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의 기쁨

by Aarushi

아이팟을 사용해 본적이 없다. 별 다른 이유는 없고 유선 이어폰을 늘 써왔기 때문이다. 아이팟이 처음 나왔을 때도, 핫했을 때도 길게 늘어진 유선 이어폰을 썼다. 유행이나 최신의 것.에 무딘, 무심한, 무던한 성미가 살다보니 자유로운 부분이 있다. 유행없이 살기도 하고 남들과는 반대로 가는 성미가 있다.


지지직. 며칠 전 유선 이어폰이 지지직 하더니, 어느 순간 한쪽만 들렸다. 새로 사야하던 차에, 마침 고터에 약속이 있었던 터라 그곳 아트박스에 들렀다. 8핀 아이폰 이어폰이 있었다. 아이폰 정품도 있고 아닌 것 2종류가 더 있었다. 아이폰 정품과 나머지 것들과의 가격차는 이만 원 정도.


실은 걷거나 운동할 때 휘뚜루마뚜루 끼고 빼고 하는 거라, 이어폰에 크게 감흥이 없달까. 노랫소리가 나오면 되고 음질도 크게 개의치 않는다. 그런 쪽엔 유난히도 예민한 부분이 없다. 11,900원짜리 이어폰을 구매했다. 귓구멍에 들어가는 이어폰 디자인도 고무가 들어있는 게 편리하다. 가격이나 디자인 측면에서 모두 날 만족시킨건 정품이 아니라 만원 짜리 이어폰이었다.


정품이건 아니건 내겐 중요한 것이 아니다. 흰색 이어폰이 지저분해질까, 색이 바랠까 아끼고 애지중지 사용하는 편이 아니라 부담없는 가격에 사는 걸 선호한다. 생활 전반에서 보면, 물건 살 때 보면 가급적 혹은 웬만하면 가격적으로도 알뜰한 것이 만족감을 준다.


고터에서 9호선을 탔다. 여의도역에서 내려 환승해 광화문역에서 내릴 것이었다. 한산한 시간에 지하철 타는 걸 참 좋아하는데 지하철 빈 좌석에 앉아 지하철에 오르내리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는 것도, 지하철 그 특유의 소리, 바이브가 좋고, 생명력이 느껴진달까. 숨쉬는 것 같달까. 살아있는 것 같달까. 비비드한 기운이 내게로 스며든다. 지하철은 뚜벅이인 내게 아주 유용한 교통수단이다. 한산한 지하철에 타고 있으면, 이것이 내 전용차가 아니고 무엇일까.한다.


지하철은 사색하기 최적의 장소다. 멍때리기도 좋다. 한 생각 절로 일으켜질 때가 있고 생각이 걷힐 때도 있다. 자리에 앉아 앞 사람, 옆 사람, 서 있는 사람, 오르고 내리는 사람들의 모습에서 삶을 알아차린다. 인생을 배운다.


동지애가 느껴진달까. "이 사람도, 저 사람도, 이들도 어린아이 어른 할 것 없이 다들 저마다 기쁨이 있고 슬픔도 있고 우울도 있고 상처도 있고 아픔도 있고 걱정도 있고 불안도 있고... 모두들 그렇게 자기만의 삶을 살아가고 있겠지? 모두가 때론 힘겨움에 울기도 삶의 기쁨과 환희에 웃기도 미소짓기도 하겠지? 그래서 더욱 서로가 서로에게 친절해야 한다. 따뜻해야 한다..."


지하철은 자연이 꼭 내게 그러하듯. 말이 없다. 다만, 내 스스로 생각하게 한다. 질문하게 한다. 인생, 삶을 절로 떠올리게 한다. 사람들을 사랑하게 한다.


뚜벅이여서 좋은 점이 많다. 걷기. 지하철 타기. 버스 타기.가 주인데, 걸을 때나, 지하철 탈 때나, 버스 탈 때 내 사유와 사색은 절로 시작된다. 걷기는 내 두 발이 땅바닥에 완전히 닿아 있는 상태, 붙어 있는 상태로 날 일으키고 지하철과 버스는 앉아만 있어도 느껴지는 크고 작은 몸의 움직임이 주는 반동에, 절로 사색하고 사유하게 된다. 뚜벅이가 되면 절로 움직임 명상이 된다.


지하철의 기쁨은 이토록 소소하고 사소하고 잔잔하고 평온하다. 북적대는 지하철 안이라도 달라지는 것은 없다. 그 북적북적댐 속에서도 사유와 사색은 흐트러짐이 없다.


지하철을 타면 사람사는 맛.이 난다. 사람냄새가 진득하다. 아무리 힘들고 지치고 불안과 우울이 닥쳐도 지하철에 오르는 순간, "후, 사람 사는 건 다 비슷해. 나만 힘든게 아니야.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는거야. 견뎌내는 거야. 삶은 살아지는 거야.." 그렇게 스스로를 위로하고 다독이고 사특한 생각들을 훌훌 털어낸다.


지하철 예찬은 걷기 예찬만큼이나 전적으로 유익하고 유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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