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것과 삶의 목적은 분명 다른 것이다. 장자의 도행지이성. 길은 걸어서 비로소 만들어진다.는 말을 참 좋아하는데, 꼭 이 계절만 되면, 가을이면 나는 꼭 일년에 한 번은 이런 방식으로 계절을 탄다. 고뇌한다. 혼란스러워 한다. 무언가 선택을 해야 할, 결정을 내려할 시기를 맞이한다.
왜 가을일까. 왜 꼭 여름 끝자락과 가을 초 사이. 달로 치자면, 8월 말에서 9, 10월께까지 이 사이에 꼭 한 번은 방황한다. 길을 잃고 헤맨다. 무작정 걷기만 한다고 생각만 한다고 답이 절대로 찾아지지 않는단 걸 잘 알게 된 나는, 어찌할 바를 모르겠는 상황을 강펀치를 맞아대듯 그렇게 완전히 내버려두기도 한다. 이전엔 늘 피하고 싶고 아파하고 우울해하고 힘들어만 했는데, 이젠 내가 맞닥뜨린 상황과 감정을 그대로 바라볼 줄 알게 되었다. 그대로 수용하게 될 줄 알게 되었다.
왜 그럴까?를 곰곰히 생각해보면 실은 다 내가 만든 것이겠다. 모든 문제는 다 나로부터 시작되는 것이다. 그러니 변명할 할수도 없다.
엊그제 산책하다 고양이 2마리를 만났다. 모두가 검은 고양이었다. 가까이 다가가지 않고 저 만치 멀찍이 방긋 웃으며 바라보기만 했는데, 녀석들이 모두 나를 빤히 바라봐주고 있었다. 눈맞춤을 하다 이내, 너와 내가 다르지 않구나. 말하지 않아도 서로가 무언가를 말하고 있지 않았을까? 소름돋을 만큼 어느 순간 직관적인 느낌이 들 때가 있다.
내가 발걸음을 옮기자 검은 고양이가 고개만 고대로 돌려 나를 끝까지 쳐다보았다. 나를 놓치지 않고 끝까지 바라봐주는 고양이가 이토록 스윗할수가, 다정할 수가 없었다. 돌아서며 든 생각은, 너와의 만남도 분명 우연이 아닐거야. 오늘의 인연이야. 잘 지내렴!.
부쩍 동식물을 자주 만나게 된다. 자연을 일부러 찾는 것도 있지만, 길을 걷다가도 작은 나비서부터 호랑나비까지 마치 날 따라다니듯 내 주위를 윙윙 맴돌때가 많고 왕개미부터 작은 벌레들까지 내 옷깃이나 손등에 어느 순간 나타날 때가 있다. 어디서부터 왔는지 모르겠는, 무튼 친근한 만남이다. 너와 내가 하난데, 무엇이 이상할까. 무엇이 생경할까. 생경할 거 하나 없는 지극히 자연스런 만남이다.
내가 매일 걷는 공원 산책로엔 뱀 출몰 위험. 조심.이라는 팻말이 있다. 도심에 있는 공원인데도 그렇다. 실은 아무리 익숙해지지 못하는 게, 뱀이다. 내겐 어릴적부터 징그러운 이미지에 어떻게서든 마주하고 싶지 않은 것 중 하나이기도 했다. 모든 것은 하나인데 여기에서만큼은 모순적인 내가 되기 십상이다.
공원 산책길 트랙을 돌며 지금 껏 단 한 번도 뱀을 보지 않았던 터라 전혀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며칠 전 비오는 날 산책에서 끄억. 씩씩하게 빠른 걸음으로 걷고 있는 내 눈 앞에 작은 실뱀이 도망가듯 사사삭 지나갔다. 순간 화들짝 놀랐고 온 몸에 닭살이 돋았다. 끄억. 소리가 절로 나온 건 너무도 당연했다. 재빠르게 몇 미터를 초스피드로 냅다 뛰었다. 그러곤 잠시 멈추고 진정했다.
그렇게 진정한 뒤, 다시 걷기 시작했다. 그러곤 곧장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갑작스레 볼 줄이야. 그동안 한 번도 보지 못했는데 오늘 보다니? 그것도 이렇게 비가 오는날. 재빠르게 도망가듯 사사삭 가는 것이 분명 자기 길을 가는 것이었을텐데. 지극히 자연스런 움직임이었을텐데. 나는 어쩌자고 두려워했을까? 무언가에 갇혀 있었을까? 난생 처음 마주했는데 그동안 왜 징그럽다고만 생각했을까? 다 같은 생물인데... 어랏. 그런데 처음 그것도 몇 초새 순식간에 마주하고 나니 이젠 전혀 두렵지 않은 건 무엇. 아무렇지 않은 건 무엇. 결국 다 내 안에서 만들어낸 것이었구나. 그 어떤 것도 잘못이 없다. 그 어떤 것도 문제가 없다..."
일상의 그 어느 것 하나 내게 깨달음을, 지혜를 주지 않는 것이 없다. 아주 작고 사소한 것에서부터 아주 작고 사소한 시련에서부터, 슬픔에서부터, 상처에서부터, 우울에서부터, 실패에서부터도 끊임없이 무언가를 발견하게 된다. 무언가를 배우게 된다.
그 배움이 내 삶의 풍요가 되어 날 밝힌다. 이 세상을 살아가게 하는 에너지가 되어준다. 아름다운 사람이 된다는 건, 내겐 다정한 사람이 되는 것이고 친절한 사람이 되는 것이고 자기 삶을 사는 사람이 되는 것이고 마음의 여유가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고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이 되는 것이고 자신과 타인을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내면의 확장이 외면으로 뿜어져 나오는 것. 진짜는 많은 말이 필요없듯. 직접적으로 나는 아름다운 사람이에요.라고 말하는 방식이 아닌 절로 드러나는 것. 분위기 있는 사람으로 나이 들어가고 싶은 바람이 있다.
살랑이는 가을 바람에 내 마음도 이토록 쉽고 가볍게 스러지고야 만다. 이런 가을바람이라면야 얼마든지 스러지고 스러질테다. 길어야 몇 주 남짓 되는 가을 앞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온전히 이 가을에 젖어드는 일이다. 후회없이 만끽하는 일이다.
"어떻게 살 것인가? 어떻게 살다 가고 싶은가? 네가 진짜 원하는 건 무엇인가?" 이 계절을 벗삼아 나는 또 다시 내게 알맞는 선택을 하게 되겠지? 그러다 넘어지기도, 오뚝이처럼 또 다시 일어서기를 반복하겠지. 그게 인생이고 이 또한 받아들임이고 한 번 뿐인 내 삶에 대한 고결한 태도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