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관을 키우는 방법

by Aarushi


스킨케어라곤 토너와 세럼 하나인데, 어제 세럼이 똑 떨어져 주문했다. 그러면서 든 생각은, 꼭 마흔 즈음이 되어서는 아니겠지만, 점점 더 나의 삶의 방식이 이전보다도 더 간결해지고 있구나를 실감했다. 같은 걸 2개 들이는 게 없고 내게 필요한 물건이나 살림살이는 웬만하면 용도에 따라 각 하나씩이면 불편하지 않다, 충분하다는 생각이 있다. 원목 트레이에 토너와 세럼, 보습크림 이렇게 페이셜 화장품을 놓아두는데, 다 쓴 용기를 버리고 새로 갈아끼는 살뜰함도 좋고 단출하기 그지 없는 모습을 보고 있자면 만족스러운 부분이 있다. 흔히 말하는 화장대를 따로 둔 적이 없는데, 내 집안은 그게 무엇이든 내가 사는 방식을 고스란히 반영하게 된다. 물건도 기운의 작용이라 절로 스며드는 것이겠지한다.


옷도 그렇고 살림살이도 이렇게 단출하게 살 수 있는 건 아직 혼자라는 점이 여러모로 날 자유롭게 하는 부분이 있겠지만, 지금의 단출하고 소박하고 아늑한 삶의 결이 나와 꼭 맞다는 생각이다. 지금이라도 당장 내 차로 짐을 다 싣고 떠날 수 있을만큼 나는 비우는데 아쉬움이 없으며 내 나름 짐에 있어서만큼은 굉장히 가볍게 살고 있구나를 느낀다.


조금 전 집을 나서면서 책 한권을 집어 들었는데, 즉흥적이었는데 헤르만 헤세의 책이란 건 알고 있었고 그 중 이걸 선택한 건 이 책이 오늘 나와의 인연인 것이다. 주차를 하고 카페로 향하면서 헤르만 헤세의 <그리움이 나를 밀고 간다> 첫 페이지를 넘기니 내가 사랑하는 작가 헤르만 헤세의 사진이 있다. 나는 그 사진조차도 굉장히 철학적이고 영적이게 느껴지는데, 그는 창밖 너머 풍경 속에서, 무엇을 생각하고 있었을까? 그의 통찰과 지혜와 문장력에 나는 매 번 경이로움을 느낀다.


카페에 들어서면서 오늘 들고 나온 이 책을 바로 읽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2장을 읽고 나니, 책을 우선 덮어놓았다. 이유는 이토록 단순한데, 경험적으로 나는 헤르만 헤세의 책을 펼쳤다하면 쉬지 않고 그 자리에서 읽어내야 하는 성미가 있기 때문이다. 지금 내가 느끼는 감정과 생각과 사유들을 갑자기 글로 풀어내고 싶었고 그러려면 글쓰기를 먼저 해야겠다는 생각이었던거다. 그의 책을 펼치면 나는 한시간이든 두시간이든 그 자리에서 꼼짝 않을 것을 알고 있다. 그리하여 이렇게 글쓰기 먼저 하게 된 것이다.


여전히 고독하지만 지난 10년 가까운 시간동안 책과 글쓰기가 없었더라면 어땠을까?싶을만큼 독서와 글쓰기는 내게 삶이 되었다. 내게 독서와 글쓰기는 나를 단련하는 훈련과도 같다. 명상과 독서와 글쓰기는 내게 하나다.


주차하는 곳에서 카페에 도착하는 그 짧은 몇 분동안 읽어 내려간 그의 책에서 그가 인용한 괴테의 "경탄하기 위해서 나는 존재한다."라는 문장을 만났고 그러면서 헤르만 헤세 자신은, "나는 오직 '경탄하는 일'에만 몰두했다."라고 했다. 나는 유난히 헤르만 헤세의 책이 그 어떤 책들보다도 쉽게 읽히고 푹 빠져들게 되는 게 있는데 책도 인연이라 어쩌면 나와 헤르만 헤세의 글과 기운이 잘 맞구나라는 생각을 절로 하게 된다.


나이 들어갈수록 보다 직관적이게 되고 또 절로 직관적인 것으로 많은 것들이 귀결되는데, 나 자신이 일상에서 직관력을 키울 수 있는 일이란 헤세와 같이 '자연에 대해 감탄하고 감동하는 일인 것 같다. 경이로움, awe의 순간들을 향유하고 만끽하고 그것을 내 안으로 소환해 나 자신이 사랑 그 자체임을 알아차리는 일이다.


