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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관석 Jan 12. 2017

Witness Aleppo, #save_aleppo

#4. 알레포를 마음에 새기며.

1.

크리스마스이브에도 '그분'을 향한 촛불집회는 계속되었다. 주말 없는 삶이 지속되는 건 괴로운 일이지만,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길라)임 향한 일편단심이야 가실 줄이 있으랴. 언제나처럼 구호를 외치고 주변 사람들과 함께 행진하던 도중, 조금 다른 풍경과 눈이 마주쳤다.

Df + 58.4N, 20161224, 광화문광장
Df + 58.4N, 20161224, 광화문광장

광장은 모두에게 열려있고, 집회는 각자의 목소리를 내는 공간이란 명제가 조금씩 자리 잡고 있는 광화문광장이지만 그것은 어딘가 어색하고 엄숙하고 불편하며 숙연해지는 풍경이었다. 알레포라니. 당장 눈 앞의 청와대 앞에도 진격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알레포라니. 그렇게 먹먹한 생각이 들면서도 이내 되뇐다. 알레포. 시리아.



2.

알레포. 시리아의 수도는 아니지만, 시리아에서 가장 큰 도시'였'고, 레반트 지역 교역의 중심지'였'다. 기독교인들에게 '안디옥'으로 잘 알려진 터키 남부 도시 하타이에서 차로 3시간이면 도착할 수 있는 곳이'었'기에 터키에서 이집트로 육로 여행을 계획한 여행자라면 반드시 거쳐가는 곳이'었'다. 이 곳에서 수차로 유명한 하마를 거쳐 팔미라로 넘어가거나, 크락 데 슈발리에라는 십자군의 성채를 보러 홈즈를 거쳐 다마스쿠스로 가는 루트는 저렴하면서도 빼어난 문화재들을 만날 수 있는 아름다운 여행루트'였'다. 알레포 역시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된 도시 중 하나이기에 구도심 전체가 유네스코 지정 문화유산이기도 하며 단단한 알레포 성채와 웅장한 우마야드 사원 등, 볼거리도 충분한 매력적인 곳이'었'다.

알레포 성채에서 내려다 본 알레포 구시가. 2008, R-d1 / Helliar 15mm f 4.5
구글에서 Aleppo를 이미지 검색하면... 20170111



3.

2008년 여름 알레포의 우마야드 사원에서 만난 아이가 생각났다. 우마야드 사원의 상징이었던 탑을 찍고 있었는데 아랫 편으로 살짝 웃음 짓는 그 아이와 눈이 마주쳤던 것이다. 비네팅이 심한 카메라를 쓰고 있었으니, 사진엔 나오지 않았겠거니 했는데, 희미하게나마 사진에도 들어와 있었다.

탑을 찍고 있는데 눈이 마주쳤다. 2008, R-d1 / Helliar 15mm f 4.5


눈이 마주치긴 했지만 으레 눈인사 정도에서 인연이 끝나겠거니 했다. 그런데 이 사진을 찍고 나서 조금 생각이 바뀌었다. 친구에게 자기 아들을 떠넘긴 아저씨의 바람과 달리 아이는 펑펑 울었고 나는 그 모습이 웃겨서 사진을 찍고 있는데, 보다시피 결과가 이모양이었다.


아빠 품을 떠난 아이는 울고, 내 사진엔 크록스가 걸리고. 2008, R-d1 / Helliar 15mm f 4.5

민소매, 반바지 불가. 신발은 벗고 다녀야 될 것. 이 규정을 따라 친구는 옷을 한 벌 빌렸고, 신발은 각자 들고 다녔는데,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문제가 발생한 것이다. 그래서 곤혹스러웠던 차, 그 아이가 우리 앞에 다가왔다. 손으론 한 무더기의 신발을 가리키며.


신발을 맡긴 기념으로. 2008, R-d1 / Helliar 15mm f 4.5

근데 이 아이, 신발을 지켜볼 생각은 안 하고 우릴 여기저기 끌고 다닌다. 더러는 사진을 함께 찍어달라는 시늉을 하며. 그래서 우린 여기저기 끌려다니며 사진을 찍히고, 사진을 찍었다. "살람 알라잇쿰"과 "슈크란"을 입에 달고서.

잽싸게 자기도 프레임 안으로 들어오겠단다. 2008, R-d1 / Helliar 15mm f 4.5
나도 모르는 내 모습이 담겨있다. 2008, R-d1 / Helliar 15mm f 4.5





4.

이제는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그 아이는 지금쯤 뭘 하고 있을까. 10여 년이 지났으니 어엿한 청년이 되었을 텐데. 정부군이었을지, 알레포 시민군이었을지, 누군가의 아빠였을지. 혹은 다에시에 경도되었을지. 아니면 난민선에 몸을 실어 조금 더 나은 곳으로 탈출했을지. 혹은 이 사진이 내가 기억하는 그의 마지막 모습일지.


혹자들은 레반트 지역의 식량난에서부터 시작된 사회불안을, ISIS의 준동을, 아사드 대통령과 알라위파의 생존게임을, 미국과 러시아의 파워게임을, 난민 소년의 죽음을, 난민의 증가와 사회불안을 쉴 새 없이 이야기한다. 어느 것 하나만으로 온전히 내전을 읽을 순 없지만, 광화문 광장의 그 촛불에서 나는 그 아이를 떠올린다.


어디에 있든, 무엇을 하든. Witness you & Aleppo.

Witness you & Aleppo. 2008, R-d1 / Helliar 15mm f 4.5




늘 그렇듯, 스크롤 or 손가락을 천천히 내린 바로 당신이 지금 내게 가장 고마운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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