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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운아빠 Jul 02. 2021

"아빠 밥이 아픈가 봐"

어린아이의 순수함


며칠 전 저녁을 먹기 위해 전기밥솥에 밥을 안치고,

집 앞 놀이터에서 나는 악당 좀비 역할을(결코 원해서 하는 역할은 아니다),  아들은 킥보드를 탄 착한 왕자가 되어 끝나지 않는 추격전을 벌였다.

한참을 서로 잡고 잡히며 결코 끝나지 않을 것만 갔던 추격전은 아들의 배꼽시계가 울림으로 인해 끝이 났다.

집에 들어와 조금 전까지 벌인 치열했던 추격전으로 흘린 땀을 닦기 위해 샤워를 했다.

아들과의 샤워는 항상 전쟁이다. 뭐가 그리도 궁금한 게 많고 잠시도 가만있지 못하는지.

건강하다는 뜻이겠거니 생각하며 오늘도 있는 힘껏 소리를 친다 “가만히 좀 있어”

전쟁 같은 샤워를 끝낸 후 굶주린 배를 채우기 위해 한 시간 전  안쳐 놓은 전기밥솥의 뚜껑을 열었다.

밥솥이 고장 난 건가? 밥은 수분이 다 날아가고 씹으면 입에서 마구 돌아다녔다.

아들에게 밥이 이상하게 되었다며 한입 줘보니,

아빠 밥이 아픈가 봐

아들은 입안에서 날아가는 밥알을 씹으며 귀여운 표정으로 말했다.

생전 처음 들어보는 단어의 어울리지 않는 듯하면서도 어울리는 조합이었다. 밥 그리고 아프다.

문득 아들의 순수함에  절로 미소가 지어지며, 기특함과 사랑스러움을 느꼈다. 아들을 꼭 껴안아주며 사랑한다고 말했다.


그것도 잠시, 사람은 일단 배가 차 있어야 행복도 더 커지는가 보다.

뱃속에서 꼬르륵 소리가 빨리 밥을 달라고 항의하듯이 강하게 소리쳤다.

아들이 보기에 아픈 밥을 살리기 위해 물을 더 보충하고 마법의 취사 버튼을 누름으로써 건강한 밥으로 돌아오기를 염원했지만 결국은 실패로 돌아갔다.

결국 나는 신라면, 아들은 짜파게티로 주린 배를 채웠다.


적당히 배를 채우고 아들과 둘이 소파에 꼭 붙어 앉아서 아이스크림을 하나씩 먹으며 각자의 시간을 보냈다.

아들은 TV로 미니언즈를 보고, 나는 며칠 전 중고서점에서 구입한 1리터의 눈물을 읽었다.

평소 같으면 와이프의 잔소리에 소파에서 아이스크림을 먹기는 힘들었을 테지만, 다행히 와이프는 지금 조리원에 있다.


평범하지만 평화로운 아빠와 아들의 저녁 풍경, 아들의 순수함을 느낀 기분 좋은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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