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좋아하는 모먼트 중 하나는 비내리는 풍경과 빗소리를 벗삼아 아무 것도 하지 않고 누워있거나 소파에 기대어있는 일이다. 나는 여전히 아무 것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한다. 삶에 어떤 큰 의미가 있는 건 아니란 것만 알뿐, 그저 존재하고 견뎌내고 살아있는 것이다. 살아있다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기적인지, 행운이지 알아차리는 평범하면서 소박한 그런 삶을 살아가고 있는 한사람이라는 것.정도.
좋아하는 노래를 틀어놓은 채, 침대에 기대 노트북을 올려놓고 글한편 써내려가는 일, 책 읽는 일, 이 두가지만으로도 충분히 만족스럽고 외롭지 않다. 오랜 고독의 시간을 지나와서인지 나와 고독은 하나고 고독 없인 지금의 나도 없었을 것이다란 믿음이 있다. 고독함이 타는 외로움은 아니란 걸 이젠 알게 되었다. 어느 날은 나의 고독을 내 눈을 보는 누군가가 알아차릴 것만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하고 동시에 나도 그 또는 그녀와 같이 상대의 고독을 안다는 듯한 동질감 내지 연민과 사랑을 보낼 때가 있다. 그것은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아는, 고독한 자들의 여유, 눈빛, 깊음이겠다.
확실히 나이 들어가고 있음을 실감한다. 서른 아홉이라고 하나. 무튼 마흔이라 생각한다. 마흔이 되어보니 확실히 체력도 예전같지 않다. 웃을 때 얼굴 주름도 보이고 기미도 보이고 목주름과 손주름도 확실히 달라졌다. 거울을 보다 이내 말하곤 한다. "진짜 나이 들어가고 있구나. 당연한 거 아니겠어? 이젠 잘 받아들여야 한다." 아름다웠던 스물, 서른 초반만 하더라도 마흔이 이토록 코앞일 줄은 상상도 못했는데, 그것이 인생 아니겠는가.싶다. 그 순간들이 얼마나 감사하고 찬란하고 아름답고 생기넘치는 것들이었는지. 물론 마흔이라고 다를까. 다만 그 시절만큼의 생기는 확실히 줄어드는 건 있다. 그러나 그마만큼 자기 생의 슬픔과 상처와 고난을 극복한 우리들이 갖는 그 특유의 깊음과 여유와 성숙함과 차분함과 침착함과 아름다움이 있다. 그것은 나이와 함께 익어간다는 걸 알게 된다. 그래서 나는 요즘 내 나이 또래의 사람들에게서 섹시함과 매력을 느낀다.
취향에 대해서도 부쩍 생각한다. 조촐한 살림살이를 갖고 사는 사람이라서 많은 물건이 필요하지 않구나를 알게 된 차제에 여전히 단출한 살림살이로 살고 있지만, 무엇이 엄청나게 갖고 싶다거나 하는 마음이 줄었다. 그것은 어떤 생에 대한, 삶에 대한, 세상에 대한 냉소적인 태도가 아니라 나와의 관계에서 형성된 자연스런 자기 자신의 삶의 태도내지 취향이라 할 수 있다.
하나의 물건이라도 진짜 내 취향의, 내가 좋아하는 패턴이라든지 소재라든지 이런 걸 산다. 가격은 만원 차이가 나더라도 두 개 살 걸 내 마음에 쏙 드는 것으로 딱 하나를 산다. 그래서 지금의 내 소비는 전혀 즉흥적이지 않은데다 간단하기 그지없다. 옛것을 좋아하는 것도 취향인지 어릴적부터 옛것, 레트로한 물건들을 좋아했는데 패브릭도 마찬가지 그런 결들을 좋아하는 나는, 화려한 것보단 빈티지 스러운 느낌의 것들을 좋아한다. 자기 취향의 것들로 자기 주변을 정리하고 비우고 채우고 하다보면 선명하게 자신의 것이 남는다. 그 과정을 통해 비움이 채움이고 채움이 비움이란 것도 알게 된다.
