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로3가에서 저녁 약속이 있었다. 광화문역에서 종로3가까지 걸어가는 내내 연신, "어머머, 어맛. 이게 정말 얼마만이니? 꺄악 추억돋잖아!! 그게 언제적이야 정말...^^" 내 안의 스무살의 초아가 불쑥불쑥 튀어올라 야단법석이다.
광화문 뒷골목을 따라 걷다 인사동으로 빠졌다. 그 길로 인사동 길에 들어서곤 어느 골목으로 쭉 걷다보면 낙원 상가가 나온다. 그러면서 지금은 없어진 피맛골도 생각났다. 친구와는 종로3가역 7번출구에서 만나기로 했다. 약속 시간 30분 전에 미리 도착해 좀 더 그 감성에 젖고 싶었다. 어릴 때 왔던, 그 골목은 그대로일까? 많이 변했을까? 설렘반 기대반 연신 꺄악.꺄악.하며 낙원 상가 방향으로 향했다. 그러다 낙원 상가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즉흥적으로 낙원상가 구경이 하고 싶어졌다. 예전에 한 번 들어왔던 적이 있나. 무튼 어느새 낙원 상가 지하로 발걸음이 향했다. 마침 한 할머니께서 지팡이를 짚고 계단을 내려가고 계셨다. 할머니는, 방긋 웃으시며 "젊은 처자가 여긴 웬일이래?"하셨다. "이 동네 너무 오랜만에 왔어요. 한 바퀴 둘러보고 가고 싶어서요."
할머니는 내 대답이 끝나기도 전에, "지금은 여기 별 게 없어. 뭐 파는데가 있긴 한데 옛날에 비하면 아무 것도 없어. 내려가도 뭐가 없을거야 근데 한 번 쓰윽 둘러봐" 아주 천천히 느린걸음으로 조심스레 내려가시는 할머니의 걸음걸이에 맞춰 그렇게 천천히 계단을 함께 내려가고 있었다.
재래시장, 전통시장 바이브를 참 좋아하는, 설레하는 나로선 아무렴 상관 없었다. 쓰윽 둘러보고 오면 될 일. 그렇게 지하 상가로 들어섰는데 몇몇 분들이 김치전을 안주 삼아 소주와 막걸리를 잡숫고 계셨다. 기름 짠 냄새, 방앗간 냄새, 음식 냄새 등이 뒤섞인 바이브. 지하 상가만의 그 특유한 바이브. 향이 있다. 이 또한 낭만 아니던가. 사람 사는 냄새. 맛 아니던가. 아주 짤막했던 한 바퀴. 낭만있었다.
낙원 상가에서 나와 횡단보도를 건너 종로3가에 다다랐다. 건너자마자 딱 마주한 곳. 아구찜 골목!. 꺄악. 나는 속으로 소리지르지 않을 수 없었는데. 어릴 때, 대학교 1학년이었던가. 2학년이었던가. 함께 스터디했던 언니 오빠들과 왔던 기억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모두가 꿈많은 청년들이었는데. 그 시절 저마다의 꿈을 향해 달리던 그 청춘이, 그 낭만이 그리워졌다. 꺄악. 여기네!. 어맛 그대로네! 여기서 먹었는데. 아구찜이랑 맥주, 소주 먹었더랬지?... 하나도 안 변했나봐. 나만 나이 든 건가. 여긴 그 감성, 바이브 그대로야..."
정말이지 미소가 실실 새어나왔다. 설렘이었고 아름답고 즐거웠던 기억이 준 선물이었고 미소였다. 찐 행복해했는데, "그래, 행복이란 게 뭐 별 거 있을까? 사랑하는 사람 그리고 맛있는 음식, 소주와 맥주, 막걸리... 이런 것들만 있어도 충분한 걸..."
어렸을 땐, 좀 더 젊었던 땐 고깃집에서 고기를 구워가며 소주, 맥주, 막걸리 한 잔 기울이며 데이트하던 그 바이브, 감성... 누구에게나 그랬던 시절이 있지 않나. 서울 곳곳은 내 지난 시절, 소박하고 찬란하고 아름다웠던 내 젊은 시절의 발자국이 서려있는 곳이다.
너무도 자연스레 글을 써내려가는 이 와중에도 눈물이 글썽일만큼 추억은 방울방울하는 건 무엇. 정말이지 나란 사람. 나란 여자. 이토록 감성적일 수가 없다면서... 방긋.한다.
그 시절로 돌아간다면 어떨까?
그 시절이 이토록 그리운 걸 보면 아쉬운 것도 많은 거겠지?
그 시절로 돌아간다 한들 무엇이 달라질까?
결코 그럴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묻게 된다.
아쉬움이 있기에 그 시절이 지금 이 시점에 이토록 낭만적이고 아름다운 것이다.
평일 이 시간, 정말이지 놀랄만큼 사람들로 북적였다. 사람들로 도로가 바글바글했다. 이토록 서울다웠달까. 그곳엔 젊음도 나이듦도 구분 없는 것이었다. 경계없는 것이었다.
고기 굽는 냄새, 연기, 소리... 지극히 서민적인게 나이기도 하고. 마치 내 정체성인 듯. 꼭 그런 감성에 취하고 젖고 설레고 낭만있고 아름답기까지 하다.
친구와 걸으면서 이야기했다. "난 정말이지 그렇게 고급스런 사람이 아니라서, 고급지지 않아서. 근데 난 정말 이런 것들이 좋아. 행복해져. 이런 것들 하나하나가 그냥 삶 자체인거 같아서. 나같아서..."
모락모락 고기굽는 연기에, 그 분위기에 취하고 또 술 한 잔 기울이며 사랑하는 사람들과 나누는 말 한마디 한마디는 가히 철학적이기까지 하다.
특히나 연애할 때 이런 분위기에 있으면 내 앞에 마주한 연인이 그날 따라 유난히 멋있어보이고 아름다워보이는 마법에 걸리지 않나. 분위기란, 감성이란, 바이브란 이토록 치명적인 것이다. 사람들을 서로 사랑하게 한다.
광화문에서 인사동으로 인사동에서 낙원상가로 낙원상가에서 종로3가로 이어진 나의 걸음이 더 큰 선물이 되어 내게로 왔다. 산다는 거, 정말이지 사랑이 전부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