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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nnerplate Jun 11. 2024

자기 생의 철학자가 되어간다

몇 년 전 어디선가 본 문구였다. "그러니 그대 사라지지 마라." 분명 어디에선가 우연히 보고선 스치듯 기억해 놓은 것일텐데 도통 어디에서였는지 기억이 없다. 

이 말이 그때 왜 그리도 내 마음을 울렸는지. 한동안 내 프사에 저장돼 있었다. 헝가리 부다페스트 야경을 바라보고 있는 내 뒷모습 사진과 함께. 왠지 모를 불안감과 무기력함으로 꽤 오랜 시간 삶의 방향을 잡지 못했었다. 


일은 일대로 하고 있었으나 확신할 수 없었고 내 이상과 내 현실의 갭은 점점 커져만 갔던 시기와도 정확히 일치한다. 


당시 그대.는 나.로 감정이입이 됐고 내 스스로에게 그러니 사라지지 마라.라고 계속해서 속삭이는 듯했다. 지금도 한창인 나이라고 생각하며 사는 나인데, 그땐 지금보다도 훨씬 아가의 상태였음에도 마치 이 세상이 다 끝난 것처럼, 더 이상 무언가를 할 수 없을 것만 같은, 실패자가 된 것처럼 생각했는지. 이 또한 내 어리석음의 죄.였을 터다. 


"그땐 왜 몰랐을까. 그땐 도대체 왜 그랬을까."라고 무심코 말하기라도 하면 언니는 "아니야, 넌 그때로 돌아간다 해도 아마 똑같은 선택을 했을 거야."라고 한다. 흠... 글쎄. 그랬을까. 


꽤 긴 시간 날 옥죄였다. 무기력감, 우울, 불안, 후회 이 4종 세트가 이렇게 무서운 것일 줄이야. 나는 알면서도 일어설만하면 도로 넘어지고 하기를 반복했다. 이 반복적인 상황은 내 일상을 조금씩 좀먹고 있었다. 


어린 시절부터 하고자 하는 것은 곧잘 해내었고 대학시절엔 원하던 대로 조기졸업도 했고 외국계 첫 지원에 한 번에 붙는 행운도 얻었기에 내 인생은 어찌 보면 평범하지만 평탄하게 흘러간다고 생각했었다. 가만히 있어도 조금은 튀는 외모와 성격으로 어딜 가도 주목을 받기도 때로는 기대를 한 몸에 받기도, 내가 생각하는 나보다 타인이 보는 내 이미지에 도취던 던적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서른이 되던 해, 지금 하는 내 일의 5년 뒤, 10년 뒤의 모습이 그려졌다. 시간이 갈수록 연봉도 높아지고 퇴직금도 쌓이고 이만한 직업이 없다는 말도 일리 있었다. 하지만 넘어져도 설령 실패하더라도 내가 진짜 더 잘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었다. 결정엔 지체 없었다. 


여전히 감사해하고 있는 그 시절 나의 멘토들은 내 결정에, 

"그래, 잘 생각했다. 넌 여길 나가면 훨씬 더 빛이 날거야. 넌 분명 잘 될 거다. 응원한다."고 말씀해 주셨다. 심지어 추천서도 직접 써주셨다. 


어쩌면 면나 자신 스스로에 대한 냉철한 평가나 진단 없이 다른 사람들이 바라보는 내 능력, 잠재력을 나는 그게 곧 나.라고 믿었을지도 모른다. 아니 사실 그랬다. 그랬기에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불안과 무기력에 절망감을 느끼게 되었다고 지금은 확신할 수 있게 되었다. 


다른 사람이 날 어떻게 볼까. 혹은 보는가.에 방점이 찍혀서는 안 되었다. 나 스스로가 날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에 방점이 찍혔어야 했다. 지금은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됐다. 타인의 시선과 생각에는 관심 없으며 온전히 나에게 집중하며 과거의 나가 아닌 어제의 나와 비교하며 내 삶의 고삐를 다잡는다. 


과거의 화려했던 나의 모습도, 지난 영광도 그 시절이었으며 지금의 나는 화려하지도 않지만 화려하지 않으면 어떤가. 


대신 마음의 평안과 안정과 삶의 여유를 얻게 되었으니 화려함은 이제 전혀 부럽지 않다. 


이제는 그 시절은, 

"그땐 그랬지...^^"라고 청춘 초아시대.라고 이름붙일 만큼 흔들림 없는 마음이 됐다. 방황했떤 그때 외국으로 떠나면서 그 시절은, 참 많은 사람들을 관찰하면서 나를 객관적으로 명확하게 돌아보는 시간이었다. 


결국 우리 모두는 그저 살아가는구나. 

삶의 의미는 굳이 찾지 않아도 없어도 애쓰지 않아도 괜찮다고. 

그냥 살면 된다고. 


지나가는 사람들이 내게 말해주는 듯했다. 


돌고 돌아 나는 지금 여기에 있다. 

당시에는 날 좀먹는다 생각했던 부정적인 모든 감정들이 지금은 내게 피와 살이 되었음을 여실히 느끼고 있다. 


그 시간이 없었더라면 지금의 나.는 존재할까.라고 생각할 만큼 충분히 아파했고 그 덕분에 내 삶을 정확하게 통찰할 기회를 얻게 됐다. 


이보다 더 한 선물이 있을까. 


무엇보다 어떤 비바람에도 흔들리지 않을 만큼 밟히지 않을 만큼의 단단함과 잡초 같은 성미를 얻게 됐다.


이제는 두렵지 않다. 두려움이나 불안이 어쩌다 똑똑하고 문을 두드리기라도 하면 그때 잠시 뿐이다. 감정은 내가 통제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었다. 몸의 움직임이 가장 빠르고 효과적인 방법이었고 이제는 너무도 잘 알기에 그때마다 재빨리 몸을 움직여 내 일상을 회복한다.  


나의 시대.는 이제 시작이다. 

어쩌면 나의 르네상스는 always였을지도 모르겠다. 

행복처럼 늘 내곁에 있는데 내가 발견하지 못한 것일지도.

  

오히려 뭣 모르던 그 시절보다 삶을 통찰할 수 있게 된 지금의 내가 편안하고 만족스럽다. 


삶의 기쁨과 슬픔은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기쁨이 있기에 슬픔이 있고 슬픔이 있기에 기쁨이 있다. 

마치 죽음이 있기에 삶이 더욱 아름다운 것처럼. 

낮이 있기에 밤이 있고 밤이 있기에 낮이 있는 것처럼.


이렇게 사유할 수 있게 된 나라서, 

나만의 언어로 글 지을 수 있어서, 

나는 참 행복한 사람이다. 


우리는 이렇게 각자 자기 생의 철학자가 되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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