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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캐나다 노마드 Apr 13. 2024

언어는 타고나는가?

nature vs. nurture

본성 vs. 양육 전쟁

언어학계에는 아직도 현재진행 중인 논쟁이 여러 가지가 있다. 그 논쟁은 모두 이 질문으로 귀결된다. 사람은 언어를 타고나는가? 아니면 배우는가?


지난번 글에서는 지니의 안타까운 사연을 통해 언어는 '타고난 것일지도 모른다'라는 가능성을 엿보았다. 바로, 언어 습득의 결정적 시기 가설이다.

https://brunch.co.kr/@canadanomad/52


단순하게 생각해 보면 언어는 타고나는 것일 수밖에 없다. 그러지 않고서야 모국어를 이미 완벽하게 구사하고 있는 어른이 영어를 배울 때 그렇게까지 괴로울 수가 없기 때문이다. 아니 적어도, 학원을 다니고, 피 터지게 공부를 하면 얻을 수 있는 스킬이어야 하는데 실상은 그렇지 않다. 그렇게 생각하면 언어는 기어가기, 걷기, 뛰기와 같이 DNA에 각인된 인간 생물학의 일부 일 수밖에 없다.


생물학? DNA? 무슨 언어 습득을 가지고 생물학까지 가냐고? 너무 간 것 아니냐고?

이게 바로 언어를 연구하는 대다수의 심리학자의 입장이다. '그래, 언어가 어느 정도는 타고난 부분이 있을 수 있지. 100번 양보해서 그렇다고 칩시다. 아니, 아무리 그렇지만 시력이나 걷기 같이 인간의 기본 능력과 언어를 같은 선상에 놓는 것은 너무 과도한 것이 아니냐'는 의견이다.


어딘가 친숙한 싸움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가? 돌이켜 생각해 보면, 이런 유사한 논쟁이 이전에도 있었다는 걸 알 수 있다. 바로 아이큐에 관한 논쟁이다. 머리는 타고나는 것인가, 배움으로 개선할 수 있는 것인가. 또 있다. 우리는 태어날 때부터 뼛속까지 착한 사람인가, 썩어빠진 본성을 가꾸며 사는 것인가, 아무것도 가지고 태어나지 않는 것인가.


타고난 것 (nature) vs. 외부 요소로 인해 결정되는 것 (nurture). 이 싸움이 바로 언어학에서도 현재 진행 중이다. 


딱 반반 섞어서 타고난 것도 있고, 외부 요소로 결정되는 것도 있다고 하면 편하지 않겠냐고? 물론 그렇다. 그러나 학계는 중도를 선호하지 않는다. 끝까지 극과 극을 부딪혀 하나의 정론을 만들어 내고자 하는 열망이 들끓는 곳이다. 그래서 나 같은 심리 언어학자는 어딜 가나 싸움에 휘말린다. 그 싸움 한복판에 있는 내 입장에서, 두 진영의 의견을 알기 쉽게 풀어보도록 하겠다.


언어학자 진영: 언어는 타고나는 것

모든 언어학자가 촘스키를 따라 생물언어학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의 언어학자는 언어는 타고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생각을 직접적으로 하고 있든, 하고 있지 않든 상관없다. 촘스키가 만든 현대 언어학이 언어는 타고난다는 생각을 전제로 하기 때문이다. 언어가 타고난다고 보는 근거는 다음과 같다.


로봇이 배우기 어려워하는 것들은 대게 사람들이 쉽게 하는 것들이다. 사람들은 너무 자연스럽게 습득해서 설명조차 하기 힘든 기술들이다. 이런 것들이 모두 사람이 가지고 태어나는 것들이다. 로봇도 쉽게 배울 수 있을 거라 믿었던 걷기, 뛰기, 세밀한 손동작, 안면인식, 그리고 여기에 언어도 있다. 


음성인식

구글 홈과 같은 음성인식기술이 탑재된 제품들만 써봐도 금방 알 수 있다. '아니 얘는 왜 이런 것도 못 알아듣는 거야?'라는 생각을 누구나 한 번쯤 해 봤을 것이다. 내가 개떡같이 말해도 찰떡같이 알아들어야 할 것 같은 뛰어난 기계가, 내가 찰떡같이 말해도 못 알아듣고 '잘 알아듣지 못했습니다. 다시 한번 말씀해 주십시오'로 날 속 터지게 한다는 사실을.


구글이나 네이버 같은 대기업도 아직 완벽하게 만들지 못한 음성인식 기술을 인간 아이라면 만 3세만 돼도 완벽에 가깝게 한다는 사실. 신기하지 않은가? 아이들은 이렇게 쉽게 습득하는 언어를, 박사까지 마친 엄청난 수의 언어학자들 조차 언어의 정확한 규칙성을 발견한 바 없다. 


