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가 지식노동을 대체하기 시작하면서 개발자, 디자이너 모두에게 중요해진 역량으로 '문제 정의'가 꼽히고 있습니다. 사실 이 역량은 PM에게 가장 중요했고 PM이 가장 잘하는 일이기도 했습니다.
그렇다면 PM의 역할을 개발자와 디자이너가 나눠서 하게 될까요? 아마도 저는 그렇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합니다. 서로의 각 분야에서 직면하게 되는 병목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문제 정의가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오늘의 주제는 "AI로 인한 PM의 미래", 조금 더 상세하게는 "PM의 일 중 무엇이 자동화되고, 무엇은 AI 보조가 유의미하며, 무엇은 끝까지 인간의 책임으로 남는가."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이 질문에 대해 다음과 같이 PM의 업무를 네 영역으로 바꿔 보면 그림이 훨씬 선명해집니다.
이전에는 프로젝트 매니저의 업무를 '문제 정의/기획서 작성/화면 및 플로우 설계/일정 관리/이슈 관리'처럼 기능별로 나눠 보는 방식이 익숙했습니다. 하지만 AI 시대에는 이렇게 항목별로 보는 것보다 PM 업무 전체를 한 번에 놓고 어떤 종류의 일인가로 재분류해보는 것이 도움이 됩니다.
실제 현장에서는 하나의 업무가 끝나면 다음 업무로 넘어가는 식이 아니라, 문제를 정의하면서 문서를 쓰고, 문서를 쓰면서 이해관계자를 조율하고, 일정과 이슈를 관리하면서 다시 문제를 재정의하는 식으로 일이 계속 얽혀 움직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PM의 업무를 이렇게 네 개의 영역으로 나눠보겠습니다.
1. 자동화 가능한 일
2. AI 보조가 유의미한 일
3. 사람이 최종 승인해야 하는 일
4. 반드시 관계와 현장 감각이 필요한 일
가장 먼저 자동화가 가능한 일은 PM 업무 중에서도 '정리형·반복형·구조화 가능한 일'입니다.
예를 들면 회의 내용을 정리해서 회의록으로 만드는 일, 흩어진 요청사항을 묶어 요구사항 초안으로 바꾸는 일, 사용자 VOC나 CS 이슈를 유형별로 정리하는 일, 경쟁 서비스 기능을 비교표로 만드는 일, 일정표 초안을 짜는 일, 이슈 로그나 리스크 목록을 업데이트하는 일 같은 업무가 여기에 해당합니다. 입력 자료가 이미 존재하고 출력 형식도 어느 정도 정해져 있기 때문에 AI가 가장 먼저 들어오기 좋은 영역입니다.
자동화되는 것은 '생각이 필요 없는 일'이라기보다 '생각의 결과를 형식으로 옮기는 일', 혹은 '여러 정보를 일정한 구조로 정리하는 일'입니다.
두 번째 영역은 자동화까지는 아직 어렵지만, AI가 함께 붙으면 훨씬 빨라지고 더 좋아지는 일입니다.
여기에는 문제를 여러 관점으로 다시 보는 일, 빠진 예외 상황을 찾는 일, 플로우의 허점을 점검하는 일, 일정 리스크를 시뮬레이션하는 일, 요구사항 간 충돌을 찾아보는 일, 특정 의사결정에 대한 대안 시나리오를 비교하는 일, 보고 대상을 바꿔 같은 내용을 다른 언어로 설명하는 일 같은 업무가 들어갑니다.
예를 들어 PM이 신규 기능을 기획할 때, AI는 “이 기능에서 누락된 케이스가 무엇인지”, “운영팀 관점에서 어떤 예외가 생길지”, “개발 일정상 어디에서 병목이 생길지”, “사용자 흐름에서 어느 단계가 이탈 포인트가 될지”를 꽤 유용하게 보조할 수 있습니다.
즉, AI는 정답을 대신 확정하는 역할보다는 생각의 범위를 넓히고, 놓친 것을 드러내고, 대안을 빠르게 펼쳐 보이는 역할에서 강합니다.
이 영역의 핵심은, PM이 혼자 생각하면 놓칠 수 있는 부분을 AI가 보완해 준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앞으로의 PM 역량은 AI로 더 넓게 검토하고 더 빨리 구조화하는 사람으로 바뀔 가능성이 큽니다.
다만 여기서 중요한 것은 AI가 제안한 내용이 그럴듯하다고 해서 곧바로 답이 되지는 않는다는 점입니다.
AI 보조는 유효하지만, 그 유효성은 어디까지나 PM이 맥락을 알고 있을 때만 커집니다.
도메인 이해 없이 AI만 잘 다루는 사람보다 도메인을 잘 이해한 사람이 AI를 활용할 때 훨씬 더 강력합니다.
