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부. 5G 새로운 도전
5G 표준 개발을 위한 시작은 ITU-R이 지난 2012년 7월 개최된 회의에서 2020년 또는 그 이후의 미래 IMT 기술 동향 보고서와 미래 IMT 비전 권고를 개발하겠다고 발표한 이후부터다.
당시 5G 상용화 시점을 2020년으로 잠정 설정했기에 무려 8년전부터 5G 표준 연구를 시작한 셈이다. ITU가 내년부터 6G 표준 연구에 본격적으로 착수할 예정으로 상용화 시기를 2028년으로 잠정 설정한 기간보다 5G는 신속하게 준비한 셈이다.
2015년 6월 10일. ITU는 미국 샌디에이고에서 ITU-R WP5D(이동통신작업반) 회의를 개최했다. 회의는 같은달 18일까지 열렸다. 이 곳에서는 5G에 대한 새로운 명칭과 핵심성능 요구사항에 대한 청사진을 담은 비전 초안과 2020년까지 이를 구현하기 위한 5G 이동통신 표준을 완료하는 일정에 합의했다.
5G 핵심성능 요구사항에는 ‘20Gbps’ - LTE의 핵심성능 요구사항의 다운로드 속도가 1Gbps였기에 20Gbps는 20배 빠른 속도를 의미한다. ITU는 2008년 IMT-어드밴스드에 대한 핵심성능 요구사항을 발표한 바 있다 - 라는 명시적인 속도 수치가 등장했다. 이 밖에도 20Gbps 데이터 전송뿐만 아니라 1제곱킬로미터(Km2)에서 약 100만개 기기들에게 사물인터넷(IoT) 서비스 제공, 기지국 내 100Mbps 이상의 빠른 속도로 데이터 송수신 등이 요구사항으로 제시됐다.
ITU의 발표 이후 이동통신사와 네트워크장비업체, 단말칩셋업체들이 5G 최대 속도를 20Gbps로 설정하고 이에 따른 도전을 발표했다. 에릭슨과 노키아는 20Gbps가 5G 최고속도라는 점을 강조했으며, 호주 텔스트라와 아르헨티나 무비스타, 이탈리아 TIM 역시 20Gbps 달성을 위한 항해를 시작한다고 알렸다.
5세대통신(5G)의 명칭을 두고 ‘IMT-2020’과 ‘IMT-2020 커넥트’가 대립했다. 결과적으로 업계 니즈에 맞춰 ‘IMT-2020’으로 최종 확정했다. 최근에는 5G보다 진화한 세대를 가리켜 ‘5G-어드벤스드’로 명명한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그간 ITU는 각각의 국제표준을 정립하는데 있어 새로운 표준명칭을 도입해왔다. 대표적으로 3세대통신(3G)에 해당되는 ITU의 표준명칭은 ‘IMT-2000’, 4세대통신(4G)은 ‘IMT-Advanced’다. 이같은 국제 표준 속에 흔히 말하는 CDMA2000이나 WCCDMA, EDGE, 모바일 와이맥스, LTE-어드밴스드 등의 사실 표준들이 자리하게 된다.
2015년 당시 ITU는 IMT-2020 비전 발표와 함께 같은해 10월까지 회원국 회람을 거쳐 해당 내용을 최종 승인하고 2017년부터 정식으로 5G 후보 기술을 접수하는 표준화 일정을 진행하기로 했다. 즉, 각국의 표준화 기관이나 학계, 기업 등 다양한 이해관계인들이 5G의 핵심성능 요구사항을 충족할 수 있는 규격을 2017년부터 제출해 정식 표준으로 승인받아야 한다는 의미다.
다만, 이같은 절차가 한번에 모두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5G 핵심성능 요구사항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단계적인 기술진화가 필요하고, 여러 제반사항들이 따라줘야 한다.
예를 들어 ITU가 표준을 제안받는데 4년이 걸렸고, 이를 승인하는데 4년이 또 필요했다면, 실제 이 표준에 맞춰 서비스가 상용화되는 시기로 또 4년이 걸릴 수 있다. 결국 표준에 입각한 서비스가 도입되는데 무려 12년이 걸리는 셈이다. 그 사이 많은 업체가 흥망성쇠에 시달릴 수 있고 또 기술 진화로 인해 현재 표준이 무용지물이 될 수도 있다.
