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공주병이 찾아오지 않은 이유
요즘 교회에 가면 5, 6, 7세 유치부 아이들의 패션을 구경하는 재미가 있다. 하늘하늘한 레이스 치마나 공주캉캉치마, 머리에는 왕관을 쓰고 조그마한 가방을 들고 알록달록 겨울왕국 엘사나 티니핑 원피스를 입고 있다. 장난감도 화장품 세트, 화장대, 미용실 장난감을 가지고 놀며 아이들용 화장품을 바르는 척하며 논다. 내가 즐겨보는 5살 여자 아이가 나오는 유튜브에서도 여자아이는 공주 옷을 입고 유치원에 다닌다. 정말 신기한 일이다. 여자 아이 인생 5살에는 무슨 일이 일어나길래 다 같이 공주 최면에 걸리는 걸까?
나는 2살 터울의 오빠가 있는 여동생이었고 우리 가족은 살갑거나 경제적으로 풍족하지 않아 아이의 동심을 지켜줄 여유가 없었던 듯하다. 세계명작동화를 읽으며 공주 이야기를 접하고 백마 탄 왕자님을 꿈꿨던 것 같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동화라고 생각했다. 내가 주인공이자 공주가 되고 싶다고는 감히 꿈꾸지 못했다. 그 이유를 생각해 보면 다음과 같다.
1. 2살 터울의 오빠
나는 이미 오빠가 가지고 논 장난감들을 물려받아 갖고 놀았다. 그야말로 남자 장난감, 예를 들어 변신 로보트나 미니카, 레고 블록을 주구장창 갖고 놀았다. 오빠랑 같이 놀기에는 이 편이 더 익숙했다. 공주 인형, 인형 옷 입히기, 역할 놀이 같은 놀이는 옆집 혜수 집에 가서 잠깐씩 하고 놀았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까지 여자 아이들은 인형을 갖고 논다. 초등학교 3학년 때 친한 친구랑 다른 친구 네 집에 놀러 간 적이 있는데 예쁘게 꾸며진 여자아이 방에서 폴리 포켓이라는 장난감을 가지고 논 기억이 난다. 그 아이는 그 장난감을 여러 개 갖고 있었는데 난 하나에 몇 만 원이나 하는 공주 취향의 장난감은 가져보지 못했다. 25년 전쯤에 3-4만 원 했는데 지금 찾아보니 8만 원 대이다. 예쁜 집이나 테마가 있는 장소에 예쁜 여자 피규어를 가지고 역할놀이를 하는 것이다. 여자아이들은 이런 역할놀이를 하며 치장하는 어른의 삶을 꿈꾸나 보다.
2. 치마 트라우마
난 치마가 거의 없었지만 유치원 때 2개 정도 입었던 기억이 나는데 그마저도 초등학생 때부턴 입지 않았다. 7살쯤 모처럼 치마를 입고 교회에 갔다. 샛노란 병아리가 생각나는 멜빵 치마였다. 그날따라 스타킹을 안 신고 갔다. 얼굴만 아는 남자아이 옆에 앉았는데 걔가 내 다리를 보더니 다리에 왜 동그란 게 많냐고 물었다. 나는 모공각화증 때문에 온 다리가 소위 말해 닭살 피부였다. 그 남자아이의 한 마디에 내 다리가 부끄럽고 치마를 안 좋아하게 되었다. 중학교 때 교복 치마를 입기 전까지 정말 치마가 1도 없었다... 아직도 바지가 편하다.
3. 외모 콤플렉스
우리 집에 여자 악세서리나 용품 같은 게 많이 없었다. 기껏해야 머리를 묶어야 해서 머리끈뿐. 머리핀, 요술봉 장난감, 공주 치마, 공주 옷, 액세서리 같은 건 없었다. 치장하는 걸 불편해하고 안 좋아했다. 지금처럼 메이크업 장난감이 많이 없던 시절이었다. 나를 꾸미는 것과 거리가 멀었다. 예뻐지는 것에 관심이 없었다.
그 시절 난 외모에 관심이 많지 않았고, 그 이유는 내 외모에 자신감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안경을 썼고, 내 눈이 작다고 생각했다. 안경에 코도 계속 눌려 낮아 보였다. 그리고 아빠는 내 코가 들창코라며 계속 손으로 코의 뼈대를 만져주고 코를 내리라고 했다. 그러면 코가 예뻐질 거라며. 그래서 초등학교 내내 코를 내리는 습관이 있었다. 피부가 꽤 좋은 편이었는데 코를 너무 자주 만져서 그런지 코에만 피지가 가득해져서 후회했다.
나중에 취업을 하기 전 인생 숙원사업이던 라섹 수술을 했는데 안경을 벗으니 내 코가 그렇게 낮아 보이지 않고 예쁜 코라는 걸 알게 됐다. 눈은 여전히 작지만... 그런대로 내 얼굴에 만족하며 살려고 한다.
4. 기질
이 모든 것을 참작하더라도 우리 오빠랑 엄마는 옷을 좋아하고 꾸미는 걸 좋아하는데 나는 그렇지 않다. 내가 치장을 좋아하지 않는 데에는 기질이 큰 몫을 차지한다고 생각할 수 있다. 오빠는 대학생 때부터 옷을 좋아하기 시작해 1년에 수십 벌 옷을 살만큼 옷을 좋아하고, 엄마도 유아책 전집 세일즈를 했으니 사람들 앞에서 옷을 늘 차려입었다. 영업 일을 그만두시고 병원에서 간호사로 일하시는 지금도 가끔씩 뵐 때마다 계절별로 새 옷을 입고 계신다. 하지만 나는 사춘기 중학생 때, 대학교 1-2학년 때 옷에 잠깐 관심이 생겼고 그 이후엔 다시 사라졌다. 아빠를 닮아 외적인 것을 꾸미는 데에 큰 관심이 없다. 대학교 때 인격적으로 하나님을 만나고 신앙생활을 하게 되면서 내면이 중요하지 겉모습 치장에 열중하는 게 중요하지 않다고 배우기도 했다.
이는 사회성과 관련 있는 것 같다. 사람들을 많이 만나고 그들과 어우러지는 성격, MBTI S일 것 같은 엄마와 오빠는 보여지는 것에 신경을 많이 쓰는 듯하고, 나와 아빠처럼 사회성이 낮고 본인만의 세계가 큰 사람들은 옷에 관심이 적은 것 아닌가 싶다. 남이 뭘 입든 관심 없고 나도 마찬가지인 것이다.
아무튼 이런저런 이유로 어릴 때에는 관심도 없던 꾸미기와 치장이 큰 애가 4살이 되자 점차 중요한 일이 되었다. 우리 아이에게 공주병 시기가 오면 어떻게 할 것인가. 공주가 되고 싶은 아이의 마음을 이해하고 살려줄 것인가, 우리 부모님처럼 묵살할 것인가... 아이의 5살이 다가올수록 고민이 깊어진다.
표지사진 출처: Unsplash의 Sean Bernste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