세 번째 영역부터는 PM의 책임이 본격적으로 남습니다.
바로 우선순위, 범위, 책임, 약속을 결정하는 일입니다.
어떤 문제가 지금 풀 가치가 있는지, 무엇을 이번 배포에 포함해야 하고 무엇을 포기해야 할지, 어떤 KPI를 성공 기준으로 삼을지, 품질과 일정이 충돌할 때 무엇을 우선할지, 장애나 이슈가 났을 때 어디까지 공지할지, 출시를 밀지 말지, 상위 리더에게 언제 어떤 수준으로 escalate할지, 고객에게 어떤 표현으로 약속할지 같은 일은 결국 사람이 결정해야 합니다.
이런 일은 정보를 정리하는 문제라기보다 불완전한 정보 속에서 책임 있는 선택을 하는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선택은 늘 비용, 일정, 품질, 브랜드, 고객 신뢰, 내부 조직력 같은 요소와 연결됩니다.
여기서 PM의 역할은 어떤 선택이 어떤 대가를 만들지 이해하고, 그 대가까지 포함해 결정할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AI는 “가능한 선택지”를 많이 보여줄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 팀은 지금 어디까지 감당할 수 있는가”, “이 결정으로 누구에게 어떤 부담이 가는가”, “이번에 이것을 밀면 다음 분기에 무슨 문제가 생기는가” 같은 판단은 여전히 사람의 몫입니다.
그래서 앞으로 PM에게 더 중요한 역량은 문서를 정교하게 쓰는 힘보다 애매한 상황에서 결정하고 그 결정을 설명할 수 있는 힘입니다.
마지막 네 번째 영역은 끝까지 사람의 영역으로 남을 가능성이 가장 높은 부분입니다.
바로 신뢰, 설득, 조율, 맥락 읽기, 현장감각이 필요한 일입니다.
실제 프로젝트는 문서대로만 굴러가지 않습니다. 문제는 기획서에서 생기기보다, 각 팀이 같은 문서를 다르게 이해할 때 생깁니다. 이슈는 기능 자체보다 책임 소재가 불분명할 때 더 커집니다. 일정이 밀리는 이유도 단순한 작업 지연보다 누군가가 말하지 않은 우려를 품고 있거나, 팀 간 기대치가 어긋나 있기 때문인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PM에게 정말 중요한 일은 문서에 쓰인 요구사항을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문서 바깥의 긴장과 오해와 감정을 읽고 조정하는 일입니다.
예를 들면 이런 일들입니다.
- 경영진이 기대하는 속도와 실무팀이 감당 가능한 속도의 간극을 조정하는 일
- 개발, 디자인, 운영, 마케팅이 서로 다른 목표를 가지고 있을 때 공통의 기준을 세우는 일
- 고객 인터뷰나 현장 피드백에서 말로 표현되지 않은 불편을 읽어내는 일
- 문제가 기술 이슈인지, 정책 이슈인지, 책임 이슈인지 구분하는 일
- 장애 이후 고객과 내부 조직 모두의 신뢰를 다시 회복하는 일
- 겉으로는 일정 이슈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조직 내 신뢰 이슈라는 것을 감지하는 일 등
이런 업무는 데이터만으로는 보이지 않고 문서만으로도 처리되지 않습니다.
결국 PM의 일에서 가장 대체되기 어려운 부분은 “관리”가 아니라 "관계 기반의 판단"입니다.
좋은 PM은 "사람들이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도록 만드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정리하면 아주 분명한 흐름이 보입니다.
가장 먼저 자동화되는 것은 정리, 기록, 초안 작성, 비교, 분류, 업데이트 같은 "반복형 업무"입니다. AI 보조가 특히 유의미한 것은 대안 검토, 예외 탐색, 허점 점검, 리스크 시뮬레이션, 관점 전환 같은 "사고 보조 업무"입니다. 사람이 끝까지 최종 승인해야 하는 것은 우선순위 결정, 범위 확정, 일정과 품질의 트레이드오프, 대외 약속, 책임 판단입니다. 그리고 반드시 인간이 해야 하는 것은 설득, 신뢰 형성, 이해관계자 조율, 현장 맥락 이해, 조직관리입니다.
이 구조를 한 문장으로 줄이면 이렇습니다. PM의 일은 “작성과 정리”에서 조금 더 “판단과 조율”로 중심축이 이동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PM의 경쟁력은 무엇을 자동화하고 무엇은 끝까지 인간이 책임져야 하는지 구분하는 능력, 그리고 AI와 사람을 함께 움직여 실제 결과를 더 효율적으로 만드는 능력에서 나올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문제를 제대로 정의하고, 좋은 결정을 내리고, 사람들의 신뢰를 지키면서 프로젝트를 앞으로 끌어가는 사람이 여전히 유능한 PM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