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려다 말고
일찌감치 닫아놓은 노트북을 열었다.
숙면을 위해 최적의 상태로 있는 지금,
자려다 말고 노트북을 켠 건 순전히 내 마음이 그러고 싶어서다.
글쓰고 싶었고 글 한편으로 자기 전 내 마음을 정화하고 싶었나보다.
내 마음이 원하는 대로, 지금 이렇게 키보드에 양손을 바짝 댄다.
늘 그렇듯, 고민 없이 지체없이 의식하지 않고 그 특유의 자연스러움으로 휘리릭 글을 써 내려간다.
그런 재미가 있다.
휘리릭, 술술.하는 그렇게 써 내려가는 맛.
무언가를 쏟아낸다는 쾌감과 짜릿함도 있다.
여유로웠던 오후,
옷정리를 했다. 가짓수가 한 눈에 보이는 정도라 거창할 것도 없는데
나는 아주 자주 옷을 정리한다.
설거지를 끝내고 마무리 하면서, 설거지대에 놓인 갓 설거지한 식기류를 보니,
이 조차도 많아 보이는지... 무튼 나는 변했다.
채우는 일보다 비우는 일에 기쁨을 느낀다.
시원함을 느낀다.
몇 년 되었는데, 어떻게 하면 채울까.보다,
어떻게 하면 좀 더 비울까.가 크다.
미니멀리스트.라는 말을 생각해본 적도 없고 사용하지도 않아봤다.
그저 소소한 단출한 내 마음과 의식의 반영인데,
그저 사소한 단출한 삶의 태도의 반영인데,
어떤 개념에 갇히고 싶지 않다.
옷을 가지런히 포개어 놓으면서 든 생각은,
이만하면 충분해.
얼마 전 니트 하나, 가디건 하나 사긴 해야겠어!. 했던 마음이 쏙 들어간다.
며칠 전 언니에게 물려입은 니트 한 벌, 가디건 한 벌 덕택도 있다.
예전의 내가 보면 깜짝 놀랄 일이다.
가끔 이런다.
"이렇게 사고 싶은 게 없어서야, 갖고 싶은 게 없어서야..."
어쩌다 갖고 싶은 물건이 생겨도,
이내 마음이 쏙 들어간다.
"이거 지금 나한테 그리 필요한 건 아닌데... 안 사는 걸로..."
누가 보면 모든 면에서 나란 사람은 아주 쿨한 사람처럼 이런 면에선 뒷끝 없이 잘도 넘긴다.
소소한 것 정도는 원하는 걸, 갖고 싶은 걸 살 법도 한데,
몇 시간 지나면 혹은 며칠 지나면 사고 싶은 마음이 완벽하게 들어가는 건
내 스스로도 신박하다.
돈을 아끼는 것과는 다른 결이다.
사고 싶은 게 있는데 돈 때문에 나의 욕망을, 소비 욕구를 꾹꾹 눌러가며 사는 것과는 다르다.
소비 욕망이라는 불꽃이 피어오르다가도 금세 꺼진다.
과소비나 불필요한 소비가 줄어드니 자연스레 돈도 아끼게 돼 알뜰한 사람이 된다.
내가, 살아가는 건데 이러면 어떻고 저러면 어떠할까.
정답이 없다.
내 방식대로 내가 내 삶의 주인이 돼 살아가면 되는 일.
이런 내 소비성향을 보고 있자면,
자기 자신.으로 살아가는 것 같아서 안도하는 마음도 있다.
소비하지 않는 마음.이란 단어 조합이 문득 떠올랐는데,
언제부터인가 웬만한 것에 잘 소비하지 않는 그 마음이란 도대체 무엇일까.라는
직관적인 내 물음에서 시작되었다.
그 마음이란,
별 거 없었다.
내 마음이 충족 된 걸까.
내 마음이 여유로운 걸까.
내 마음이 보름달처럼 차오른 걸까.
내 마음이 촉촉해진 걸까.
이유는 무엇이건 상관없다.
내가 만족하면 되었다.
내가 좋으면 되었다.
내가 괜찮으면 되었다.
모든 상황의 주어를 나.로 치환해보면,
그 어느 것도 이해되지 않을 건 없더라.
내 스스로에게 이렇게 시시로 말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