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관리한다고 해서 팀원은 달라지지 않는다.
기획자로 일을 시작한 지 6년쯤 지났을 때, 저는 처음으로 PM이라는 직책을 달게 됩니다. 제가 다니는 회사에서 PM은 프로젝트 관리자이자 팀장 역할까지 맡습니다. 프로젝트 상태를 살피고 진행하는 역할은 물론이고 각 팀원의 인사/성과 관리까지 책임져야 한다는 뜻입니다. 살면서 반장 한 번 해본 적 없던 제가 어느 날 갑자기 20명 가까운 팀원을 관리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어려운 직책을 맡아야 하는 상황이 부담스럽기도 했지만 한 편으로는 기대도 됐습니다. 관리자로서 팀원과 함께 어려운 문제를 극복하고 프로젝트를 성공시킬 수도 있다는 순진한 생각이 그런 몹쓸 기대를 하게 한 것이지요.
저는 관리자로 일한 4년 동안, 관리자 이전의 36년의 인간관계에서 배운 것보다 더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그 배움이 결과적으로 제 인생에 긍정적인 역할을 하는 교훈이 되었지만 그중 대부분은 부정적인 경험을 통해 깨우친 것입니다. 배움이란 스스로 깨우칠 때 가장 효과가 크지만 이 글을 읽으시는 신입 관리자들께서 시행착오를 조금이라도 줄이실 수 있도록 제가 배운 것을 글 몇 편으로 엮어 전달드리고자 합니다.
프로젝트 팀의 실무자 중 한 명으로 일할 때는 몰랐지만 관리자가 되어보니 옆 동료의 몰랐던 부분을 알게 됩니다. 기획자로 일할 때는 제가 작성한 기획서를 토대로 기능을 구현할 개발자, 아티스트와 협력해 새로운 콘텐츠나 시스템을 업데이트하는 것에만 집중하면 됐습니다. 필요한 때에 동료 팀원의 옆자리로 가서 대화를 하거나 다 같이 회의를 하면 됐기에 각 팀원에게 관심을 가질 필요를 느끼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관리자가 되어 실무를 멀리하고 프로젝트 전체를 이끌고 가야 하다 보니 상황이 180도 달라집니다. 관리자는 각 팀원과 수시로 대화를 해야 합니다. 프로젝트 진행을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인지, 관리자가 해결해 줘야 하는 문제는 없는지, 프로젝트의 방향성에 맞게 업무를 하고 있는지 파악하고 수시로 피드백을 줘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 보니 실무자일 때는 못 보던 팀원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개인적으로 곤란했던 팀원은 같은 문제를 반복적으로 일으키는 부류였습니다. 많은 사례가 있지만 자기 관리가 잘 되지 않아 음주 후 수시로 휴가를 사용해 자리를 비우거나 지각을 일삼던 근태 불량 팀원이 먼저 떠오릅니다. 제가 몸담고 있는 회사는 휴가나 탄력근무를 상당히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그 팀원은 회사의 정책을 악용했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 실제로 그 팀원은 연말에는 마이너스 연차를 기록해 급여를 차감당하는 일도 있었습니다. 저는 이런 문제가 있는 팀원은 1차원적으로 이유가 분명하고 해결책도 뚜렷해 금방 행동을 개선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누구나 그럴싸한 계획이 있다. 처 맞기 전까지는'이라는 타이슨의 명언처럼 문제 해결은 쉽지 않았습니다.
우선 근태가 좋지 않던 팀원을 불러 문제 해결을 위해 대화를 나눴습니다.
'왜 지각을 했나요?'
'병가를 자주 쓰는데 지병이 있거나 최근에 몸이 안 좋아졌나요?'
'제가 알지 못하는 개인적인 문제가 있나요?'
'도움이 필요한 이슈가 있나요?'
문제 해결을 위해 다양한 질문을 하며 최대한 점잖게 문제를 해결하고 싶었습니다. 친하지는 않았지만 함께 일한 경험이 있는 동료였고 문제 있는 팀원의 태도 개선을 이끌어 낼 줄 아는 관리자가 좋은 관리자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처음 몇 차례 면담에서는 일이 잘 해결될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 팀원도 자신의 문제를 인정하는 것처럼 보였고 문제 재발을 위해 노력하겠다는 다짐도 받았으니까요. 하지만 해결되는 것 같은 신기루만 봤을 뿐 문제는 1%도 해결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관리자인 제가 직접적인 인사 조치를 취하지 않고 상위 관리자에게 문제를 보고하지 않는다는 것을 이용하는 것처럼 보일 정도로 고질적인 변명을 반복했습니다.
