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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관석 Dec 28. 2016

후원後苑

#3. 누군가의 '비원 祕苑'

1.

  비원은 창덕궁의 일부로 임금들의 후원이었다. 그러나 실은 후세에 올 나를 위하여 설게되었던 것인가 한다. 광해군은 눈이 혼탁하여 푸른 나무들이 잘 보이지 않았을 것이요, 새소리도 귀담아 듣지 못하였을 것이다. 숙종같이 어진 임금은 늘 마음이 편치 않아 그 향기로운 풀 냄새를 인식하지 못하였을 거다.

  미(美)는 그 진가를 감상하는 사람이 소유한다. 비원뿐이랴. 유럽의 어느 작은 도시, 분수가 있는 광장, 비둘기들, 무슨 애버뉴라는 고운 이름이 붙은 길, 꽃에 파묻힌 집들, 그것들은 내가 바라보고 있는 순간 다 나의 것이 된다. 그리고 지금 내 마음 한구석에 간직한 나의 소유물이다.

  주인이 일 년에 한 번 오거나 하는 별장은 그 고요함을  별장지기가 향유하고, 꾀꼬리 우는 푸른 숲은 산지기 영감만이 즐기기도 한다. 내가 어쩌다 능참봉(陵參奉)을 부러워하는 것은 이런 연유에서 오는 것이다.

  은퇴도 하였으니 시골 가서 새소리나 들으며 살까도 생각하여 본다.  그러나 그게 쉬운 일이 아니다.

  꾀꼬리 우는 오월이 아니더라도 아침부터 비가 오는 날이면 나는 우산을 받고 비원에 가겠다. 눈이 오는 아침에도 가겠다.

  비원은 정말 나의 비원이 될 것이다.  피천득, 『 수필』, 범우사(1976), p41~42.


2.

(피천득 선생님의 글을 인용한 곳은 비원으로, 나머지는 현재 표현인 후원으로 작성하였습니다)

보통 조선시대의 왕궁... 하면 경복궁을 떠올리지만, 가장 오랫동안 사용했던 곳은 창덕궁이었다. 심지어 임금들도 예법에 따라 FM대로 지어진 데다 살벌한 일이 많았던 경복궁보다는 자연스럽게 산자락을 따라 건물들이 자리하고 자연을 벗 삼은 정원을 가진 창덕궁을 더 선호했다고 한다. 실제로 두 궁을 쓱 돌아보면 (요즘 들어서야 그럴싸한 조경이 되어있지만) 으리으리한 누각뿐인 경복궁보단 녹지가 은근하게 감싸고 있는듯한 창덕궁이 훨씬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그런 창덕궁 안에서 백미는 후원이다. 피천득 선생님의 『 수필』 중  '비원'에서도 "비원은 서울 한 복판에 있으면서 숲이 울창하며 산속 같은 데가 있다."라고 하니, 자연에 둘러싸인 창덕궁, 그중에서도 후원의 매력은 예나 지금이나 방문자들에게 큰 감동을 주나 보다. 나에게 후원은 어떤 곳이었을까. 언제 찾아갔는지부터 생각해보니...


무더운 8월 여름, 아무도 오지 않을 법한 한낮?

중간고사와 레포트 주간이 지나간 11월, 수업을 땡땡이치고 단풍 구경하러 갈 때?

모두가 도서관에서 전공서적과 씨름하는 중간시험기간에 고즈넉한 벚꽃을 벗 삼아 거닐 때?

몇 년을 공들인 중등 임용고시 물먹고 마음 가눌 길 없는 울적한 날에?


그렇게 별스러운 일이 있건 없건 마음이나 내려놓을 요량으로 후원을 찾아갔다. 누군가의 "돈 아낄 줄 모른다"는 핀잔을 뒤로한 채 호젓한 발걸음으로, "나의 비원이 될 것"이라는 피천득 선생님의 "비원" 구절을 마음속에 되새기며.


3.

(좌측 위부터 시계방향 순) 한 여름의 부용정, 애련정, 관람정 (R-d1 + CS 35mm II)

                                     (좌측부터) 단풍과 함께 애련정, 관람정 (R-d1 + CS 35mm II)

벚꽃이 질 무렵 (Rolleiflex Automat / 유통기한 지난 Gold100)
봄날 낙선재 권역. (Rolleiflex Automat / 유통기한 지난 Gold100)
임용고시 낙마 후, 까치밥. (R-d1 + CS 21mm)
애련정을 잊지 않고 불로문을 지나야 가을 하늘   (R-d1 + CS 21mm)


4.

당신의 후원이 되길 바라는 안내서


안내해설사를 따라 90분간 (여름, 겨울 70분) 제한 관람합니다. 입장료는 8천원입니다 (창덕궁 입장료 3천원 포함) 단, 매달 마지막 주 수요일 '문화의 날'에는 고궁 입장료가 무료이므로 후원 입장료는 5천원!


매달 관람 횟수가 다르므로 시간을 확인하시고 가시면 좋...겠지만, 단풍철이나 주말에는 현장 구매가 어려우니 미리미리 인터넷으로 예매합시다. 각 회차마다 인터넷 예매 50명, 현장판매 50명으로 인원 제한이 있고, 한국인은 외국인을 동행하지 않으면 외국어 안내해설 시간에 입장할 수 없으니(외국인 1인당 한국인 두 명까지) 한국어 시간만 사수하시길.


당일 인터넷 예매는 되지 않습니다. 당월 첫째 날부터 말일까지의 한 달 예약분을 전월 두 번째 화요일 오전 9시부터 일괄 선착순 예약하며 결제는 당일 매표소에서 가능! http://www.cdg.go.kr:9901/cms_for_cdg/show.jsp?show_no=54&check_no=18&c_relation=35&c_relation2=97 광클의 날!


예전에 있었던 매주 목요일 자유관람(1만5천원)은 없어졌으나, 2015년부터 10월~11월 사이에 '한 권의 책' 행사와 함께 후원 자유관람을 실시하고 있음.  이 때는 인터넷 예매분 50명과 별도로 현장판매도 100명으로 늘리니 서울시내 단풍놀이 장소로 손색이 없습니다. 자세한 것은 @changdeokpalace 창덕궁관리소 트위터 참고!


현장 티켓 판매는 9시부터입니다. 가을엔 평일에도 사람들이 북적댑니다. 창덕궁 정문에서 후원 입구까지는 창덕궁 지리를 잘 아는 청년도 빠른 걸음으로 10분 정도 걸립니다. 티켓을 구매한 시간보다 20분 정도 일찍 들어가셔서 후원 입구에서 대기하셨다가 관람하시는 것을 추천합니다. 전각은 나중에 천천히 둘러보시고 :)


요즘 핫하다는 궁궐 달빛기행은 창덕궁에서도 진행됩니다. 봄, 가을 광클의 난에 함께 동참해보시길.


늘 그렇듯, 스크롤 or 손가락을 천천히 내린 바로 당신이 지금 내게 가장 고마운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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