파리에서 돌아온 후 3-4년 동안 파리에 가고 싶지 않을 만큼 나는 그 시절을 추억하는 듯하면서도 애써 뒤돌아보지 않았다. 행복했던 순간들과 방황과 고독과 우울로 힘겨웠던 순간들이 교차돼 한동안 그 추억과 기억들을 일부러 외면했던 거였다. 시간이 곱절 흐른 지금 파리시절의 좋았고 아름다웠고 낭만적이었고 즐거웠던 황홀했던 행복했던 기억들이 매일 날 감싼다. 부쩍 그 시절이 생각나고 그립고 아련하고 그런 시간을 경험할 수 있었던 나, 참 행복한 사람이구나.그렇게 아주 많이 감사해하고 있다.


나는 유난히도 파리 외곽의 자연에 감탄하는 일을 게을리하지 않았는데 그것이 지금의 나를, 내 삶을 지탱하는 것이 되었다. 황홀경에 대한 자국이 깊게 내 안에 새겨진 것이 분명하다.


황홀경, awe의 경험을 많이 경험해서인지 나의 장점 중 하나는 자연에 쉽게 감응하고 감동하고 감탄한다는 점이다. 제주에서도 나만의 스폿이 있는데 해질녘 그곳에 혼자 있노라면 잿빛과 핑크뮬리 색과 같은 핑크빛이 뒤섞여 수놓아진 하늘이, 바람이, 파도가 나를 꼭 안아주는 것 같다. 마치 나는 너를 알고 있다, 나는 너를 본다라고 말해주는 듯 나는 그렇게 자연 그 자체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내적 대화 내지 독백을 이어 나간다. 아름다운 자연을 보면 사진을 찍고 이걸 남겨야지 하는 생각을 외려 하지 못한다. 오히려 지금 이 순간을 내 눈과 내 온몸으로 기억하고 싶은 것이지, 지금 이 순간에 머물러야지. 존재해야지 하는 마음만 남는다. 지금 내가 향유해야할 것은 기록이 아니라 존재하는 것이다.


직관을 키우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awe의 순간들을 경험하는 일이다. 마음이 괴롭다가도 자연을 만나면 언제 그랬냐는듯 타는 생명력이 내 안에서 솟아난다. 그러니 자연은 내게 특효약이자 묘약이다. 내가 자연이고 자연도 나다 이런 방식으로 나와 이 대지는 자연은 연결되어 있다고 믿으며 나아가기를 반복한다. 쉬지 않고 글이 이토록 술술 써내려가지는 걸 보니, 내 안의 글쓰기 요정이 기지개를 폈나보군 싶다. 이렇게 쉼없이 써내려가다 절로 어느 문장에 마침표를 찍게 되면서 마치 꿈에서 깨어난듯 정신이 번쩍 들게 되는데 이십여분의 시간이 내게 절로 명상이 된다. 그 몰입의 경험이 나를 늘 글쓰게 하고 깨어있게 한다.


참 아름다웠던 나의 그 시절, 그리고 파리가 부쩍 생각나고 그 시절을 고마워하는 걸 보니, 내 안의 묵은 것들도 조금씩 걷히고 새살로 채워지고 있구나ㅡ싶다. 돌아온 직후 그 시절만큼 비운 걸 다시 채우느라 바쁘게 살았고 실은 무언가에 몰두할 것이 필요하기도 했고, 또 여행이 더는 내 안의 것들을 해결해 줄 수 없다는 걸 알아차린 뒤론 여행을 지금껏 떠나지 않았다.


그런데 요즘 부쩍 그 어느 때보다도 기운이 살아나고 용기가 나고 나 자신과 다시 잘해보고 싶은 마음이 드는데 신기하게도 여행 생각도 함께 난다. 그것도 아주 강렬하게. 아주 오랜만에 여행을 떠나볼까. 내가 가보지 않은 낯선 곳으로. 그리고 그곳에서의 황홀경으로 다시 내 자리로 돌아와 내 인생을 씩씩하게 살아가면 되는 것이지.하는 것들. 그저 모든 것에 감사하다. 삶은 너무도 아름다운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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