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부. 코로나19, 모바일 수난기
2020년 상반기, 이동통신 업계의 시선은 삼성전자의 '1억 화소' 괴물 스펙에 쏠려 있었지만, 그 이면에서는 한 시대의 거인이 생존을 건 마지막 탈출구를 찾고 있었다. 20분기 연속 적자라는 늪에 빠진 LG전자가 8년간 유지해온 'G'와 'V'라는 이름을 버리는 결단을 내린 것이다.
그들이 선택한 새로운 이름은 'LG 벨벳(Velvet)'.
만져보고 싶은 매끄러운 디자인을 앞세워 '매스 프리미엄'이라는 기묘한 전략을 들고나온 LG의 승부수는 과연 무엇을 남겼을까.
2020년은 5G 스마트폰의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던 시기였다. 삼성전자의 갤럭시 S20 울트라는 160만 원에 육박했고, 소비자들은 비싼 요금제와 단말기 가격에 피로감을 호소했다. LG전자는 이 지점을 정조준했다. 최고급 사양보다는 대중이 수용 가능한 가격대에 프리미엄급 디자인을 입힌 '매스 프리미엄(Mass Premium)'을 새로운 생존 전략으로 수립한 것이다.
LG에게 벨벳은 단순한 신제품이 아니었다. 피처폰 시절 '초콜릿폰'과 '프라다폰'으로 전 세계를 호령했던 '디자인 명가'의 자존심을 되찾기 위한 회귀이자, 벼랑 끝에서 던진 마지막 주사위였다.
성능 지표인 벤치마크 점수 대신, 손에 쥐었을 때의 그립감과 눈에 보이는 아름다움으로 승부하겠다는 LG의 전략은 당시 정체된 스마트폰 시장에 신선한 충격을 주기에 충분했다.
LG 벨벳의 핵심 기술은 역설적이게도 '보이지 않는 기술'에 집중됐다. 전면 디스플레이 좌우 끝을 완만하게 굽힌 '3D 아크 디자인'과 후면의 '물방울 카메라' 배치는 투박한 카메라 섬(Island) 디자인이 판치던 시장에서 군계일학의 우아함을 뽐냈다. 하지만 화려한 외관 뒤에서는 '성능'을 둘러싼 치열한 논쟁이 벌어졌다.
가장 큰 갈등은 두뇌 역할을 하는 AP(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에서 터져 나왔다. 89만9천800원이라는 출고가에도 불구하고, 퀄컴의 최상위 칩셋인 스냅드래곤 865가 아닌 중상급형 '스냅드래곤 765 5G'를 탑재한 것이 화근이었다.
여기에 LG 스마트폰의 정체성이자 팬덤의 강력한 지지 기반이었던 '하이파이 쿼드 댁(Hi-Fi Quad DAC)'까지 제거되자, 기존 사용자들 사이에서는 "껍데기만 바꾼 원가 절감형 모델"이라는 혹평이 쏟아졌다.
LG 내부에서도 가격 경쟁력을 위해 사양을 타협해야 한다는 실무진과 프리미엄의 자존심을 지켜야 한다는 목소리가 팽팽히 맞섰으나, 결국 '디자인 중심의 효율성'이 승리하며 벨벳은 세상에 나왔다.
2020년 5월 출시된 LG 벨벳의 성적표는 냉정했다. 초반에는 "역대급 디자인"이라는 호평 속에 기대를 모았으나, 실제 판매량으로 이어지지는 못했다. 출시 한 달간 판매량은 전작인 V50 씽큐의 절반 수준에도 미치지 못하는 부진을 겪었다. 스펙을 중시하는 한국 시장의 특성상, 90만 원에 가까운 가격을 지불하고 중급형 칩셋을 선택할 소비자는 많지 않았다.
산업적으로 벨벳은 LG전자의 모바일 사업 철수를 앞당긴 결정타가 됐다. 벨벳의 부진은 26분기 연속 적자라는 기록으로 이어졌고, 이는 LG 내부에서 "이제는 정말 한계"라는 인식을 고착화시켰다.
다만 일상생활에서는 자급제 시장과 결합한 독특한 마케팅 - 예를 들어 벨벳 폰 교체 프로그램 등 -이 시도되며, 통신사가 주도하던 단말 유통 구조에 새로운 변화를 꾀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또한, 성능보다는 개인의 개성을 중시하는 '가심비' 소비 트렌드를 스마트폰 시장에 화두로 던진 사건이기도 했다.
LG 벨벳은 한국 이동통신 역사에서 '성능 과잉의 시대'에 대한 의미 있는 저항이자, 동시에 브랜드 파워가 뒷받침되지 않은 디자인 중심 전략의 위험성을 보여준 사례다. 벨벳의 실패는 LG전자로 하여금 일반적인 형태의 스마트폰으로는 승산이 없다는 판단을 내리게 했으며, 이는 곧이어 상식을 파괴하는 폼팩터인 'LG 윙(Wing)'과 미완의 꿈으로 남은 'LG 롤러블'로 이어지는 극단적인 혁신의 계보를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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