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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lievibes Aug 22. 2024

진짜는 말이 없다

도서관이 걸어서 10분 거리에 있게 한 건 탁월한 선택이었다. 거북이 걸음으로 걸어도 10분이면 닿는다. 서른이 넘어서부턴 이사가 잦다. 1인 가구여서 자유로운 점도 한 몫한다. 어느 정도가 지나 환경을 바꾸거나 사는 곳, 사는 공간을 바꿔주는게 기운적으로도 도움이 된다는 생각이 있다.


5분 거리에 스타벅스가 있고 집을 중심으로 아주 작은 반경안에 있을게 다 있어 불편함이 없는 동네다. 익숙해져서겠지.싶다. 내게 주어진 이 쉼.을 나는 과연 어떻게 보내고 있는가? 어떻게 보내야할까? 고작 일주일 조금 넘었을 뿐인데, 다시 무언가를 하려고 하는 모양새다. 움직이지 않으면 더욱 무기력해지고 우울해지는 성향이라 고새를 못참고 또 다시 무언가를 급하게 하려고 하는 게, 역시 사람 쉽게 변하지 않는 건 맞다.


이번 쉼.에 단단히 결심한 게 하나 있다. 기존에 하던 일로 절대. 다시 돌아가지 않을 것! 이유인 즉슨, 최근 몇 년 동안 아닌 걸 알면서도, 내가 원하는 게 아닌 걸 알면서도 눈앞의 돈에만 집착한 나머지 행복하지 않은 시간을 보냈기 때문이다. 원하는 게 아니니, 즐겁지 않으니, 결국 도돌이표처럼 어느 주기만 되면, 어느 시점만 되면 무기력감과 절망감과 우울감이 어김없이 휘몰아쳤다.


차제에 정말이지 지금이 내가 진짜 변화할, 인식의 대전환의 계기인 걸까? 마치 우주가 "초아야, 이제 어떻게 할거야? 이제 정말 네가 원하는 삶을 살아볼테야? 변화할 수 있겠어? 또 망설일거니?"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서른 후반이 돼서야 알아야 했던 것일까? 내 안의 소리를 외면하면, 내 안을 제대로 들여다볼 줄 모르면, 나를 모르면 한 발자국도 나아갈 수 없다는 것. 변화할 수 없다는 것. 그 변화는 오롯이 나 자신의 선택이라는 걸.


내게 원하는 것.이란, 설렘이다. 날 설레게 하는 것. 일상을 고요하게 보내고 있으면서 잔잔한 호수의 물결처럼, 비가 올듯말듯한 경계에 선 바람에 살랑이는 나뭇잎들처럼, 하얀 도화지위에 회색 잿빛이 흩뿌려진 듯한 하늘을 바라보며 "나는 무엇을 기대하나?"라고 질문하고 있었다. 존 윌리엄스의 스토너의 마지막 구절이 떠올랐다. "너는 무엇을 기대했나?"


나의 결심은 꽤나 진지하고 비장하기까지 한데, 1. 내 안의 소리를 들을 것. 2. 자리이타의 삶일 것. 3. 기존의낡은 습을 버릴 것. 4. 기존의 삶과 거꾸로 혹은 다른 방식으로 삶을 살아 볼 것.이다. 삶이 변하지 않는다고 느낄때, 도무지 답답하기만 할 때, 계속 혹은 평생 이러고 살 것만 같은 두려움이 엄습할 때 할 수 있는 일이란, 이런 것이 아닐까. "그래? 까짓 거 전혀 다르게 살아봐? 전혀 다르게 도전해봐? 용기내 봐?" 내 속은 어쩜 이토록 용감한지. 실천을 망설이는 나는 또 무어람. 이토록 이중적이어서야 되겠는가?한다.


얼마 전, 친구가 선물해준 인요가의 언어.를 읽어내려갔다. 잠이 스르르 오는 건 무엇. 졸리구나. 그렇담. 조금 자고 일어나자. 자야 기운이 나지.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낮잠을 잤다. 낮잠을 잔다는 건 내게 있을 수 없는 일이었는데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니 편안했다. 졸리니까 자는 것인데, 잠을 잔다는 건 게으름으로 인식돼 알 수 없는 죄책감을 느꼈던 건 내 안의 문제였을까. 아님 사회적인 혹은 미디어에 세뇌된 것들로 인한 것이었을까. 무튼 이젠 그 어떤 것도 견해일 뿐, 판단하려 하지 않는다.  


도서관 근처 통창으로 된 카페가 있는데 지난 번 오고 꽤나 마음에 들었다. 일주일만에 다시 찾았는데 한적하고 뻥뚫린 통창의 뷰가 내 마음 같달까. 시원시원한 것이 이 자체가 리트릿이 아니고 무얼까. 잔잔하게 들려오는 재즈 선율에 글 한편을 쓰고 가기로 한다.


