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는 세계와의 만남
나는 왜 쓰는가.
도대체 어떤 날은 이토록 폭풍이 휘몰아치듯 쓰고 있는가.
글쓰고 있는 나를, 경험자아를 알아차린다.
글쓰는 데 부담이 없다.
글쓰는 데 의무는 없다.
글쓰는 데 어떤 규칙도 없다.
글쓰는 데 어떤 형식도 없다.
글쓰는 데 어떤 제약도 없다.
글쓰는 데 어떤 조건도 어떤 한계도 없다.
순전히 내 이야기.인 탓이 크다.내 이야기라서, 부담없을 테고 가식 없이 어떤 걸 의식할 필요 없음.으로 내 글은 이토록 자유로울 수 있나보다. 글쓰기가 내겐 올리브오일이 프라이팬에 발리듯 매끄럽고 순하디 순한 행위다.
언제 어디서나 쓸 수 있다는 시공간의 제약 없음.도 내겐 자유다. 글쓰기는 내게 자유다.
하루를 시작하는 아침에 글을 한 편 쓰는 일은, 내 하루의 기분과 태도에 큰 영향을 미친다. 쉼없이 의식의 흐름대로 20-30분이내, 그 순간만큼은 완전한 몰입상태로 글 한편을 완성하고 나면 그 끝엔 언제나 설명할 수 없는 청량감과 통쾌함을 느끼게 된다. 마치 내 몸과 마음이 영민한 생각으로 깨끗하게 정화되는 듯한 묘한 감정과 느낌이라는 표현이 맞겠다. 그렇게 내 하루는 그렇게 영민해지고 야무져 질 수밖에 없게 된다.
부쩍 나에게 일어나는 일들에 꽤 초연해지고 의연해진 나를 관찰하게 되는데. 이런 내 모습을 관찰하고 있자면 꽤 흥미롭고 재미있다. 내가 내 스스로를 한 발자국 뒤에 물러서서 관찰한다는 건, 날 사유하게 하고 깨닫게 하고 통찰하게 한다. 통찰이란, 꿰뚫어 보는 일일텐데. 내가 내 스스로를 꿰뚫어 본다는 건, 내 삶의 의미와 가치를 만들어나가는데, 내 삶을 아름답게 수놓는 데에 필수적이다.
수시로 때로는 시시로 내 안의 나를 들여다보면, 관찰하다보면 그 속에서 의미있는 질문이 나올 수 있고 때로는 답을 구할 수 있다. 사유하는 인간이 갖는 힘이란 어떨땐 경이롭기까지하다.
글도 마찬가지다. 개인적으로 내 글쓰기의 첫 시작은 온전히 내 스스로를 치유하기 위한 과정이자 일환이었다. 누구에게 보여주기 위한 글이 아니라 스스로 생각하고 스스로 질문하고 답했던 치열한 과정속에서 피어난 삶의 통찰과 깨달음을 담담히 무심하게 적어내려 간 글이었다. 그 속에서 나.를 만나게 되었고 내 삶의 가치와 태도를 정열할 수 있었고 내 안의 우주를 해석하고 유영할 수 있었다.
독서와 글쓰기.가 나.라는 사람을 한층 성장시켰고 날 일으켜준, 날 살게 한 일등공신이다. 나는 아직도 여전히 끊임없이 성장하고 있는 중이다. 성장하는 인간, 관찰하는 인간... 오늘도 나는 이렇게 조금씩 어제보다 나은 나.로, 내 앞에 펼쳐진 세계를 향해 힘차게 걷고 있다.
가끔 쓰고 난 뒤 내 글을 쭉 한 번 읽어내려갈 때가 있다. 그럴 때 드는 생각은, 혹은 글을 휘뚜루 마뚜루 휙휙 쉼없이 써내려가는 날 볼 때, 마치 내가 아닌 타인을 바라보는 듯이, 마치 누군가가 일러주는 듯한, 묘한 기분이 들 때가 있다. 몰입이겠고 알아차림일 수 있다.
글쓸땐 철저히 그 순간만큼은 완전한 몰입의 상태를 경험할 때가 대부분인데, 그 몰입의 경험은 설명할 수 없을 만큼 짜릿하다.
무의식의 흐름이 이런 것일까. 이런저런 생각들과 질문들이 휘몰아 칠 때가 있다.
내 안의 나.구나.
너가 나를 이런 방식으로 이끌어내주는 구나.하곤 한다.
자기 자신.이라는 단어를 사랑한다.
자기 자신이.주는 그 묵직함이 내게 용기와 희망을 준다.
내 사유와 사색의 형태는 거창하지 않다.
지극히 자연스럽고,
지극히 나답고,
지극히 자유로운 것이다.
삶.에 대해 이토록 무심할 수 있을까.싶을 정도로나는 나. 그리고 주변인. 세상에 대해, 삶에 대해 참 많이 너그러워지게 되었다. 자기 자신.과 하루에도 여러 번, 그렇게 자주 만나다보면, 외롭지 않다.
자기 자신과 독대하는 그 마주함이, 고독이라는 이름으로 날 성장하게 한다.
언제부터인가 받아들임, 내려놓음, 수용.이라는 말이 나는 편해졌고 익숙해졌다. 나이 들어갈수록 외면도 내면도 좋은 에너지들로 텅빔을 잘 채워나가고 싶은 바람이 있는데, 이런 방식으로 이따금씩 때로는 수시로, 불현듯 이런 문장과 단어들이 파다닥 떠오르곤 한다.
