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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딸은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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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이현 May 17. 2019

이케아에서 생긴 일 : 실수는 때로 가족애를 키운다


  이날을 시작으로 여행에서 마주한 크고 작은 어려움은 수도 없이 많았다. 하지만 가족 모두가 힘을 합쳐 난관을 풀어가는 게 그렇게 즐거울 수 없었다. 곁에 서로가 있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감사했다.
  - 빼빼가족, 버스 몰고 세계여행(출판사 서평 중)



  이사를 하고 초등학생이 되는 딸의 방을 꾸며 주기로 했다. 침대며 옷장, 책상, 의자가 필요했는데 하나같이 가격이 만만치 않은지라 어디서 살지 고민을 좀 했다. 결론은 이케아에 가는 걸로. 고속도로를 달리면 30분 정도 걸리는 거리에 있어 전에도 한두 번 가본 적은 있었다. 갈 때마다 수건이나 컵, 스툴같이 꼭 필요하지도 않은 걸 하나씩 집어왔다.

  가본 사람은 알겠지만 이케아에서는 쇼룸이라고 부르는 전시공간을 지나 제품들이 상자에 차곡차곡 쌓여있는 대형 창고에 가서 본인이 원하는 물건을 직접 찾아야 한다. 물론 쇼룸에 전시된 제품에는 위치가 표시된 표가 붙어있고, 온라인 어플을 이용해서도 위치를 확인할 수 있다. 도서관에서 책을 찾는 것과 비슷하다. 전에 갔을 때는 그냥 눈에 보이는 걸 샀기 때문에, 굳이 창고에 가서 번호표를 확인하며 물건을 찾지는 않았다. 새로 생긴 이케아라는 쇼핑 공간을 구경하는 기분이었달까.

  

  이번에는 달랐다. 아이 방에 맞는 가구를 찾기 위해 치수를 확인하고, 디자인이나 가격 등 고려해야 할 게 많았다. 겨우 쇼핑을 마쳤을 때, 그러니까 쇼룸에서 어느 물건을 살지 정하고, 창고에 가서 그 물건을 찾아 결제까지 완료했을 때는 이미 이케아의 영업시간이 끝나고 나서였다.

  사려고 하는 물건의 위치를 미리 메모해 놓지 않아 생각보다 찾는데 시간이 오래 걸렸다. 옷장이 품절된지도 모르고 찾느라 시간이 좀 걸렸고, 침대같이 큰 물건은 별도 문의를 하면 직원들이 대형물품이 있는 더 큰 창고에 가서 찾아주는 시스템이기 때문에 시간이 더 오래 걸렸다. 영업시간은 10시까지인데, 우리가 주차장에 물건을 가득 싣고 도착했을 때는 이미 열 시 반도 훌쩍 지나서였다. 주차장은 텅 비어 있었다.

이케아 창고 : 도서관에서 책을 찾는 거랑 비슷하지만, 종류별로 분류돼 있지는 않아 번호를 모르면 찾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

  이케아의 다른 물건처럼 침대 역시 조립식이기 때문에 부피가 생각보다 크지는 않았다. 문제는 길이였다. 2.1미터. 센티미터로 하면 210이고, 밀리미터로 하면 2100. 내 차, 아니 우리 가족의 차는 소형 SUV다. 들어갈 것이라 생각했다. 뒷좌석을 접으면 내 차가 얼마나 넓은데. 더구나 얼마 전 친구가 이사할 때 상당히 큰 냉장고까지 무리 없이 싣지 않았던가. 보란 듯 냉장고를 싣고 ‘차 좋네!, 차 크네!’라며 옆에 있던 친구의 외제차를 깔보기도 하지 않았던가.

  ‘으쌰!’ 하며 자신만만하게 침대를, 그러니까 침대 프레임이 군더더기 없이 반듯하게 포장된 그 길쭉한 상자를 뒷 트렁크에 집어넣었다. 다 들어가지 않았다. 2100은 생각보다 길었다. 조수석까지 최대한 앞으로 끌어당겼다. 그래도 트렁크 문은 닫히지 않았다. 이미 매장 문은 닫혔을 터였다. 당황스러웠다. 낑낑대며 침대를 밀며 아내에게 말했다. ‘매장 문, 아직 열려 있는지 빨리 가서 확인 좀 해볼래.’ 아까 쇼룸에서 했던 직원과의 대화가 스치 듯 떠올랐다.

  “배송도 해주시나요?”

  “네, 그런데 배송비는 크기와 관계없이 오만 구천 원입니다.”

  “아, 그럼 제 차에 싣고 가야 되겠네요”

  

  배송 서비스를 이용하기에는 이미 어림없었겠지만, 직원이라도 만나면 하룻 밤정도 맡길 수도 있을 거라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이었다.

  아내가 딸 애 손을 잡고 종종걸음으로 사라졌을 때, ‘탁’ 트렁크 문이 닫혔다. 2100은 조수석 의자 뒷면과 트렁크의 바닥 사이를 일말의 틈도 남기지 않고 팽팽하게 채웠다. 옷장이 품절이었던 게 천만다행이었다. 옷장까지는 도저히 무리였을 것이다. 아내와 아이는 택시를 타고 오면 되겠지.


  영업시간이 한참 지났으니 매장 문이 열려있을 리 없었으므로, 아내와 딸은 터덜터덜 돌아왔다. 그런데 딸 애가 훌쩍대고 있었다. 놀랐던 것이다. 아무도 없는 깜깜한 주차장, 아빠의 당황하는 모습, 엄마의 종종걸음, 굳게 잠겨서 열리지 않는 문. 초등학생도 안된 어린아이에게는 놀랄 법도 한 상황이다. 그래도 이 정도 일로 우는 게 귀엽기도 하고, 또 당황한 모습을 보여준 게 미안하기도 해 딸을 끌어안았다. 걱정 말라고, 차에 다 들어갔다고, 우리 집에 갈 수 있다고, 안심시켜주었다. 끝까지 안 들어갔다면 일단 한쪽에 세워놓고 집에 가던지, 주변 호텔에서 하룻밤 묵던지 하면 되었던 거라고.


  아내에게 택시를 불러준다고 하자, 접혀있는 조수석을 쓰윽 보더니 ‘한 번 타보지’한다. 아이를 무릎에 앉히고 접힌 의자에 몸을 구겨 넣었다.

  그렇게 우리는 2100짜리 침대 프레임을 차 안 가득 싣고, 최대한 앞으로 젖힌 조수석에는 엄마와 아이가 몸을 구부려 타고, 아빠인 나는 혹시라도 어두운 고속도로에서 사고라도 날까 천천히 운전을 하며 집으로 돌아왔다.


  만약 침대가 차에 실리지 않을 것을 미리 예상해 오만 구천 원짜리 배송 서비스를 이용했거나, 혹은 애초에 치밀하게 계획해서 회사의 승합차를 빌려왔거나, 그것도 아니라면 아내와 딸이 비좁은 조수석에 낑낑 앉는 대신 택시를 탔다면, 우리 가족은 조금 더 세련되고 우아한 모습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빈틈없이 가득 찬 그 작은 차 안에서 우리 가족은, 조금은 더 끈끈해졌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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