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라우드 게이밍과 콘텐츠 (마지막)
Part.1에서 넷플릭스가 게임 구독 서비스 경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PC 기반 플랫폼에 특유의 콘텐츠 발굴 /개발 능력으로 독점 콘텐츠 중심 전략을 펴야 한다는 제 나름의 의견을 밝혔습니다. 그렇다면 어떤 방식으로 게이밍 서비스를 해야 할까요?
대부분의 게임 서비스 플랫폼은 다운로드 기반으로 주요 서비스를 제공합니다. 플랫폼에 접속해 게임을 다운로드하여 컴퓨터나 콘솔에 설치해 플레이하는 방식이지요.
하지만 최근에는 클라우드 게이밍이 급부상하고 있습니다. 클라우드 게이밍은 정의하는 사람에 따라 다양한 기술적 정의가 있지만 일반적으로 게임 서버가 사용자의 PC나 콘솔 역할을 해주는 방식을 뜻합니다. 사용자가 컨트롤러로 입력 신호를 보내면 게임 서버가 PC/콘솔 기능을 수행해 모든 게임 플레이를 처리한 후 사용자의 모니터로 스트리밍(화면 송출을 위한 인터넷 브라우저가 필요)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클라우드 게이밍은 사용자의 하드웨어 부담이 덜합니다. 최신 고사양 게임을 플레이하기 위해 PC를 업그레이드하지 않아도 되고 새로운 콘솔을 구입할 필요도 없습니다. 게임 서버가 그 역할을 대신해 주기 때문입니다. 사용자는 소정의 사용료를 지불하고 입력을 담당할 컨트롤러와 게임 화면을 스트리밍해 줄 모니터만 있으면 됩니다. 클라우드 게이밍은 이미 새로운 패러다임이 될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구글은 2019년 스태디아(Stadia)를 발표하며 클라우드 게이밍으로 본격적인 게임 산업 진출을 알렸습니다. 저는 샌프란시스코에서 개최된 2019 GDC(Game Developer Conference : 게임 개발자 콘퍼런스. 게임 산업 종사자들이 모여 지식과 노하우를 공유하는 콘퍼런스로 매년 미국과 유럽에서 개최)에 참석해 구글 스태디아 부스를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스태디아 부스에 여러 개의 테이블에 모니터와 구글 크롬북(구글이 출시한 저가형 랩탑)이 설치되어 있었고 각 화면에는 유비소프트의 어새신 크리드가 깔끔하게 구동되고 있었습니다. 부스 방문자들은 컨트롤러와 크롬북만으로 어떤 딜레이도 없이 어새신 크리드를 플레이했습니다. 이제 콘솔 게임 시장은 이제 끝났구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인상 깊은 경험이었습니다.
하지만 막상 스태디아의 뚜껑을 열었을 때 사람들은 실망감을 드러냈습니다. 완성품이 아닌 테스트 버전처럼 보인다는 악평이 쏟아졌습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중요한 이유 중 하나는 충분치 못한 통신망 속도였습니다. 클라우드 게이밍은 많은 데이터를 처리하기 위해 최소 5G 수준의 빠른 광대역 통신망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유무선 인터넷망이 잘 구축되었다는 우리나라조차 5G 통신 품질에 대한 갑론을박이 아직도 심한 걸 생각하면 안정적인 클라우드 게이밍 서비스는 구글조차 쉽지 않았을 겁니다. 많은 동시 접속자를 감당해야 하는 안정적인 게임 서버 구축 비용과 기술도 필요합니다. 결과적으로 스태디아는 안전성에서 실패를 맛봐야 했습니다.
결국 구글은 2021년 스태디아 개발팀을 해체시켰고 대부분의 관련 개발자와 책임자는 구글을 떠나야 했습니다. 구글 정도의 기술력을 보유한 기업조차 클라우드 게이밍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 넷플릭스는 어떨까요?
