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4시에 삼겹살을 구우면?

by Aarushi

가을이 365일 내내 였으면 좋겠다. 밤공기가 선선해졌다. 더위를 잘 타지 않는 나로선 비가 온 뒤 갑자기 선선해진 밤의 온도가 살짝 추웠다. 아침 저녁으로 공기가 확실히 선선해졌다. 가을이 완연하다. 가을 특유의 공기와 냄새는 참 다정하다. 새벽녘 블라인드를 걷히곤 창문을 열어 창밖을 내다봤는데, 찬바람이 훅 들어왔다. 꺄악. 이러다 확 추워지겠는 걸? 추운 겨울이 확 오겠는 걸? 올 겨울은 얼마나 추울까?...


새벽 4시에 삼겹살을 구우면? 어쩌자고 지난 새벽, 4시에 벌떡 일어나 삼겹살을 구웠을까? 유난히 배고픔이 몰려왔다. 도무지 잠이 올 것 같지 않아 부엌으로 가 삼겹살을 구웠던 것. 잠이 오지 않는다고 덥석 삼겹살을 구울 일은 굉장히 드문 일인데 무튼 야물게 찹찹 노릇하게 바삭하게 구웠다. 모두가 잠든 시각, 새벽이면 고요한 우주에 덩그러니 둥둥 떠 있는 기분인데, 딱 그 기분을 벗삼아 상을 차렸다.


구우면서, "웬일이니? 이 새벽에 삼겹살을 굽다니? 진짜 배고픔일까? 마음의 허기가 아닐까? 내 마음이 헛헛해서 일까?" 이왕 이렇게 된 거, 맛있게 먹고 억지로 잠을 청하지 말자.고 생각했다. 이런 날도 있는 거지 뭐.


4시쯤 부엌 앞에 섰으니, 요리하고 차려 먹고 빈둥빈둥하다보면 금세 5시겠는 걸? 청양고추 꼭지를 뗐다. 삼겹살을 먹을 땐 무조건 청양고추가 있어야 한다. 꼭지를 떼어 씻어 놓은 것만 10개 됐으려나? 이왕 먹는 거 아주 맛있게 먹어야 한다. 새벽4시에 삼겹살을 구워 먹는 건, 실은 유별난 일이 아니다. 금세 5시라 주문을 걸고 1시간 차인데 뭘... 이거슨 아침이닷!.하며 맛있게 먹었다. 깻잎 쌈에 나름 근사한 삼겹살 파티를 했다.


어릴적부터 삼겹살에 박힌 오돌뼈를 참 좋아했다. 삼겹살 두께도 두툼한 걸 좋아했다. 다 같은 삼겹이어도 두께, 맛... 확실히 차이가 있다.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 뭐에요?라고 물으면 빠지지 않는 것이 삼겹살일 정도...


어쩌다보니 삼겹살 예찬이 되어버린 것 같지만,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향유하는 일. 음식도 절대 빠질 수 없는 것이다. 광화문 직장인 시절, 서소문로 뒷골목에 있는 감자탕집 삼겹살이 그리운 건 왜 일까. 그 시절이, 그 시절 추억이 그리운 거겠지?... 퇴근 후 삼겹살과 소주 한 잔으로 그 시절 애환을 달랬던 기억. 지금은 그저 기억으로만 남았을 뿐. 실체로 존재하지 않게 되었다.


자꾸 추억추억. 그 시절 하다보니 확실히 나이 들어가고 있나보다. 곧 마흔인데, 지난 10년이 어떨 땐 허탈하달까.하는 아쉬움과 안타까움이 있다. 잔잔하게 곧잘 틀어놓는 게 일본 애니메이션인데 도라에몽, 아따맘마, 추억은 방울방울... 나는 무엇을 붙잡고 싶은 걸까?


새벽녘, 아직은 깊은 밤, 혼자 삼겹살에 쌈싸면서, 오물오물 먹으면서 나는 그토록 추억은 방울방울했다. 지금은 분당에 살고 있는 친한 동기 언니 생각이 났다. 지금은 쌍둥이 딸 엄마가 된 은정언니가 보고 싶어졌다. 조만간 언니를 보러 가야지... 젊고 아름다웠던 나이 때. 함께 울고 웃었던 사람들과의 만남은 언제나 추억은 방울방울한다.


삼겹살을 구워먹다, 스무살. 이십대의 내가. 이토록 선명하게 다가올 줄이야. 직장인 시절, 점심이면 줄을 서서 먹어야 했던 감자탕집, 그 집의 삼겹살... 참 소박했던 아름다웠던 밝았던, 에너지 넘쳤던 그 시절의 나는 어디로 갔을까? 대학생 때부터 다녔던 광화문의 순대국밥집을 직장인이 돼서도 여전히 찾았던, 그 감성과 환경이 너무도 뿌듯했던... 많은 추억들이 스쳐지나간다. 최근에 친구와 그곳에서 점심을 하면서도 평일 점심, 직장인들 사이에 덩그러니 있는 나.자신을 보았다. 그땐 그랬지... 친구와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한 그릇을 뚝딱 비우고 나왔다.


광화문은 내 추억은 방울방울의 주 무대다. 순대국밥과 소주 한 잔, 전과 막걸리, 삼겹살과 소주, 청계천을 따라 늘어선 호프집에서의 치맥... 그 시절에도 소박하고 허름한 노포를 좋아했다. 북적북적함이 내겐 곧 사람사는 냄새였고 타고난 내 취향과 정서에 꼭 알맞는 것이었다. 대학시절까지만 해도 피맛골이 있었는데, 어느 순간 사라지고 직장인이 돼서는 라미에르 건물 사이사이로 들어선 식당을 찾게 됐다.


대학생 때 7천원이었던가. 기억이 가물가물한데, 지금 생각해보면 대학생 땐 정말 뭐가 없었는데, 꿈이 있었기에. 열정이 있었기에. 참 무엇하나 두렵고 불안한 게 없던 시절이었다. 그때의 나는 어디로 갔을까? 그땐 사소한 실패, 그 어느 것 하나라도 훅훅 털고 오뚝이처럼 금세 일어나길 참 잘했는데, 무엇이 다른 걸까?... 스스로에게 질문을 건네 본다.


나이... 나이 들어가며 좋은 점도 참 많다. 누구에게나 마찬가지 일 것이다.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결국 지나간 시절로 그 시절로 다시는. 절대. 결코. 돌아갈 수 없다는 걸 깨닫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금세 정신을 차리고야 만다. 기억 속의 스토리텔링일 뿐. 그러니 주는 메시지는 명확하다. 지금 이 순간을 살 것. 지금 이 순간도 곧장 기억이 될테니.


새벽 4시에 삼겹살을 구운 건, 생뚱맞게도 추억은 방울방울.을 소환했다. 필연이 아니었을까? 그 시절의 나를 돌아보라고. 그 시절의 아름다웠던, 소박했던, 다정했던, 호기로웠던 나.를 회복하라고 보낸 선물이 아니었을까?


새벽 4시에 삼겹살을 구운 건, 분명 이유가 다 있었겠다. 삶은, 세상은, 이 우주는 늘 이런 방식으로 날 보살핀다. 조만간 광화문 순대국밥집을 다시 찾아야지. 그곳에서 지난 시절의 나.를 소환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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