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관점 2. 내면소통 영상
유년시절 내면아이가 받은 상처를 치유 중 수련회에서 본 나를 따라다는 할머니의 시선
아이 훈육책에서 발견한 과거의 부정적인 경험을 긍정적으로 해석하며 해소해야 한다는 관점
두 사건이 연속해서 할머니의 일을 말하고 있었다.
엄마에 대한 그리움이나 서운함은 20대부터 많이 생각해 오고 내 안에서 처리가 되었다고 생각했는데 할머니를 향한 원망과 고통은 20년 전 할머니가 돌아가신 후 내 삶에서 잊혀지며 깊은 무의식 속에서 열등감과 수치심으로 작용하고 있었다. 드러나지 않아 더 교묘하고 더 위험하게.
그러던 중 정말 오랜만에 네이버 이웃 블로그에 들어갔고, 이 엄청난 영상을 보게 되었다.
김주환 교수의 내면소통 영상이었다.
이분은 연세대 언론홍보영상학부 교수이고 그 유명한 <회복탄력성> 책을 쓰신 분이다.
<내면소통>이라는 책을 최근에 쓰신 걸 알고 있었는데 뇌과학에 기반한 책이지만 기독교인으로서 명상에 거부감이 있어왔어서 적극적으로 찾아보지 않았다.
그때 '엄마란 무엇인가?'라는 영상을 요약한 블로그 글을 읽게 되었고 바로 이 강의를 들었다.
부모님과 사이가 안 좋아 부모를 혐오하면서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게 거의 소용이 없다는 말을 하고 있었다.
어린 시절 엄마(주양육자)에게 전적으로 의존해 생존하기 때문에, 아이는 생후 첫 3년 동안 엄마가 자기 자신에게 해주는 말을 자기가 자신에게 하는 말로 내면화한다고 한다. 인간은 자기 자신을 생각할 때와 엄마를 생각할 때 같은 뇌 영역을 사용한다며 즉,
나를 대하는 방식 = 엄마를 대하는 방식 = 타인을 대하는 방식
이라고 한다. 즉 엄마를 미워하면서 자기 자신을 사랑하려는 시도는 앞뒤가 맞지 않는다고.
자기를 존중하고 사랑하면 다른 사람도 사랑하고 존중한다.
나르시시스트 = 자기혐오 = 타인을 깎아내리는 사람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나와 잘 지내기 위해, 내가 엄마와 잘 지내야 한다고 한다.
그 방법은 마음속으로 엄마와 화해하고, 마음속으로 엄마를 용서하는 것이다.
용서 연민 사랑 수용 감사 존중 를 실천하도록 훈련해야 한다.
내가 3살 때 맞벌이를 시작하신 엄마. 그 후로 지금까지 거의 쉬지 않고 일을 하고 계시는 엄마. 맞벌이로 정서적 돌봄이 부재한 유년시절을 보내 엄마를 생각하면 아쉽고 서운한 마음이 있지만 미안한 마음 안쓰러운 마음도 함께 든다. 시집살이도 20년 가까이하시고 70이 다 되시는 지금까지 일 하시는 엄마가 안쓰러워진다.
하지만 할머니를 생각하면 동정과 연민의 마음보다 원망의 마음이 더 크다. 오빠나 나나 다 같은 손주인데 왜 나를 차별하셨는지도 모르겠고, 엄마를 왜 시집살이시켰는 지도 이해 안 가고, 기질도 안 맞아 너무 예민하시고 나를 다그치시는 할머니가 싫었다. 그렇게 기억을 가슴에 묻어두고 싶었는데 최근 자꾸 할머니에 대한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 거다.
내가 기억하는 인생 첫 기억, 첫 감정은 외로움과 수치심이었고, 나는 할머니와 많은 시간을 함께 있었지만 유대감을 쌓거나 의지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었다. 할머니는 할머니 개인의 감정과 문제로 고통을 겪고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유년시절 나에게 엄마가 되어주었던 할머니를 용서하고 받아들여야 한다. 나와 함께한 시간, 나를 먹이고 씻기고 돌봐주신 세월에 감사하며 할머니의 폭력에서 나를 놓아주어야 한다.
오래도록 미워했던 할머니에게 감사 인사를 전했다. 그리고 잠을 자고 일어났는데 나는 근 몇 년 간 느껴본 적 없는 아주 머리가 깨끗해진 상태로 깨어났다.
그리고 할머니께 처음으로 써보는 편지를 적으며 이 긴 악연의 고리를 마무리 지었다.
할머니, 나를 키워주신 할머니. 밥을 해주시고, 청소를 해주시고, 돌봐주시고… 할머니와는 많은 이야기를 한 기억이 없어요. 그냥 기능적으로 나를 대해주셨을 뿐. 그렇게 나도 자녀들을 대하게 돼요. 내가 받은 것처럼 자녀들에게. 내 심기를 거스르는 행동을 하면 화를 내고 나를 편안하게 해 주면 좋아하고. 그렇게 하루하루를 버티듯이 사는 것 같아요. 할머니는 뭐가 그렇게 힘드셨나요. 내 탓이 아니죠. 할머니 문제였죠. 그리고 나와 할머니가 맞지 않았던 것이죠. 자존감이 낮아진 채 나를 낮게 보지 않도록, 나를 안아주기로 했어요.
할머니 이제 당신도 이해하고 용납하려고 해요. 누구보다 나를 위해서. 할머니가 소리 지르고 화내시는 거 싫었어요. 밥 늦게 먹는다고 뭐라고 하는 것도 서러웠어요. 먹고 싶은 게 없었어요. 맛이 없었어요. 고기반찬이 필요했어요…
사람과 교류하는 것 힘들었어요. 아빠처럼, 다른 사람들과 있으면 위축되고 편안하지 않았어요. 통제하고 다그치는 사람들 앞에서 주눅 들고… 그거에 익숙한 거 같아요. 할머니 이제는 미워하는 마음을 거둘게요. 할머니를 받아들일게요. 할머니에 대한 원망, 엄마에 대한 원망, 그리고 나 자신에 대한 원망을 그치고 나를 받아들일게요. 할머니 고생하셨습니다. 긴 세월 고생 많으셨습니다. 즐거움이 있었길, 행복이 있었길, 우리와 함께 사셨던 세월이 고통만은 아니었길. 우리가 기쁨이 되어드렸길, 바랍니다. 손주들, 아들, 며느리로 인해 기쁘셨길 바래요. 할머니의 삶은 저주가 아니고 축복이었습니다. 함께해 주셔서 감사해요. 이제 편히 쉬세요. 천국에서 뵐게요.
우리 영화도 언니 때문에 자기를 부정하지 않도록 많이 안아줄게요. 사랑해 줄게요. 할머니 덕에 우리 영원이를 이해하고 영화를 이해하게 되었어요. 할머니 그곳에서는 편히 쉬세요. 하늘나라에서 할아버지와 함께, 그리고 하나님과 함께 편히 지내세요. 고생하시는 아빠도 마음 편히 계시길 바라요. 우리 아빠도 자기 자신에 대해서 그만 부정적으로 생각하고 나아지시길… 우리 엄마도 그때의 힘듦을 좋은 방향으로 해석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