문법

성인이 돼서 배운 영어 문법은 머리에 쥐가 나도록 해도 완벽해지지 않는데, 미국 어린이들은 만 2세만 돼도 정관사/부정관사를 완벽하게 사용한다는 것도 신기한 사실이다. 심지어 듣도 보도 못한 단어를 가져다 들이밀어도 영어 모국어 화자는 정관사를 써야 할지, 부정관사를 써야 할지 '감각적'으로 정할 수 있다. 우리가 배운 문법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현상이다.


청각장애아동 사례

이런 신기한 일이 또 있다. 태어날 때부터 청각이 없는 아이들은 수화를 모국어로 사용하지만, 나중에 청각을 잃은 아이들은 수화도 제2외국어를 배운 것처럼 한다. 더 놀라운 사실은, 영어 수화를 모국어로 쓰는 아이들은 본능적으로 "listen (주의 깊게 듣는다)"과 "hear (들린다)"의 차이를 가르쳐 주지 않아도 제대로 구분해서 사용한다는 것이다.



만약 언어가 개인의 노력으로, 환경의 영향으로 습득할 수 있는 스킬 중 하나라면, 10살에 배우기 시작해도 완벽하게 배울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우리는 지니의 케이스를 통해, 이것이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다. 


언어라는 것이 우리가 가르칠 수 있는 무언가라고 한다면, AI는 우리보다 말을 훨씬 잘 알아듣고 잘 대답해야 한다 (여기서 다루는 언어 능력이란, 듣기와 말하기가리킨다).


그런데 왜 우리는 모국어는 쉽게 습득하면서 외국어는 모국어만큼 할 수 없는 걸까? 이중언어를 완벽하게 하는 아이들은 어떻게 두 가지 언어를 모국어처럼 쓸 수 있는 걸까? 대체 우리가 뭘 가지고 태어나길래 이런 차이점이 생기는 걸까? 


이 모든 질문들이 바로 언어학자들의 연구 주제이지만, 쉽게 답을 내리지 못했다. 오직 간접적인 추론을 통해 언어학자들의 주장을 뒷받침할 수 있는 근거를 제시할 수 있다. 과학적인 증명은 어려운 경우가 대다수다. 


심리학자 진영: 언어는 습득하는 것

심리학자와 언어학자의 언어에 대한 관심사는 다른 부분이 많지만, 언어 습득 연구에 있어서는 그렇지 않다. 오히려 핵심 논쟁 거리이다. 1950년대, 스키너의 행동심리학에서 강조한 교육과 반복의 중요성 언어학의 거장 촘스키가 정면에서 반박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그때부터 두 진영의 언어 전쟁이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언어가 타고난 것이라는 언어학자들의 주장을 뒷받침할 만한 근거는 쉽게 찾기 힘들다. 각 나라마다 사용하는 언어가 모두 다르기 때문에 걷기나 뛰기 같은 타고난 운동신경과 언어습득을 같은 선상에 놓기에 어려운 점도 많다. 그에 반해 심리학 관점에서는, 모국어는 배움의 과정이라는 주장을 뒷받침할만한 연구가 상당하다. 언어를 배울 때는 상호 작용할 대상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는 주장 또한 실험을 통해 간접적 지지가 가능한 내용이다. 


아이들이 모국어의 소리를 배우는 과정도 그렇다. 각 나라의 언어마다 조합이 가능한 발음이 있고, 불가능한 발음이 있는데 보통 모국어를 쓰는 아이들은 약 만 1세면 이 법칙을 모두 깨우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게 어떻게 가능할까? 그냥 타고났다고 퉁쳐버리기엔 설명해야 할 요소가 너무 많다.


심리학자들이 들고 나온 모국어 소리의 습득 기제는 바로 '통계'다. 아기를 대상으로 한 실험을 통해, 아기들이 모국어 소리의 조합 확률을 제대로 알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 바 있다. 또한 이런 연구 결과들은 대게 일반인들이 상식적으로 (비교적) 납득하기 쉬운 경우가 많다. 


심리학에서 주장하는 언어 습득 방식은 아이들의 발달 과정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아이들의 뇌 발달, 신체 발달 및 사회화 과정 속에서 적절한 외부와의 상호작용을 통해 언어를 습득하는 것이라고 보고 있다. 그렇다면, 그게 어떤 외부 자극인지 상관없이 외부 자극만 있으면 되는 걸까? 상호작용은 정확히 무엇일까? 이제 그 부분을 자세히 짚어 보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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