 줬다.

둘째가 말했다.

“엄마 너무 맛있떠!”

냠냠 쩝쩝 잘 먹었다.

그 순간 생각했다.

이 상황에서
아이들이 반찬 투정을 했다면…

아마 나는 울었을 것 같다.

사실 울고 싶은 순간들이 몇 번 있었다.

그래도 울지 않았다.

그렇게 또 하루가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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