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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관석 Dec 02. 2016

夢幻泡影

#2.  꿈.환상.거품.그림자.

1.

그러니까 PC통신이란 걸 접한 것은 제가 초등학교 4학년 때 일입니다. 그 당시 사용하던 서비스가 '하이텔'이었고, 모뎀을 이용해서 집 전화비를 마구 낭비하며 덕질을 하던 때였죠. 노 머니 노 덕질 그래도 덕분에 전자우편이란 문물을 접했고 남들이 펜팔 할 때 전화비를 날리며 멀리 떨어진 친구들과 소식을 주고받았습니다. 시간은 흘러 ADSL이니 광케이블이니 하는 것들이 나오고 덕질에 돈과 시간을 덜 써도 되는 시대가 오자 대학교에 입학했습니다. 선배, 조교들이 가입하라던 '프리첼'은 그 당시 커뮤니티의 산실이었습니다. 학교 동기 모임, 조모임, 동아리 모임의 온라인 모임은 모두 그곳에서 이루어졌죠. 전자메일을 쓰던 주소에 슬슬 질리던 차, 새로운 '이메일' 계정도 필요하다 싶어서 냉큼 가입해서 열심히 사용했습니다. 그렇게 프리첼을 열심히 쓰다가 대학교를 졸업하고 (지난 글에서 말씀드렸다시피) 자체 졸업여행을 다녀온 뒤에도 취직이 되질 않았죠. 생활비가 곤궁하니 저렴한 핸드폰 요금제를 사용하며 문자 하나에도 벌벌 떨 때 메일 사용량에 따라 50개에서 300개까지 무료 SMS 문자를 주던 '파란'이란 서비스를 접했습니다. 또 별생각 없이 냉큼! 가입을 해서 사용했죠. 이 당시 블로그에 올려둔 사진에 대한 외부 링크가 가능해서 제법 쓸만했던 기억이 납니다.


출처 : 20세기 소년 / 우라사와 나오키


그리고 이 세 서비스는 멸망했습니다.



2.

여기. 제국의 꿈이 시작된 곳이 있습니다. 몽골 제국의 옛 수도, 카라코람 혹은 하라호름. Karakorum / Хархорум 사실, 몽골 제국의 첫 수도는 칭기스 칸의 삶과 고난이 시작된 '오논'이라는 지역이었고 칭기스 칸은 이 곳을 중국 대륙 정복의 교두보로 삼았습니다. 그의 사후 2대 오고타이 칸 때부터 5대 쿠빌라이 칸이 베이징 근처로 수도를 옮길 때까지 30여 년간 세계제국의 수도로 거듭났습니다. 그리고 수도를 옮긴 조카 덕분에 변방의 도시로


지금은 티베트 불교 사원 에르덴 조 Erdene Zuu / Эрдэнэ Зуу 만 남아 있는 곳, 2007년 여름 몽골대학교 문화교류 프로그램을 통해 다녀왔습니다. 지금은 길이 좋아져서 수도 울란바토르에서 6시간이면 갈 수 있다네요. 유물 발굴 결과가 좋아 박물관도 생겼고요. 제가 갈 땐 차가 고장 나서 수리하는데 오랜 시간이 걸린 데다 도로도 좋지 않아서 12시간 정도 걸렸던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심심하진 않았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심심할 겨를이 없었죠. 도로 사정 덕분에 엉덩이가 춤을 추니까요...


흔한.초원의.화장실. (R-d1 / Helliar 15mm f 4.5)
천국의 수도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R-d1 / Helliar 15mm f 4.5)
빨갛게 물들었네, 파랗게 높은 하늘 (R-d1 / Helliar 15mm f 4.5)
한국스님기행 (R-d1 / Helliar 15mm f 4.5)
관광객이란 그저 오리엔탈리즘을 좇아. (R-d1 / Helliar 15mm f 4.5)
곧 비가 내릴지어다. (R-d1 / Helliar 15mm f 4.5)



3.

당나라 태종과 그의 꾀주머니 위징의 대화에서 나왔다는 '창업수성'. 창업보다 수성이 어렵다는 그 이야기 속엔 힘들게 일으켜 세운 업적을 안일하게 잃게 돼버리는 일에 대한 경계심이 담겨 있습니다. 우후죽순 생겨났던 메일 혹은 통신 서비스들의 흥망성쇠 역시 대륙의 역사 못지않게 파란만장하지요. 한미르? 라이코스? 야후? 그 이전엔 천리안, 나우누리, 유니텔...


그러게 다음이나 네이버나 마이크로 소프트나 구글은 왜 안 써서...라는 이야기를 들음직 하지만, 사실 그렇게 메일 서비스가 쉽게 망하리라 생각이나 했을까요. 어쩌면 몽골제국처럼. 그리고 하라호름처럼. 천하를 벌벌 떨게 했던 제국의 수도는 제국의 멸망 이후 역사의 변방으로 사라진 영화만이 남아 있었습니다.  남은 것은 푸른 하늘뿐. 결국 이리될 걸 알면서. 다 부질없는 건가 싶은 마음도 들죠.


그렇지만 이렇게 탁 트인 하늘 아래에서 폐허를 바라보고 있자면, 누구보다도 큰 꿈을 꾸었고, 누구보다도 그 꿈을 위해 달렸던 이들의 모습이 떠오르기도 합니다. 물론 그 꿈이 많은 이들의 삶을 짓밟았다는 게 함정 한편으론 덧없음을 알고 그저 하루하루를 열정으로 살아나갔을 이들의 삶이 어린 곳이랄까요. 몽환포영. 무상이란 것이 단지 부질없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의 삶을 돌아보게 한다는 가르침을 느끼며 돌아서게 됩니다.


그리고 돌아가는 길엔  꼬리뼈의 감각이 또 사라지겠지

색불이공 공불이색 색즉시공 공즉시색 수상행식 역부여시


늘 그렇듯, 스크롤 or 손가락을 천천히 내린 바로 당신이 지금 내게 가장 고마운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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