표준이 표준으로서의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기술 진화와 서비스 상용화에 맞춰 때마다 미래 불확실성을 없애줘야 한다. 표준과 기술, 서비스가 동시다발적으로 서로 유기적인 관계를 맺고 간극을 최소화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그렇기에 ITU가 글로벌 이동통신의 약속을 공식화하는 기구라면, 실제로 사실표준은 각국의 표준화기관이나 글로벌 협의체들이 개발하고 있다. 이들은 업계 이해관계자들과 지속적인 소통을 통해서 차기 기술에 대한 로드맵을 공유해 제안할 수 있는 규격을 고안한다. 표준이 일종의 약속이기에 전세계적으로 통용될 수 있는 조건이 갖춰졌다면 ‘사전조치 사후승인’이 가능하다.
대표적인 표준화기구가 3GPP다. 1998년 12월 개설된 이 협의체는 각국의 표준화단체들이 참여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한국정보통신기술협회(TTA)뿐만 아니라 유럽전기통신표준협회(ETSI), 일본전파산업협회(ARIB), 중국통신표준협회(CCSA), 미국통신사업자연합(ATIS) 등이 포함됐다. 당초 유럽식 3G 규격인 GSM의 표준뿐만 아니라 주도권 확보를 위해 결성됐으나 릴리즈(Release) 단위로 점차 진화를 이뤄 ITU IMT-2020 표준 제안에 핵심적 구실을 하는데까지 나아갔다.
3GPP는 ITU가 정한 비전을 실현시키기 위해 지속적인 규격 개발에 나서고 있다. 릴리즈15를 통해 5G 비독립모드(NSA)를 제안한 3GPP는 릴리즈16을 통해 독립모드(SA)뿐만 아니라 다양한 데이터 전송기술들에 대한 규격을 고안했다. 이후 릴리즈17과 18이 병행해 개발 진행됐다.
ITU의 발표 전에도 글로벌 유관기업들은 이미 5G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는 상태였다. 3GPP 역시 ‘릴리즈15’를 통해 ‘5G NR(New Radio)’ 표준 정립에 공을 들이고 있었다.
당시 5G의 핵심은 이동통신이 보급된 저주파 대역을 넘어 6GHz 이하 대역(Sub-6)을 통칭하는 중대역과 초고주파 대역(mmWave)을 모두 사용할 수 있다는 데 있었다. 다만, 5G NR 인프라와 장치를 기반으로 한 최초의 배포는 2020년까지 불가능하다고 내다봤다. 관련 기지국 장비 및 단말 상용화 시점도 그에 맞춰 2020년으로 설정됐다.
하지만 시장은 기민하게 움직였다. 4차산업혁명을 앞두고 차세대 먹거리를 갈망했던 글로벌 네트워크 장비업체와 이동통신업체, 단말 및 부품 업체 등은 보다 빠른 5G 도입을 통해 시장을 선점해야 한다는 요구사항이 컸다.
이에 따라 2017년 초 미국 AT&T와 일본 NTT 도코모뿐만 아니라 SK텔레콤, KT, LG유플러스 등 국내 이동통신사업자와 에릭슨, 노키아 등 네트워크 장비업체, 퀄컴과 인텔, 미디어텍 등 반도체 기업 등이 모여 표준화 일정 가속화에 대한 공동 지원을 발표했다.
이들의 제안은 5G NR 가속화를 위한 절차로 무선에서의 5G와, 코어장비에 이르는 유선 LTE를 활용한 비독립모드(NSA)를 통해 망구성과 관련된 기술 사양을 조기에 완성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결론적으로 3GPP는 2017년 3월 크로아티아에서 열린 RAN 총회에서 글로벌 5G 표준이 포함된 릴리즈15의 일부인 5G NR 규격 개발 계획안을 승인했다. 5G 조기 도입을 통해 당초 계획했던 2020년 상용화 시점을 1년 앞당긴 2019년 가능하도록 조정하기로 했다.
이후 같은해 12월 18일 3GPP는 포르투칼 리스본에서 열린 기술총회를 통해 5G 기술 및 주파수 1파 표준이 승인됐음을 선언했다. 5G NSA 표준 규격(얼리드롭)이 이 때 발표됐다.
한국도 이같은 표준 설계에 많은 성과를 냈다. 한국정보통신기술협회(TTA)부터 국내 연구기관, 이통사, 제조사들이 다양한 기술을 제안해 표준에 포함됐기 때문이다. 초고주파 대역인 28GHz 주파수 정의 및 무선성능(RF) 요구사항, 다중프레임 구조, 빔포밍, LDPC 채널코딩 등 5G 상용화를 위한 핵심 요소에 대해 국내 산학연이 주도적 역할을 수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