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육아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운아빠 Jul 23. 2021

심장의 거리



새벽 시간의 독서와 글쓰기를 좋아하는 나는 특별한 날이 아니면 4:40분에 일어난다. 

졸린 눈을 비비며 눈을 뜨고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양치와 샤워다. 샤워하고 나올 때의 개운함이 너무 좋다. 거실에서는 와이프와 둘째가 곤히 자고 있다. 첫째와 나의 잠버릇에 혹시 둘째가 곤경에 처할까 어쩔 수 없이 따로 자고 있는데, 그래서 늘 조심스럽다. 물론 항상 와이프는 내 샤워 소리에 깨긴 하지만.

몇 번 잠자리를 바꿔보자고 청해 보지만, 와이프께서는 요즘 같은 날씨에는 둘째가 더우면 땀띠가 나서 안 된다며 청을 허하지 않는다.

샤워 소리에 잠을 깬 와이프는 눈을 날카롭게 뜨고 나를 째려본 후 다시 눈을 감는다. 2~3시간마다 정확하게 돌아오는 둘째의 식사 시간으로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하는 와이프에게 미안한 마음에 머리맡에 가서 미안하다고 조용히 속삭인다.

유일한 혼자만의 시간인 새벽 한두 시간은 나에게 너무 소중한 시간이다. 주로 조용히 책을 읽거나 글을 쓰는데 그 소중한 시간을 사용한다.  얼마전까지만 해도 바로 스마트폰을 열고 아직 업데이트되지 않은 전날의 기사들을 보거나 웹툰, 아니면 유튜브를 보는데 시간을 많이 잡아먹었었다. 하지만 그 시간의 효용성이 너무 떨어진다는 사실을 인지한 얼마 전부터는 의식적으로 다른 행동은 하지 않으려 노력한다.

쓰기의 재주가 그다지 뛰어나지 못해 부지런히 써야 함을 알기에 요즘은 주로 쓰는 시간에 집중하는 편이다. 가만히 앉아서 불현듯 생각나는 잡생각들을 적어놓은 메모장을 훑어본다. 마땅히 구미에 당기는 쓰기의 주제가 없다고 생각하는 찰나. 거실에서 꼬물거리는 소리가 나더니 급기야 둘째의 우는 소리가 들린다. 와이프와 나는 그 울음이 무슨 의미인지 안다. 아니 와이프는 알 수 있지만 나는 알지는 못하고 사실 추측한다.

으앙 = 배고파 밥 줘

가끔 다른 의미로 울기도 하지만 우리 집 둘째는 90% 이상 배고플 때만 운다.

24시간 육아만 하는 와이프에게 더 자라고 한 후 분유를 탄다. 밖에서 활동을 많이 하기에 집에 있을 때는 둘째와의 친밀감을 높이기 위해 분유는 최대한 내가 먹여주려 한다.

40도의 미지근한 물에 3스푼의 분유를 섞은 후 자리를 잡는다. 한참을 배고프다며 농성하는 둘째를 조심스레 안는다. 신기하게도 둘째는 분유 타임 전 안아주는 느낌을 구별하는 것 같다. 언제 울었냐는 듯이 가만히 시선을 나에게 준다. 땀이 나지 않도록 둘째의 머리와 내 팔 사이에 천을 대고, 손수건을 둘째의 목에 낀다. 목에 포동포동하게 살이 찐 둘째의 목에 손수건을 끼는 모습은 자칫 배고픈 목이 손수건을 먹는 거로 보인다.

품에 안겨 허겁지겁 분유를 먹는 모습을 보면 그렇게 귀엽고 사랑스러울 수가 없다.

분유를 다 먹으면 꼭 트림을 시킨다. 한 손으로는 엉덩이를, 다른 한 손으로는 목 뒤를 잡고 내 가슴팍에 올려놓는다. 목을 약간 젖혀 배속의 가스가 일직선으로 밖으로 배출될 수 있도록 자리를 잡고 등을 살짝살짝 시계방향 또는 위로 문질러준다. 자세가 제대로 잡히면 보통 20초 안에, 시원한 트림 소리를 듣는다. 꺼~~억, 꺼~~억

자기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의 트림 소리에 내가 한 것 마냥 시원하고 기분 좋은 소리로 들리는 건 신기한 일이라는 생각을 한다.

가슴으로 둘째를 꼭 안고 있을 때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사람과 사람이 안고 있을 때 심장의 거리는 정말 가깝구나. 그 거리를 단순히 숫자의 단위로 표현하기에는 조금은 차가운 느낌이 들어 다른 좋은 단어가 뭐가 있을까 생각을 해본다. 여러 가지 단어가 생각날 법도 한데 한 번에 떠오른 단어 한치. 바다에 사는 오징어 사촌 한치 말고. 네이버에 검색해보니 한치의 길이는 약 3.03cm라고 했다.

와이프, 큰아들, 작은아들과의 거리를 이 한치만큼 가깝도록 자주 안아줘야겠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