이젠 정말 마흔이구나.싶은 것이. 안 그럴줄 알았는데 요즘 부쩍 센티멘탈해지는 경향이 잦다. 늙음은 당연한 것이요 알고 있으나, 어느샌가 할머니 할아버지가 된듯한 내 부모의 모습을 보고 있자면 뒤돌아 눈물을 훔치게 되고 나 자신의 나이듦보다 내 부모의 나이듦과 늙음이 더욱 선명하게 보이고 서글퍼지고 슬퍼지게 되는 나이인 것 같다. 게다가 나 자신으로 돌아가, "나는 앞으로 이 계절을 얼마나 경험하게 될까? 절로 질문하게 되고 나는 길어봐야 앞으로 30년 살게 될까?"싶은 것들이 있다. 지난 시절에 대한 후회, 회한도 밀려오기도 하고 다 부질없는 걸 알면서도 이따금씩 이런 생각들이 든다.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니 이젠 괴로워하기 보단, 슬퍼하기 보단 이 또한 절로 인 사건이니 곧 지나가리라.그렇게 알아차리고 나는 그저 앞을 향해 나아가기를 반복한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알아차림 그 뿐이다.
나는 죽어가고 있다. 늘 상기한다. 나는 분명 죽는다. 정말이지 이런 생각을 하는데 이런 문장들이 외려 내 생의 의지를 북돋아주고 용기를 불러 일으킨다. 내게 나는 죽어가고 있다, 나는 언젠가 죽는다.라는 말은 그러므로 어떤 일이 일어나든, 무슨 일이 일어나든 그래? 그럴수 있어. 괜찮아. 이런 방식으로 날 위로하고 다독이고 안아주는 것이 된다.
마흔이 된 지금, 나의 외모는 어떨까? 어떻게 변할까?보단 나의 기운은 나의 에너지는 안녕한가? 내 눈은 여전히 빛나고 있는가? 친절한가? 따뜻한가? 다정한가?를 생각하게 된다. 이제는 반짝이고 화려한 아름다움보다 자연스런 모습으로 구수한 사람으로 아름답게 잘 나이 들어갔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다행스럽게도, "마흔이 되었는데, 나는 뭘 했나? 뭘 해놓았나? 나는 무엇을 이루었나?"라는 자책과 자기 비난은 없다. 그것들이 나가 아님을 알아차릴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기도 하고 나는 나 나름대로 내 삶을 책임지며 지금까지, 마흔까지 살아오지 않았나하는 자기 사랑과 자기 존중, 자기 연민이 더 크다. 끌리셰하지만 무엇이 되지 않아도 괜찮음을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한다.
우리 모두는 하나하나 이토록 소중한 빛임을, 있는 그대로 존재만으로 충분한 존재임을, 우리 모두는 연결되어 있다는 걸 그래서 우리는 서로 친절해야 한다는 걸 너무도 잘 알게 된 나이가 됐다.
나이 들어감을 생각하면 젊고 활기차고 아름다웠던 시절의 추억이 밀려오다가 다시금 지금의 나의 모습과 오버랩되는 그런 잔상들이 동시에 스쳐지나가면서 짙은 상념에 잠길 때가 있는데 그마저도 그대로 둔다. 그저 바라보면 된다. 그러다 다시금 정신이 차려질 때, 씩씩하게 다시 일어나 내 길을 가면 된다.
거울 속 나이든 나의 얼굴은 진짜 나인가? 이 얼굴은 한 자는 누구인가? 자기 안의 질문도 해보고 얼마가 남았을지도 모르는 불확실한 나의 생에 대해서도 다시금 돌아보게 하는, 생을 상기하게 한다.
여전히 모르겠다. 인생이란, 자기 생이란... 내가 할일은 just be in the present. 그것 뿐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