넷플릭스는 영상 스트리밍 기술 기반의 기업입니다. 영상 압축과 전송 기술은 뛰어나지만 게임 스트리밍은 다른 레벨의 기술이 필요합니다. 게임 화면 송출은 당연하고 실시간으로 유저의 입력 신호를 처리해 피드백을 오차와 지연 없이 사용자에게 다시 전달해야 합니다. 블랙 미러 : 밴더 스내치나 맨 vs 와일드에서 시청자의 선택에 따라 이야기가 달라지는 인터렉티브 영상 콘텐츠를 서비스하긴 했지만 게임은 영상과는 비교도 안될 정도로 복잡하고 빠른 사용자의 선택을 처리합니다. 넷플릭스가 클라우드 게이밍에 진출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뜻은 아닙니다. 하지만 장기간의 연구가 필요한 만큼 독자적인 클라우드 게이밍 기술이 개발 완료됐을 때에는 다른 기업에게 뒤쳐질 수밖에 없습니다. 실제로 구글과 달리 마이크로소프트는 게임 패스로 클라우드 게이밍을 지원하고 있으며 사용자는 XBOX 없이도 모바일로 게임 패스를 사용할 수 있습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클라우드 게이밍에서도 시장 선도적 위치를 점하고 있습니다.
넷플릭스가 클라우드 게이밍 산업에 진출하는 가장 빠른 방법은 클라우드 게이밍 기술 전문 개발사의 발굴/투자나 인수합병이라고 생각합니다. 언젠가는 클라우드 게이밍이 대세가 될 가능성이 높은 만큼 넷플릭스가 클라우드 게이밍에 바로 뛰어들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클라우드 게이밍이 요구하는 비용과 기술력을 생각하면 넷플릭스 게이밍의 좋은 시작점은 될 수 없습니다. 게이머가 아직 클라우드 게이밍을 간절히 원하는지도 불분명합니다. 게이머에게 중요한 건 재미있는 게임이지 새로운 기술력이 아닙니다. 게이머는 게임이 재미있다면 매체와 방식을 따지지 않습니다. 오프라인에서 소프트웨어를 구입할 수도 있고 손쉽게 유료 다운로드로 게임을 플레이할 수도 있습니다. 넷플릭스 게이밍의 시작은 다운로드 기반 구독 서비스가 되는 것이 가장 합리적입니다. 다운로드 기반 플랫폼은 이미 검증된 방식인 만큼 도입이 어렵지 않고 비용도 줄일 수 있습니다. 넷플릭스 특유의 혁신 중심 기업 문화를 생각하면 시작은 다운로드 기반 구독 서비스더라도 그 안에서 다른 게임 플랫폼과의 차별점을 만들어 내고 혁신적인 기술을 빠르게 도입할 가능성도 있습니다. 클라우드 게이밍은 넷플릭스의 지향점이자 통과점이 되어야 합니다. 아직은 게임 구독 서비스를 하기 위해 클라우드 게이밍으로 욕심낼 필요가 없는 상황이기도 합니다.
게임 개발자이자 유저로서 넷플릭스의 게임 시장 진출은 환영할 일입니다. 좋은 콘텐츠를 공급하는 기업이 하나 더 생기면 게이머는 즐거울 수밖에 없습니다. 게임에서 기술은 분명 중요한 요소입니다. 하지만 기술이 모든 것을 결정하지는 않습니다. 게임을 결정하는 것은 재미입니다. 소니의 플레이 스테이션은 마이크로소프트의 XBOX와 비교하면 기술적으로 뒤쳐진 것처럼 보입니다. 플레이 스테이션 5는 클라우드 게이밍도 빈약하고 머신러닝 리마스터나 파격적인 하위 호환 기능도 없지만 여전히 XBOX보다 많이 팔립니다. 플레이 스테이션 4는 양질의 독점 콘텐츠를 보급했고 게이머는 새로운 세대의 플레이 스테이션에서도 재미있는 독점 콘텐츠를 원하기 때문입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콘텐츠입니다. 넷플릭스 게이밍이 경쟁에서 살아남고 싶다면 콘텐츠를 가장 우선해야 합니다. 기술은 그다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