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 bucket list? 뭐 식당서버가 해보고 싶었던 일이었다고? 주변 사람들과 또 함께 일하는 서버들은 내가 서버를 시작한 이유에 대해 의아해했고 놀라워했다. 그들은 알고 있었다. 식당 서버가 얼마나 힘든 일인지... 식당에서 우연히 마주치는 지인들은 발바닥에 땀나게 식당홀을 휘젓고 돌아다니는 나를 보고, 그들이 아는 그 사람이 맞는지 눈이 휘둥그레졌다.
- 지인1: 거기 학교 일하러 다니는 거 아니었어? 다니던 직장은 어쩌고?
- 나: 투잡이에요. 서버를 한번 해 보고 싶었어요.
한심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는 어떤 어르신은 혀를 끌끌 차기 직전이다.
또 조심스럽게 질문 하나가 더 추가된다.
- 지인1: 남편이 아무 말 안 해요?
- 나: 네. 제가 하고 싶었던 일이었어요.
-지인2: 식당 인수하셨어요?
-나: 아뇨, 서버 해보고 싶었어요.
막상 이 세계에 발을 들이고 보니, 내가 손님으로 테이블에 앉아서 본 서버의 일은 새발의 피에 불과했다. 쉴틈이 없었다. 우리 식당은 테이블마다 벨이 있어 이곳 손님들에겐 신기하고 편리하지만, 서버들에겐 즉각 반응해야 하는 부담이 있다. 손님 받고, 테이블 차리고, 치우고, 기름 얼룩진 바비큐 그릴 치우고, 음식 나르고, 컵 씻고, 디쉬워셔에서 나온 그릇들 물기 닦고, 으아~ 끝이 없었다. 나는 저녁 타임에만 일할 수 있어서 항상 마감조를 해야 한다. 마감조는 그릴 청소에, 바닥 청소며, 화장실 청소에 으아~ 말 그대로 중노동이 따로 없었다. 그래서 주중 하루와 주말 하루, 이렇게 일주일에 이틀로 당분간은 일하기로 했다. 식당일을 한 뒤 다음날 피곤한 몸을 이끌고 내 사무실에 들어서는 순간, 아 이곳이 천국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 공간에 앉아 여유롭게 커피 마시며 자판을 두들기며 일하는 나의 일상이 참 감사했다.
2주간의 트레이닝기간 동안에는 팁을 나누어 주지 않았다. 이 사실을 아는 순간 많이 실망스러웠지만 제 역할을 못하는 초짜서버가 팁을 나눠 가져서는 안 된다는 의견에 동조하게 됐다. 트레이닝을 마치고 정식 서버를 시작한 첫날, 뒤통수에도 눈이 달려 나를 쫓아다니며 잔소리를 하던 서버 선배가 오늘 잘했다는 칭찬을 처음으로 해 주었다. 저녁 5시부터 밤 12시 반까지 화장실 한번 갈 틈 없이 일했다.
마음은 갈팡질팡...
"그래도 서버 경험 전무한 나를 믿고 바로 집어넣어 준 사장님을 생각해서라고 두 달은 버텨보자. 좀 더 익숙해지면 나아질 거야. 네가 한번 해보고 싶었던 일이잖아"
vs.
"최저 시급 받고 이 나이에 뭔 개고생이야, 몸 축내면서. 한번 해봤으니 그걸로 된 거야"하는
생각이 마음속에서 끊임없이 대립 중이다.
좋은 건 있냐고?
- 직원 할인 15퍼센트 (서빙하며 내가 꼭 먹어보리라 벼르고 있는 메뉴가 몇 개 있다. 도가니 수육과 김치 두루치기. 지인들과 함께 조만간 방문 예정이다)
- 손님들과 나누는 대화가 재미있다. 어젠 젊은 커플이 멀리서 이곳 불닭발이 먹고 싶어서 왔다고 다음에 또 보자며 환하게 웃고 간다.
- 셰프가 맛있게 만들어준 저녁식사가 무료다. 근데 이것은 저녁 손님들이 빠져나간 늦은 시간 (보통 9시 반 이후)에 먹는 거라 건강엔 좋지 않을 것 같다.
- 그리고 어제 처음 받은 서버팁 (정식 서버 첫날분, 많이 바쁜 날은 아니었다), 빠빳한 캐시가 흰 봉투에 들어 있었다. 돈은 박카스인가. 캐시를 보자 피곤이 가셨다. 그래서 힘들어도 서버를 하나보다 하는 생각에 오늘은 두 달은 버텨보자가 내 마음속에서 이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