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 카페에서 사색의 춤을

by Aarushi

꿀잠 잤다. 아침에 일어나니 정말이지 새로 태어난 기분. 황금처럼 빛나는 숙면을 취했을 때의 선물. 이 경험은 살아가는데 가장 중요한 원천이 된다. 어제 요리조리 걷고 또 걷고 가을바람에 머리를 휘날리며 씩씩하게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더니 3만보가 넘었다. 점심, 저녁, 커피도 평소보다 많이 먹고 마시고 했는데도 집에 오니 허기가 졌다. 허기짐을 느끼는 것도 잠시 잠에 취해 곯아 떨어지니, 눈 떠보니 아침이다.


집 코 앞에 스타벅스가 있다는 건 그리 치명적이지 않다. 버스 정류장으로 가는 길, 아침 일찍 지나간 스타벅스를 보며, 이렇게 앞에 있는데 난 갈 일이 없네.하며 터벅터벅 걸었다.


카페들이 워낙 많으니 내 취향의 카페에 가면 된다. 커피 한 잔으로 얼마든지 색다른 시간, 순간, 하루를 보낼 수 있다. 어젠 약속마다 카페에 갔던 터라 게다가 어쩌다 보니 내 추천으로 가게 된(자주 가는 광화문 카페)곳에서 꿀이 들어간 달달한 광화문 라떼.를 점심, 저녁으로 2번 마시게 됐다.


점심 약속 후 때마침 혼자 있게 된 시간이 생겼고 친구를 보내곤 곧장 그곳으로 다시 왔다. 혼자 경동시장에 좀 갔다 와야지.생각하고 있었는데 저녁 약속까지 시간이 어중간해서 오랜만에 이곳에서 창밖을 바라보며 사색하는 시간을 갖기로 했다. 이어폰도 끄고, 책도 덮고, 어떤 메모지도 없이, 테이블 위엔 그냥 추가로 한 잔 시킨 커피와 네모난 티슈 2장, 트레이. 이렇게만 두었다.


가을 햇살이 이토록 눈부셨기에, 통창 바로 앞에 앉지 않았고 내가 좋아하는 자리가 운좋게도 남아 있어 후다닥 달려가 자리를 잡았다. 창밖에서 가까우면서도 커피 머신들도 있고 책상도 있고 인테리어 같으면서도 스태프들의 휴식공간 같기도, 작업공간인 것 같기도 했던(그곳도 통창으로 훤히 보였다)그 공간 창에 등을 살짝 기대어 광화문 빌딩과 지나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한참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나중에 핸드폰 시간을 들여다보니 한 시간이 훌쩍 넘어있었다.


자꾸 그 시절 그 시절, 추억은 방울방울하면 나이 든거라는데, 나도 모르게 자꾸 그렇게 되는 걸 어떡하나. 나이 들어가는 것도, 나이 든 것도 너무도 분명한 사실인 것을. 그러는 사이, 내 시선이 한 곳에 머물렀다. 창밖 너머 인테리어로 둔 조금 큰 키의 나무가 통창 너머로 가을 바람에 춤추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와우 오랜만에 느끼는 감성이다. 이 감성 너무 그리웠어. 무엇을 놓치고 있었던 걸까? 다 소용없는 걸 알면서도. 다 부질 없는 일인 걸 알면서도. 정말 네가 원하는 삶을 살고 있는 거야? 왜 움직이지 못하는 거야? 이사도 해야하고? 용기내면 되잖아?..."


그 나무의 춤바람은 나의 사색에 기꺼이 동력이 되어주겠다는 듯이 더욱 격렬하게 춤을 추었다. 카페 안의 공기, 숨소리, 사람들의 목소리는 이토록 다정하고 산뜻하고 따뜻하고 아름다워보이기까지 했다. 지금 이 순간 내 마음이 다정해서겠지. 산뜻하고 따뜻해져서겠지. 아름다워서겠지... 내 마음이 아름다워야 이 세상이 아름다워보이는 마법. 오랜만에 갖은 이곳에서의 혼자만의 시간이 정말이지 감사했다.


어느 순간,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는 마치 우주공간에 덩그러니 혼자 유영하고 있는 무음의 상태.가 된 것 같은 착각이 인다. 그걸 알아차리는 순간, 아. 잘하고 있구나. 지금 기분 괜찮아? 그러곤 스스로를 다독인다.


카페 안으로 오고 가는 사람들, 내 앞 옆을 지나가는 사람들, 창밖너머 바삐 지나가는 사람들의 모습에서 나를 보았다. "참, 나도 한 때 저런 모습이 있었는데... " 십 년이 지나도 내 약속장소는 늘 광화문 일대다. 좀처럼 변하지 않는 것 중 하나다. 익숙해서겠지. 아름다워서겠지. 아름답고 소박했던 지난 추억을 만나고 싶어서겠지. 오면 기분좋아서겠지. 설레서겠지. 광화문 사랑은 이토록 변함없다.


다시 에너지를 북돋고 싶어 광화문에서 하루 종일 약속을 잡았던 날이었다. 지난 시절 매일 출퇴근하던 그곳이 매일 찾는 곳이 아니게 된, 그래서 더욱 애뜻할 수도. 이 광화문을 더욱 낭만적이게 할지도 모른다.


오후 4시가 넘어서니 스태프들이 블라인드를 내리고 조명을 켜가며 카페 안의 명도와 채도를 아주 알맞게 맞춘다. 너무도 취향 저격의 명도와 채도의 선율이어서. 역시. 오늘 여기 오길 잘했어. 꽤나 만족스러워했다.


사색하고 있는, 멍하니 바라보고 있는 나를 알아차릴 때, 이토록 나다울 수가 없다며 혼자 미소짓고 만다.


어제 오후 사색의 여운이 오늘 오후까지. 여전히 선명하다. 너무도 잘 한 일이었다. 무언가를 다시 시작할, 움직일, 도전할, 용기낼 그 계기들은 실은 이토록 소소하고 사소하고 소박한 것들일 때가 대부분이다. 나의 삶의 방식은 늘 거창하지 않고 이토록 사소하고 소소하고 소박한 것에서 시작한다.


어제 오후 두 시간 남짓 맞이한 혼자만의 시간. 사색의 순간. 사색의 여정. 내 일상에 촉촉히 스며들어 불안하게 하지 않았다. 두려워하지 않게 했다. 우울해하지 않게 했다. 슬프지 않게 했다.


용기내게 했고 설레게 했고 기분좋아지게 했다. 사색의 춤바람은 어떻게서든 날 살린다. 땅바닥을 딛고 일어서게 한다.


이러니 내 사색을 그리고 광화문을 사랑하지 않을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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