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능한 C레벨은 어떻게 다른지에 대한 상상
요즘 내 플레이리스트에서 반복재생되고 있는 뉴진스의 노래들.
뉴진스의 음악은 크레센도처럼 처음 노래를 듣고, 뮤직비디오를 보고, 무대의 퍼포먼스까지 본 후의 느낌이 점진적으로 강화된다.
누구에게도 신경 쓰이지 않았던 사소한 요소들까지 시장의 고정관념을 깨부수며 나아가고 있는 뉴진스.
뉴진스가 데뷔하기 전, 나는 TVN '유퀴즈 온 더 블럭'을 통해 우연히 뉴진스를 프로듀싱하는 '어도어'의 '민희진' 대표를 알게 됐다.
이 인터뷰를 통해 나는 그녀가 일을 대하는 방식과 그녀만의 철학을 엿볼 수 있었고 뉴진스에게서 그녀의 철학이 관통하여 묻어 나오는 특별함을 느끼고 있다.
SM엔터테인먼트에 평사원으로 입사하여 15년 만에 총괄이사 자리에 오르고 이제는 대표가 된 그녀.
그래서 오늘은 '유퀴즈 온 더 블럭'의 인터뷰에서 보여준 그녀가 일을 대하는 방식을 정리해 보기로 한다.
유능한 C레벨들의 특징을 다뤘던 이전 글의 내용을 대입해 또 다른 C레벨인 그녀가 평사원에서 임원이 되기까지 어떤 면이 달랐을지 상상해 보자.
그래픽디자이너로 입사했지만 어느새 뮤직비디오까지 총괄하게 된 그녀. 그녀가 맡게 되는 일들의 확장은 아래와 같은 고민에서 시작됐다.
'어떤 그룹으로 보여지는 게
장기적으로 좋을까.'
유능한 C레벨이 된 이들은 자신에게 주어지는 일들만 수동적으로 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녀 역시 주어진 디자인 업무를 너머 자신이 맡은 프로젝트의 장기적인 최종목표까지 고민했고 필요하다면 직접 일을 맡아 하나의 그림이 완성될 수 있도록 했다고 한다.
회사에서 주어지는 일들을 하며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이 세상에 어떤 가치를 줄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을 했던 적이 있다. 그 시절, 나의 고민은 회의감 그 이상은 아니었던 것 같다.
하지만 민희진 그녀는 콘텐츠를 직접 만들던 디자이너가 사장이 된 케이스가 많지 않기 때문에 시장에 색다른 제작 방식을 제안할 수 있다고 말한다. 자신의 존재가, 역할이, 일하는 방식이 시장에 새로운 제안을 할 수 있디는 존재로서의 가치 또한 명확히 알고 있었다.
일을 단순히 일 자체, 그 기능만으로 바라보지 않고 그 일이 전할 수 있는 '가치'의 관점에서 해석하는 것. 유능한 C레벨들의 또 다른 특징이라고 한다.
민희진은 '아이돌 컨셉 장인'으로 불린다. 그녀가 제안하는 컨셉들은 시장에서 반응하기 때문이다. 그 제안 아래에는 그녀만의 정, 반, 합이라는 철학이 있었다. 우리는 일을 할 때 자신만의 철학을 얼마나 구축하며 나아가고 있을까?
내가 조직생활을 하며 봐 온 유능한 C레벨들은 모두 자신만의 철학이 있었다. 어떤 선택과 결정에는 언제나 그들만의 답이 존재했다.
과거 재직 중이던 회사에서 몇 년째 TV CF를 중단했었다. 업계 1위였지만 지속적으로 광고를 하는 2위 업체의 인지도가 나날이 올라가고 있던 상황. 우리도 CF를 해야 최초 상기도에서 경쟁사에게 밀리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던 나는 대표님과의 면담에서 '왜 저희는 TVC를 안 하는 건가요?'라는 질문을 했다.
그때 대표님은 이런 답변을 했다.
'소문난 잔칫집에 먹을 게 없으면 그 집은 다신 안 가게 된다.'
당시, 대대적으로 리뉴얼 중이었던 서비스를 방문하게 했다가 사용자들이 실망하게 되면 이후 아무리 리뉴얼을 해도 다시는 방문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 답변을 하던 대표님의 확고했던 눈빛이 인상 깊다.
그 선택이 장기적으로 우리 서비스를 위해 옳은 선택이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 해가 지나고 경쟁사 역시 높은 광고 비용을 지출해야 하는 TVC를 중단했고 우리는 불필요한 출혈 경쟁을 피할 수 있었다.
‘이건 될 거다.'라고 생각해서 했는데
안 된 경우는 없다.
자신만의 철학은 수없이 계속된 고민들 속에서 단단하게 뿌리를 내렸을 것이다. 그래서일까?
내가 만나 온 유능한 C레벨들은 자신의 의사결정에 챌린지가 펼쳐진 상황에서 '당신이 나보다 더 치열하게 고민했을까?'라는 눈빛으로 오히려 즐기며 맞서 나가는 모습을 자주 보여 주었다.
치열한 고민과 그 안에서 내려지는 답 그리고 그 답에 대한 결과와 책임. 그 과정이 수년동안 뫼비우스 띠처럼 반복되며 자신의 결정을 스스로 믿지 못하면 어느 누구도 설득할 수 없다는 걸 깨달은 사람들처럼 보였다. 그리고 그 결정이 결국에는 좋은 결과로 이어지며 주위 사람들에게 끊임없이 자기 증명을 해내는 사람들이었다.
엄청난 책임감이 바탕이 돼야
안정감 있게 모험을 할 수 있다.
안 됐을 때의 대안까지도
보험으로 만들어야 한다.
민희진은 자신의 의사결정에 따라 일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혹시 모를 실패했을 때의 대안까지도 보험을 만들 만큼 막중한 책임감을 가지고 일을 한다고 한다.
곡, 뮤직비디오, 무대뿐만 아니라 티저, 앨범, 엔딩포즈까지 아주 사소한 것들마저도 시장에서 당연시되어 왔던 것들에 계속해서 새로움을 던지고 있는 그녀. 그녀는 그를 위해 수없이 '굳이(고집을 부려 구태여)'라는 주위의 시선과 질문들을 깨부수었어야 했을 것이다. 그녀가 일에 있어 그 과정을 '투쟁'이라고 표현할 정도로.
결과적으로 나는 그런 과정들의 열매로 만나게 된 뉴진스의 음악을 들으며 오늘의 하루를 위로받고 있어 고마움을 느낀다.
나에게도 때때로 치열한 순간들이 있었지만 유능한 C레벨들의 존재를 보며 각성할 때가 많다. 오늘은 뉴진스의 음악을 들으며 또 다른 C레벨인 민희진, 그녀가 일하는 방식을 상상하며 다시 타성에서 벗어나 본다.
아 참, 글을 통해 'C레벨'을 언급할 때마다 군더더기 없이 작성하면 좋겠지만 대체로 '유능한'이라는 형용사를 붙이는 이유가 있다. 모든 C레벨이 유능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유능하지 않은 C레벨에게서 이런 특징들이 보일 땐 항상 좋은 작용만 하는 건 아니었다. 이건 우리끼리의 소소한 뒷담으로 간직하자! (속닥속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