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다보면 말로 조근조근 상대방을 깎아 내리는 무례한 사람들을 종종 만나게 된다. 나이 들어가며 좋은 점은 사람을 볼 때 이젠 어느 정도 느낌이 온다는 점이다. 확률적으로 예상이, 예감이, 직감이 잘 들어맞는다. 직감을 따르는 편이다. 사람이든 무엇이든 무언가 쎄하다.싶으면 안하는 것이 맞다.
얼마 전 무례한 사람을 봤다. 순간의 기분 나쁨은 어쩔 수 없이 피어오르는 감정이고 그 어떤 것도, 그 누구도, 그 무엇도, 나를 무너뜨리거나 내 자존감을 상처 입힐수 없다. 무례함에 상처받지 않은 이유는 너무도 간단하다. 명료하다. 내가 진짜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내가 나를 그렇게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내가 일도 흔들림이 없다는 걸 상대는 모르는 듯했다. 짧은 시간 내 자리를 나왔고 어차피 다시 볼 일 없기 때문에 인상을 찌푸리거나 어떤 말로 대응할 필요가 없었다. 내 에너지를 그곳에 낭비하는 일, 내겐 굉장히 소모적이고 의미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나보다 나이도 한참은 많은 여자분이었는데 말하는 기저에 부자와 부자가 아닌 사람, 고급스러워 보이는 사람과 촌스러운 사람을 구분하는 것이 선명하게 느껴졌다. 딱 듣자마자 아뿔사. 어서 자리를 일어나야 겠군.싶었다. 무례한 사람을 어쩌다가라도 만나게 되면, 두 가지를 생각한다. 현재 내 기운이 과연 안녕한지. 괜찮은 건지. 이런 사람을 통해 또 어떤 방식으로 내게 교훈을 주려는 걸까. 깨달음을 주려는 건가.한다. 어느 경우든 괜찮다. 현재 내 기운을 다시 한 번 알아차리는 계기가 되어준다.
무례한 언행은 기운을 오염시킨다. 어쩌다가라도 무례한 사람을 만나게 되면, 무례한 사람이 실은 나약한 사람일지도 모른다는 것, 실은 나약한 사람이라는 것, 단단하지 못한 사람이라는 것, 인정 중독에 빠진 사람이라는 것, 무례함이란 곧 자신의 나약함을 드러내는 것.이라고 생각하게 됐다.
타인에게 무례한 사람은 자기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 자기 자신을 존중할 줄 모르는 사람이다. 이렇게 어쩌다가라도 무례한 사람을 만나면, 외려 안타깝게 생각된다. 옷이, 스타일이 촌스럽다는 기준이 어디에 있단 말인가? 왜 남에게 있어 보여야 하지? 부티나 보여야하지? 타인을 왜 판단하려 드는 걸까?
그러니 일도 타격받지 않을 수밖에. 누가 뭐라해도 내가 그렇지 않으면 화나지 않는다. 내가 인정하지 않으면 그 어떤 것도 날 무너뜨릴 수 없는 것이다.
무례한 사람은 전혀 매력적이지 않다. 내가 생각하는 진짜 고급스런 사람은 무례하지 않은 사람, 친절한 사람, 존중할 줄 아는 사람,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 교양있는 사람, 지적인 사람이다. 진짜 고급스러움, 아우라는 어느 동네, 어느 아파트, 자산이 얼마.로 드러나는 것이 아니다. 그 사람의 됨됨이가 절로 드러나는 것이다.
며칠 전 무례함을 경험한 건 이 또한 다 이유가 있겠지. 이젠 그 어떤 것에도, 웬만한 것엔 타격받지 않게 되었다는 걸 확인 시켜주기 위함이 아니었을까? 현재 내 기운이 좋은 상태인지 나빠지고 있는지 알아차리기 위함이었을까? 경계하라는 메시지가 아니었을까? 나이들어도 정말 마음이 아름다운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걸 새삼 느끼게 했다.
무례함을 겪고 난 뒤 그날 오후, 카페에서 만난 친구 왈, "오늘 왜 이렇게 예뻐? 옷도 너무 잘 어울린다!!" 그날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로 평소처럼 입었고 친구도 칭찬할 만큼 나다웠다. 옷에 있어 무엇이 촌스러운 것이고 무엇이 고급스러운 것일까? 다 자기만의 개성으로, 스타일로, 취향으로 입는 것이고 사는 것인데, 누가 누굴 평가한다는 말인가? 내게 촌스러움과 고급스러움은 하나다. 촌스러움은 내게 결코 고급스러움보다 하위에 있지 않다.
무례함에 단호한 나 자신에게, 흔들리지 않은 나 자신에게, 일도 타격받지 않은 나 자신에게, 화나지 않은 나 자신에게 궁딩이 팡팡! 타인을 의식하는 삶, 애써 부자처럼 보이거나 고급스러워 보이려는 삶은 애초에 내게 맞지 않는 것이다. 척하는 것. 내겐 맞지 않는 것이다.
죽을 때까지 내가 되는 꿈을 꾸며 살기. 자기 자신이 되어 살아가기. 나는 이런 것들에 관심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