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아이들이 모국어를 배우는 메커니즘을 공부하다 보면, 자연스레 떠오르는 의문이 있다. 모국어를 배우듯 제2외국어를 배우면 되지 않을까? 어차피 똑같은 언어인데, 모국어를 배우는데 필요한 능력과 환경을 비슷하게 갖추면 제2외국어도 잘 배우지 않을까? 즉, 영어를 쓰는 환경에 많이 노출되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여기서 오랜만에 언어학과 심리학 두 진영의 화합을 엿볼 수 있다.
심리학자이건 언어학자이건 상관없이 영유아 언어발달에 관해 학자들이 하나 동의하는 점이 있다면 언어에 '노출 (exposure)' 되는 것이 언어발달의 핵심 중 하나라는 점이다. 앞서 지니의 케이스를 이야기하며 언급했던 것처럼, 언어학자들은 더 나아가 '특정시기'에 모국어가 될 언어를 접해야 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주장한다. 물론, 이 '특정시기'가 정확히 언제인지는 학자마다 의견이 조금씩 다르고, 언어를 구성하는 요소마다 (소리, 구조, 단어 등) 발달에 핵심적인 '특정 시기'가 모두 다르다는 것이 중론이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답은 의외로 간단할지도 모른다. 한국에 살면서 영어에 장시간 노출되기 위해 (원어민 상주 도우미나 가정교사 대신)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게 바로 유튜브다. 영어 원어민이 만든 유튜브 채널을 아이들에게 틀어주면 한국어를 배우듯이 영어를 잘 배울 수 있을까?
문제는, 대부분의 양육자들이 유튜브와 같은 영상매체에 가지는 보편적 두려움이 있다는 점이다. 바로 유튜브를 장시간 틀어주는 것에 대한 불안함이다. 미국 소아과협회 (American Academy of Pediatrics)에서 영유아의 스크린 타임 제한을 강조하는 이유는 아이들의 비만, 인지 발달, 언어발달 등에 나쁜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18개월 미만의 아이들의 경우, 직접적 대면 놀이와 교육만이 교육 효과가 있다고 본다. 이와 같은 관점은 사실 언어발달에 상호작용이 필수적이라는 심리학적 관점이 크게 작용한 논리이다. 따라서 일방적인 영상매체의 시청으로는 언어발달이 이루어질 수 없다고 보는 것이다.
많은 언어학자와 심리학자들이 또 하나 동의 하는 부분이 있다면, 영유아가 유튜브를 시청한다 한들 제2외국어나 모국어를 유창하게 습득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는 점이다. 다만 그 이유에 대해서는 양측의 입장이 갈린다. 심리학자는 앞서 밝힌 것과 같이 양육자와의 상호작용이 아이의 언어 발달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에 단순한 유튜브 시청 만으로는 언어를 습득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언어학자는 아이들이 언어에 노출된다는 것이 정확히 무엇인지 쉽게 정의할 수 없다는 점, 정확히 무엇에 노출되어야 언어를 완벽하게 배울 수 있는 알 수 없다는 점에서 단순히 영상매체를 보는 것만으로는 언어 습득은 쉽지 않을 것이라고 본다. 이번 글에서는 먼저 심리학자들의 주장을 살펴보려 한다.
여러분이 다시 아이가 되었다고 상상하면서, 아이들이 언어를 배우는 환경을 한번 생각해 보자. 아기는 뱃속에서부터 엄마의 목소리를 듣는다. 다른 소리와 엄마의 목소리를 구분할 수 있으며, 심지어 좋아한다. 그러니 당연하게도, 아기가 태어나면 엄마의 목소리와 말소리에 이미 익숙해진 상태다. 다만 눈도 제대로 보이지 않는 아기가 당분간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다.
아기는 점점 커가면서 사물을 더 잘 보기 시작한다. 주변이 보이기 시작하면서, 손가락으로 무언가를 '가리킨다'는 개념을 이해하기 시작한다. 그 외에도 세상을 이해하는데 필요한 중요한 개념도 배워간다. 양육자와의 상호작용을 통해 말소리의 통계성을 이용해서 소리를 배우고, 유의미한 양육자와의 루틴을 통해서 반복되는 단어를 배워나간다.
이 과정에서 처음에 아기들이 배울 수 있는 단어는 굉장히 한정적이다. 그도 그럴 것이 양육자가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것이 '물건'인지, '행동'인지, '사건'인지조차 구분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무슨 소리냐고? 다음 실험 결과를 보며 한번 생각해 보자.
어떤 한 연구에서 양육자가 아이와 일상을 보내는 모습을 비디오로 찍은 다음 소리를 지웠다. 그다음 어른들을 불러 다음과 같은 실험을 했다. 무성영화가 된 비디오를 보고, 양육자가 아기에게 어떤 단어를 말하려고 하는지 어른에게 유추해 보게 하는 실험이었다. 결과는 참담했다. 정답률은 약 50% 정도. 꽤나 형편없는 결과였다. 상호작용의 핵심 중 하나인 눈 맞춤, 가리키기, 제스처 만으로는 문장 구조와 단어를 파악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라는 점을 잘 보여준다.
상호작용이 언어발달에 중요하긴 한데, 언어발달의 모든 것을 설명해 주지는 않는다는 소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