비가 올듯말듯한데, 이러다 소나기가 쏟아질 조짐이다. 딱 이때의 날씨도 참 사랑하는데 오늘 오후 마음이 이토록 촉촉히 젖는 걸 보니 다시 기운이 차려진다. 내 취향의 카페에 들르는 일, 소소하지만 나를 기분좋게 하는 것들 중 하나다. 집이 카페같음 좋겠다.싶지만 집은 집이다. 집을 카페처럼 꾸며논다한들 분명 다르다는 걸 안다. 몸을 움직이고 낯설면서도 새로운 공간에 내 몸을 들여다 놓는 일. 새로운 경험이기도 하다.


그냥 쓴다. 늘 내 글쓰기는 즉흥적인 것인데, 계산하지 않는다. 가식적이지 않다. 있는 그대로 바라봄이고 내 눈앞에 펼쳐진 현상을, 마음세계를 고스란히 드러내는 관찰일기랄까. 관찰하지 않으면 글을 쓸 수 없다. 며칠 전 책을 읽으며 공원을 돌고 있는데, 꽤 큰 개미 한마리가 책에 앉았다. 지난 번엔 무당벌레 한 마리가 앉더니 이번엔 개미 한 마리다. 살포시 책을 땅 아래로 내려 개미를 놓아주었는데, 정말이지 이럴때면 더욱 분명해진다. 너와 나는 하나다. 나와 자연은 하나다. 우리 모두는 연결돼 있다. 모든 것은 연결돼 있다.


몸이 무거워지는  경계하는 이유  하나는, 몸이  정신건강에 즉각적인 영향을 미쳐서인데, 몸의 변화엔 분명 마음의 변화, 정신건강의 변화가 있다. 분명하고 어김없다. 나의 경우 몸이 가벼워야 자연과 더욱 하나되는 기분이랄까. 산뜻한 걸음걸이로 땅을 밟을 , 내딛을 . 나는 더욱 하나됨을 느끼는 편이다. 몸을 가볍게 하는 , 살뜰히 보살피는 .  정신건강이 온전하고 평화로운 상태, 몸무게를 유지하는 . 건강한 삶을 위해 절대 놓지 말아야 하는 것이다.


진짜는 말이 없다.는 말을 곧잘 하는데, 나이 들어가며 말이 없는 사람이 좋다. 할 말은 하되 말수는 적고 어쩌다 하는 말에서 묵직함이 느껴지는 사람에게서 편안함을 느낀다. 내가 자연을 사랑하는 이유는, 자연은 말이 없다. 자연은 내어줄 때, 어떤 말도 하지 않는다. 그저 내어줄 뿐. 많은 말이 필요 없는 것이다. 이처럼 진짜는 말이 없다. 사람을 만날 때 많은 말을 하지 말자. 상대의 말을 묵묵히 들어주자. 그런 사람이 되자.고 다짐을 하지만 막상 말이 많아지는 나를 알아차리곤 한다. 소스라치게 놀랄만큼 알아차리는 편이다.


진짜는 말이 없다.는 건 모든 것에서 적용가능하고 찾아볼 수 있다. 우리집 맛집이에요.라고 직접적으로 말하는 곳보다 한 번 드셔보세요!.라고 짧게 말을 맺는 곳이 맛집일 확률이 높다는 생각이 있다. 사람관계에서도 어떤 분야의 전문가 혹은 고수라하면, 말이 없다는 걸 알 수 있다. 그러고보면 매력도 마찬가진데, 진짜 매력이란 절로 드러나는 것처럼.  


묵직하고 싶은 그러나 다정하고 상냥하고 친절한 사람이 되고 싶은 나의 바람은 현재 진행형이다. 절로 그리 되는 것은 아닐터, 사실 친절하고 상냥하고 다정한 사람이 되는데에도 노력이 필요하다. 알아차림이 그것이다. 통창 너머 절로 드러나는 하늘이 내 눈을 사로잡는다. 눈 앞에 많은 풍경이 있건만 하늘만 보이는 건 어떤 이유에서일까. 아직 소나기는 오지 않았고 언제 올지 알 수 없다. 올수도 있고 안 올수도 있다. 삶도 그런 것이 아닐까. 예측할 수 있는 것이 있던가? 내 맘대로, 내 계획대로 되는 것이 있던가?


하얀 도화지 위(하늘)에 회색 잿빛, 그을린 듯한 색감의 물감이 흩뿌려진 채, 움직이기까지 한다. 몽글몽글하게 먹구름떼가 꽤 빠른 속도로 움직이는데, 분명한 건 하얀 도화지는 늘 그자리에 있다는 거다. 어떤 미동도 없다. 그게 진짜 나라는 사실. 진짜는 말이 없다. 진짜는 변하지 않는다. 진짜는 늘 거기에 있다.는 걸로 연결된다.


관찰하면 삶이 보인다. 관찰하면 다른 관점이 보인다. 관찰하면 다른 세상이 보인다. 관찰하면 우주가 아름다워보인다. 어느 것 하나 소중하지 않은 것이 없다. 어느 것 하나 감사하지 않은 것이 없다.


서른 후반, 마흔을 앞두고서야 세상 이치를 아주 조금 알게 되는 것도, 세상을 배우게 된 것도 필연이었겠지? 모든 것은 인연이고 필연이었음을. 나는 이런 방식으로 깨닫고 배우고 성장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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