알아차림도 있겠고 내 안의 나와 대화를 하고 있다는 방증이기도 하고 나를 돌아보는 과정이라는 생각도 있다. 그러다 소파에서 벌떡 일어나 거울 앞에 선다. 내 눈동자와 눈빛은 안녕한지. 깨끗한지. 맑은지. 초롱초롱한지. 빛나고 있는지.
후루룩 순식간에 몰입하며 써 내려간 내 글을 읽고 있자면, 내 사유와 사색의 여유에 감사하다. 글을 통해 내 정신과 마음을 다스리고 정리하고 살아갈 힘을 얻는다. 글을 통해 나는 나.를 더욱 깊이 만난다.
글쓰는 순간이란, 내겐 평온이자 평안이자 평화이자 자유다.
문득 하루에도 쓰고 싶으면 몇 개의 글을 쓰는 날 알아차리며, "나는 도대체 왜 쓰는가?"라는 질문이 일었다. 특이한 것은, 도대체.라는 말이 강하게 밀어부쳐졌다는 건데, 정말이지 내 안에 글쓰기 괴물이 사는 건지. 재밌는 상상을 해본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토록 덤덤하게 무심하게 건조하게 이렇게 글쓸 수 있을까.
내 글쓰기엔 희로애락이 없다. 딱 내 마음상태와 닮았달까.
건조함이 좋아졌다. 내 하루도, 내 일상도, 내 인생도, 내 글도, 내 사랑도 너무 촉촉하지도 않게.너무 건조하지도 않게. 적당한 건조함과 적당한 촉촉함 그 사이. 고요한 흐름의 사선에 대한 애정이 있다.
내 글쓰기는 멈추지 않을 것이다. 내가 존재하는 한. 내 글쓰기는 나다.
이전의 나의 글을 보면 글의 내용이 꽤 길다. 의도한 것은 아니었고 그땐 희한하리만치 글쓰고 나면 딱 그 정도의 분량으로 글의 마침표가 찍어졌다.
요즘 나의 글을 보면 길이가 짧아졌고 긴 말을 하지 않는다. 길이 또한 의도한 것은 아니다.
자연스런 흐름이 아닐까. 내 사유의 시선과 현재 내 삶의 태도의 반영이 아닐까. 단출하다. 내 마음이 이끄는 대로마치고 싶을 때 마침표를 찍는다. 글쓰기의 자유다.
지금 내 삶처럼,
내 살림살이처럼,
내 글도 참 단출하다.
참 심플하다.
참 소소하다.
참 소박하다.
그럼에도 내 삶은, 내 글은 소소하지만 찬란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많은 말을 하지 않는, 많은 말을 하지 않게 된 탓도 있다. 많을 말을 하지 않는 지금의 나처럼, 내 글은 그런 날 꼭 닮았다.
진짜.는
많은 말이 필요 없다.는 생각이 있다.
점점 짧아진다. 올해부터인가 어느 시점에, 간결한 글쓰기.가 좋아졌다. 문장 호흡도 전체 글 길이도 줄어들었다. 의도했다기보다는 자연스럽게 됐고 절로 그렇게 밖에 도통 써지지 않는다는 것도 맞다.
순전히 내 마음에서 짧은 글을 쓰는 것이다. 이마저도 원하는 대로, 마음대로 하렴.이다.
간결한 글쓰기는 장점이 많다.
말처럼,
필요없는 말을 하지 않는다.
쓸데 없는 말을 하지 않는다.
생각의 호흡도 내 스스로 통제할 수 있고 조절할 수 있다는 점에서, 자기 긍정적이게 된다.
그러고 보면 글도 내 현재 상태와 삶의 태도와 꼭 닮았다. 글도 나라서, 나도 글이고 글도 나다.
어느 야심한 밤, 이불과 침구 아래서 노트북을 켠 채, 쓰는 글이란, 물흐르듯 힘 쫙 뺀 듯 하지만 한 순간에 휘 몰아치는 사색의 결과라는 것. 내 짧은 글이 나 자신에게 주는 부드러운 용도와 위로를 나는 고마워한다.
요즘 내 주위를 둘러보면, 내 집에 있는 물건 어느 것 하나, 내 살림살이 어느 것 하나 날 닮지 않은 것이 없다. 하나같이 딱 나 같다. 하루도 빠지지 않고 글.이라는 사무실로 매일 출근한다. 출근하는 발걸음은 늘 자유롭다.
글이라는 내 사무실엔 어떤 제약도, 어떤 한계도 없다.
생각의 넓이도 깊이도, 공간도, 시간도,
그 곳에서 주인은 오롯이 내.가 된다.
글이 날 부르면 곧장 글을 써내려가기 시작한다. 나는 이런 사유의 무작위함이 좋다. 글쓰다 보면, 멈칫할 때가 있다. 내 글을 가만히 들여다보곤 하는데 내가 지금 쓰는 글들은 어떨땐순전히 내가 나 자신에게 하고 싶은 말. 내가 나 자신에게 명령하는 말 투성이다.
아무렴 어떤가.
내게 글쓰기란, 나를 만나는 과정 아닌가.
나와의 대화하는 것 아닌가.
글쓰고 있는 나.를 알아차리는 나.를 발견하는 일.
어떤 방식으로든 내 글은 내게 만큼은 유리하다. 유용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