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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lievibes Aug 19. 2024

술을 마시지 않는 이유

잘 먹고 잘자는 게 실은 본질이자 전부다. 긴시간 푹 잘자고 나면 피부결이 달라진 게 확연히 느껴진다. 예전 같았음 불안해하거나 우울해하곤 했을 일인데, 희한하게 이번엔 아니다. 이토록 평온할수가. 이토록 괜찮을수가. 조금씩 성장하고 있는게 아닐까. 경험적으로 결국 모든 것은 지나간다, 변한다.는 걸 잘 알고 있어서기도 할 것이다. 


이 아침 문득 "술을 마시지 않는 이유"가 불현듯 떠오른 이유가 있겠지. 지극히 자연스레 글이 써내려가진다. 술을 마시지 않은지 꽤 되었다. 원래도 술을 즐기지 않았는데, 지금은 아예 마시지 않는다. 이유는 분명한데 소주든, 맥주든, 막걸리든 맛있지 않아서다. 당기지 않아서다. 그럼에도 와인은 예외였는데, 화이트 와인을 좋아했다. 퉁퉁하고 넓은 와인잔에 냉장고에 넣어둔 클라우드 베이 한 잔 마시는 건, 고된 하루에 지친 일상에 낭만 한 스푼인 시절이 있었다. 


술을 의식해서 마시지 않는 것은 아니고, 자연스레 그렇게 됐다는 설명이 맞다. 정말이지 당기지 않아서가 이유고 술을 마시지 않는 것이 내 건강에도 유리해서다. 나이 들어가며 좋은 점 중 하나는, 내 자신에게 이로운 방식으로 유리한 방식으로 생활습관이나 패턴을 재정렬 혹은 재배치가 된다는 것이다. 


자연스레 내게 맞는 음식과 건강한 음식을 찾게 되고, 내 몸에 맞는 운동방법을 찾게 되고, 나와 결이 맞고 대화가 잘 통하는 사람들과의 만남을 선호하게 되고, 과한 기와 에너지 소모를 줄이게 된다. 남들의 시선에도 이토록 무심해진다. 자기 삶의 주인이거늘 이십대땐, 서른 초반때까지만하더라도 왜 그리 남이 어떻게 볼까 혹은 남과의 비교로 나 자신을 괴롭혔을까? 힘들게 했을까? 안타까운 마음이 있다. 


술을 마시지 않는 것도 내게 맞는 방식이랄까. 내게 맞는 것들을 하나하나씩 찾게 되면서, 재배치, 재정렬하면서 나온 선호였다. 술을 마시지 않는 건, 나의 선호다. 선호란 취향이 되고 취향은 삶이 되고 삶의 태도가 되고 삶의 방식이 되고 생활 습관이 된다. 


어제 오후 우연히 돌린 채널에서 쁘띠 아만다를 보게 됐다. 2019년 파리살던 때 곳곳에서 쁘띠 아만다 영화 포스터를 볼 수 있었는데, 한 번 볼까.하면서 지나친 영화였다. 그 기억이 선명해 잘됐다 싶어 즐거운 마음으로 봤다. 잔잔한 가족영화나 일본 가족 영화를 선호하는데, 보는 내내 내 마음이 고요하기만 했다. 평안했다. 중간을 넘어서자 낯익은 배우가 나왔다. 조나단 코헨이었는데 이렇게 반가울수가. 


그해 가을 팔레 루아얄에서 열린 이자벨 마헝 패션쇼에서 그와 이야기를 나누고 사진도 함께 찍었다. 유머러스하고 친절하고 나이스한 사람이었다. 쁘띠 아만다를 보고 있으니 그 시절이 파노라마처럼 떠올랐다. 익숙한 길, 골목길, 도로. 시간이 꽤 지났지만 이토록 익숙할수가. 그 시절에도 부지런한 뚜벅이었으니, 영화 속 파리 시내는 한 눈에 봐도 어딘지 알 정도다.  


모노프히나 비오 매장에서 주로 장을 봤는데, 마트에서 파는 와인이어도 퀄리티가 좋았고 가격도 합리적이었다. 와인 한 병 사들고 드미 트라디시옹 바게뜨 하나를 사서 집에 가는 길. 그 시절 낭만이자 감성이자 나 자신에게 주는 위로였다. 그때까지만 해도 와인을 홀짝홀짝 잘 마셨더랬다. 지금은 와인도 당기지 않는 걸 보니 내겐 그마저도 다 한 때였구나.싶다. 


이젠 사람들과의 만남도 잔잔해졌다. 너무 밝기보다는, 적절한 조화와 균형이 있는 대화와 만남을 선호한다. 밤에 약속을 잡지 않는다. 브런치나 점심이 좋고 저녁 약속이 있어도 많은 기와 에너지가 소모되지 않을 만큼 좋은 사람들과의 만남을 한다. 너무 시끄러운 장소도 피하게 되었는데, 잔잔하고 고요한 공간과 장소가 내게 편안함과 여유를 가져다 준다. 


정말 나다워지기 시작한지는 서른 중반부터였다. 내 삶은 서른 다섯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고 할 수 있다. 지금의 나는 내게 어떤 일도 일어나지 말기를 바라지 않는다. 기대하지 않는다. 어떤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는것보다 어떤 일이 일어나도, 무슨 일이 일어나도 ok.의 마음을 갖는 것이 훨씬 더 현명하다는, 사는데 훨씬 유리하다는, 유익하다고 생각한다. 또 그런 마음으로 산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아무 것도 하지 않아도 진짜 괜찮은 게 무엇인지. 진짜 괜찮을 수 있는지 한 번 볼까?하는 마음이 있는데, 일주일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평온한 걸 보니 낯설면서도 반갑다. 리트릿.인셈인데, 날 옭아맨 집착이나 두려움, 불안에서 벗어나 온전하게 내 안에 집중하는 일, 나와 마주하는 시간이기로 한다. 내 주의를 밖이 아닌 안으로 돌리는 것. 내겐 익숙하게 됐다. 습관이 됐다. 


좀 전에 돌린 세탁기도 잘 돌아가고 있고 모든 것이 순조로운데, 내가 하면 기분 좋은 것들로 과하거나 부족함 없이 균형있고 조화로운 순간순간을 보내야지^^ 내 안의 소리가 말을 걸어온다. 이토록 친근할수가. 이토록 상냥할수가. 우선 몸을 움직이자!. 으랏차차. 으쌰. 자리에서 씩씩하게 일어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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