제가 문제의 심각성을 느낀 건 저의 상사가 해당 팀원 이야기를 직접 꺼냈을 때였습니다. 해당 팀원의 이름을 거론하며 근태가 좋지 않은데 관리자로서 조치를 취해야 하지 않냐는 피드백을 받았을 때 문제는 걷잡을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다른 팀원도 근태 불량 팀원이 문제가 많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듣기 싫은 소리를 하는 팀원으로 비치고 싶지 않아 상황을 회피했을 뿐이고 제 시선이 닿지 않는 곳에서 험담만 해왔던 것입니다. 실제로 4명으로 구성된 집단에 게으름을 피우거나 분위기를 흐리는 사람이 단 한 명만 있어도 전체의 분위기가 악화된다는 연구 조사 결과가 있습니다. 저는 행동을 직접 개선해 보고자 시간을 들였을 뿐인데 팀의 분위기는 저도 모르는 사이 상당히 흐려져 있었습니다.
제 의지와는 상관없이 프로젝트 진행 방향이 바뀌면서 팀은 여러 차례 변화를 거쳤고 분위기를 안 좋게 만들던 근태 불량 팀원은 저와 다른 팀으로 이동하게 됐습니다. 다른 팀에서 그 팀원의 근태는 달라졌을까요? 전혀 그렇지 않았습니다. 다른 부분은 몰라도 근태만큼은 일관된 모습을 보여주던 그 팀원은 프로젝트가 정리되면서 회사를 떠나야 했습니다. 회사 방침에 따라 프로젝트가 해산되면서 대부분의 팀원은 다른 프로젝트로 소속을 변경했음에도 외면을 받아야 했습니다. 이미 다른 팀에서도 문제를 알고 있었던 것이지요.
하지만 이후에도 무슨 배짱인지 피드백과 집중 관리를 통해 문제 있는 팀원을 변화시킬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은 바뀌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여러 차례 큰 좌절을 더 겪은 후 생각을 바꿀 수밖에 없었습니다. 누가 봐도 명백한 문제가 있는 팀원을 개선하기 위한 면담과 피드백은 격식을 갖춰 최대 3회 정도면 충분합니다. 그 정도로 언급을 해줬는데도 행동이 개선되지 않는다면 그때부터는 팀원의 문제라고 봐도 무방합니다. 관리자의 역량이 뛰어나면 팀원 개선에 에너지를 쏟을 수도 있지만 그 에너지를 프로젝트 진행과 우수한 팀원 관리를 위해 사용하는 편이 더 생산적입니다. 실제로 그렇게 하는 관리자가 더 뛰어난 관리자이기도 합니다.
관리자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이 인정해야 할 사실이 있습니다. 사람은 긍정적이고 생산적인 방향으로 변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변화를 이끌어 내는 건 본인이어야 하고 타인에 의해 변화를 이끌어 내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특히 직장생활을 할 정도로 성인이 된 이후라면 변화의 어려움은 수직 상승합니다. 관리자는 이 사실을 누구보다 인정해야 합니다. 문제가 있는 팀원은 다른 팀원을 위해서라도 팀에서 내보내는 쪽을 선택하는 편이 좋습니다.
'당신과 더 이상 함께 할 수 없습니다'라는 말은 관리자라면 반드시 연습해야 할 말입니다. '난 그 사람을 바꿀 수 있다'는 생각은 오만입니다. 그런 생각이 들 때는 자신의 삶을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습관 하나를 고치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과 고통이 있었는지, 실제로 고친 습관은 얼마나 되는지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관리자는 신이 아닙니다. 인간이기 때문에 한정된 에너지를 좋은 팀 분위기를 위해 쓰는 편이 훨씬 쉽고 합리적입니다. 그 사실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었다면 신입 관리자인 당신도 한 발 앞으로 전진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