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관석 Nov 15. 2016

Nowhere
or, Now Here

#1. 어디에도. 혹은, 지금 여기.

*매드 맥스 ~분노의 도로(2015)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1.

"결혼식 와 줄 거지?"


5년 만난 뒤 2년간 연락이 없었던 전 여자 친구가 청첩장을 들고 나타났을 때, 어릴 적 외갓집 지지직 테레비-에서 본 '아라비아의 로렌스'의 사막질주가 떠오른 건 적절한 시기에 도피처를 발견할 줄 아는 나의 거창한 능력 덕분이리라.


"아니. 못 가. 나 졸업여행 갈 거야."

"요즘도 그런 게 있어?"

"그럴 리가 있나. 자체 현장학습 같은거지. 지금 인생보다 더 막막한 곳을 찾아 가볼 거야."

"어디로?"

"와디럼. 요르단에 있는 붉은 사막"


그 이후 어떤 이야기가 오고 갔는지 기억은 잘 나지 않지만,  5년간 사람 만들어놨더니 아직도 똥 멍청이구나.라는 표정은 잊히지 않았다. 그런 에피소드를 뒤로 한 채 2008년 여행을 시작했고 언제나 그렇듯, 여성은 옳기에 그 여행에서 대단한 발견 같은 건 일어나지 않았다.


2.

요르단의 붉은 사막, 와디럼.


거길 가면 뭔가 기똥찬 생각이 파바박! 떠오를 줄 알았지. 그래서 아라비아의 로렌스도 다시 보고, 인디아나 존스도 다시 보고, 애지중지하던 필름 카메라들도 팔아치워 가며 출발한 자칭 현장학습 여행은 터키, 시리아를 거쳐 요르단에 이르게 되었다. 여행의 클라이막스!


사진가란 아무리 일행이 기다리고 있어도 사진을 찍어야 합니다.  음? (R-d1 / Helliar 15mm f 4.5) 
리빙포인트 : 고소공포증이 있으면 아래에서 사진을 찍으면 됩니다. (R-d1 / Helliar 15mm f 4.5)


모래언덕을 뛰고, 협곡을 트래킹 하고, 덜컹거리는 차에선 수다를 떨었다. 키가 2미터는 되어 보이는 독일인은 그 날 생일이었고, 말 많은 호주인은 무슬림과 라마단 기간에 함께 일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가를 쉼 없이 떠들었다. 거기에 친구였던 한국인은 여행 중 만난 특별한 인연에 뽕맞은 듯 사랑타령뿐. 우린 데려가는 곳마다 감탄을 지르며 걷고 마시고 잠들고 떠들었다. 지치지도 않냐는 베두인 총각의 투덜거림은 아랑곳하지 않은 채.


베두인총각의 수수한 생일상과 초긍정 사막투어 일행들 (R-d1 / Helliar 15mm f 4.5)
예전엔 아라비아의 로렌스, 요즘은 마션, 그 때는 유성우관람장 (R-d1 / Helliar 15mm f 4.5)


그리고.


떨어지는 유성우를 바라보며

한국 가면 여자 친구 생기게 해주세요.

네? 네? 네? 네? 네? 네? 네? 네?

따위  빌고 있는 (당시) 20대 무쓸모 남자 솔로.

그런데, 생겼다.진짜.2달이었지만.


4.

영화 러닝타임의 반은 맥스를 떠나지 않을 수 없게 구슬리고 개고생 시킨 뒤 나머지 반은 '히힝! 속았징?' 하며 왔던 길 돌아가게 만드는, 맥스가 미치지 않을 리 없는 영화 매드맥스 ~ 분노의 도로를 보고 나오며 문득 와디럼을 달리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렇게 막막한 곳에서 걷고, 달리고, 마시며, 떠들었지만 지금 우린 어쨌든 각자의 곳에서 그 막막함을 안은 채 살아가고 있지 않은가. 하며. 떠나든, 떠나지 않았든 해결되지 않은 그 막막함과 함께 말이다.


비단 매드 맥스나 그 때의 여행만이겠는가. 파랑새에서부터 연금술사까지 "집 떠나 개고생하고 돌아와 봤더니 그렇게 찾아 해매던 것이 니가 출발한 곳 근처에 있었더라!" 는 유구한 문학적 클리셰에 언제나 홀라당 넘어가서 에라이 망할 작가들! 하고 외치면서도 다음 책을 기대하고, 그런 책을 읽고나선 여행을 위한 짐을 싼 뒤, 다녀와선 또 후회하겠지. 그러면서도 또 그런 작품을 읽고 홀연히 떠나 가산을 탕진하고 다시 그런 궁리를... 무한루프코스믹호러


그래서 일단 써내려가봅니다. 어디에도, 혹은 지금 여기 Nowhere  or Now here

기왕 그렇게 헛걸음질의 반복이 내 여행의 테마라면 어쩌면 어디에도 없을, 혹은 바로 내 곁에 있을, 떠났어야 알게 되는 것, 떠나고 나서야 비로소 알게 되는 것이 있는 것을 찾아 떠도는 소소한 푸념. 


악플이 몰려온다. 으아아. 무플이면?  http://thesoundjack.com/the-mad-sound-of-mad-max-fury-road/



늘 그렇듯, 스크롤 or 손가락을 천천히 내린 바로 당신이 지금 내게 가장 고마운 사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