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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lievibes Aug 29. 2024

사진

횡단보도를 건넌 지 10초도 되지 않아 꽈당 소리와 함께 처절한 자세로 앞으로 고꾸라 넘어졌다. 왼손엔 핸드폰을 들고 있었는데 그대로 아이폰 앞면이 아스팔트 위로 쓸기면서 박살이 났다. 당시 2주전부터 아이폰 스피커가 고장이 났는지 전화 수발신이 되지 않아 애를 먹었고 간신히 이어폰으로 해결하고 있던 터였다. 이러다 조만간 바꾸긴 해야겠어.생각하며 지냈었는데 그날 밤 꽈당 이후 그래, 바꾸라는 신호인가보다. 어차피 바꿔야할 운명이었다며. 애써 괜찮아했다.


오른쪽 손바닥은 피가 났고 까졌다. 무릎팍 역시 쓸기고 피가 났는데 몸을 일으킨 동시에 처절히 망가진 아이폰을 보고 있자니 무엇보다 사진첩이 걱정됐다. 내 인생 전부라고 할 만큼의 방대한 양의 사진이 저장돼 있는데 혹시라도 복구가 안되면 어떡하지. 조마조마한 마음을 애써 잠재워가며 잠을 청했다. 다음날 다행히는 복구 가능했고 사진만 옮기고 그렇게 4년 넘게 쓴 아이폰과는 이별을 고했다.


사진은 누구에게나 그렇듯 내게도 너무 소중한 것이어서 사진을 다 잃어버릴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내 지난 삶의 증거 자체가 사라지는, 잠금이 된 듯한 기분에, 나의 모든 시절과 추억, 나아가 내 인생 전체를 통째로 도둑맞은 듯한 기분이 들었다. 기억하고 싶은 사람들과 장소들을 나중엔 기억하지 못하게 될까. 순간 그게 두려웠고 서러웠다. 사진은 내가 담긴,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담긴 하나의 우주.라는 생각까지 하게 될 만큼 내 삶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존재다.


언니와 커피 한 잔을 하다 문득 언니 왈, "네가 찍어준 아이들 사진은 무언가 다른 거 있지. 인물 사진도 피사체도 네가 찍은 사진은 무언가 느낌이 다르더라고. 안 그래도 형부가 처제가 사진을 잘 찍어. 우리와는 시선이 다른 것 같아."라고 말했다고 했다. 생각해보니 가끔 내가 무심하게 툭 찍은 사진들을 들여다보면 어느 책의 표지로 써도 손색없을 만큼 액자에 들어가 있을 법한 사진들이 꽤 있다.


사진을 의식적으로 찍거나 더욱이 취미로 찍는 것은 아니지만, 내가 카메라를 무심코 들때는 확실히 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 내가 애정하는 물건들, 내가 아름답다고 느끼는 순간들, 풍경들에는 귀찮음 없이 카메라를 들이댄다. 나는 언니 말에, "그건 아마도 사랑이겠지?"라고 했다.


사진이 없어지면 내 지난 추억도 사라지는 듯한 기분을 느끼는 나인데 사진을 쉬이 생각할리 없다. 특히나 내가 사랑하는 주변 사람들을 카메라에 담는 일, 기억하는 일, 추억하는 일에 온 정성을 쏟지 않을리 없다. 무심한 듯 보이지만 그 순간은 초집중하게 될 터다. 클리셰한 이야기 같지만, 언니네 부부가 말했듯, 그 사랑과 어텐션이 곧 남다른 시선이 아닐까.싶다.


그러고보면 사진을 잘 찍는 다는 건, 타고났다거나 혹은 재능이 아닐 수도 있겠단 생각도 든다. 전문 포토그래퍼가 아닌 나같은 사람도 곧잘 인물이나 피사체를 훌륭하게 담아내곤 하는 걸 보면 결국은 또 사랑인건가. 싶지만 개인적으론 그러하다.는 생각이다.


내 사랑과 정성이 담긴 나만의 세계, 유니버스, 우주를 통째로 날릴지도 모른다는 자책감, 두려움에 난리가 났던 그날 밤이 엊그제  같은데 그 우주를 되찾자 언제 그랬냐는 듯 평온이다. 사랑의 방식 중 하나가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의 사진을 나만의 시선을 담아내는 일이라면 지금껏 그래왔듯 변함없이 꾸준히 잘 담아보도록, 그리고 그 사진첩을 무슨 수를 써서라도 잘 지켜내리라.약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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