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과 밤의 사색 23

by Aarushi

#버스 안에서 월든을

가만히 멍 때리고 싶거나 조용하고 싶을 때 마음을 고요로 적시고 싶을 때 버스를 탄다.


시내 버스 최애 자리는 단연코 맨 뒤 가운데 자리. 맨 뒷좌석 라인에 아무도 없을 때 가운데 좌석이란 내겐 황금마차격이다. 집 앞 버스에서 타면 웬만해선 그 자린 내 자리가 된다. 뒷좌석은 텅 빈 채, 서른 페이지 남짓한 책을 버스 안에서 읽었다. 맨 마지막장을 덮곤 가방 속에 넣었다. 그러곤 창밖을 내다봤다.


버스 안이 붐비는 사람들의 소리로 시끄럽고 부산할 것 같지만 내 마음이 그곳에 있지 않으면 내 생각과 마음이 나.에게 집중해 있으면 희한하리만치 고요하다. 다른 소음은 일절 들리지 않는다. 내겐 이것이 명상이고 고요함이고 알아차림이다.


창밖에 비치는 햇살과 그림자, 그늘, 바람에 살랑이는 나뭇잎들... 창밖너머 세상과 버스 안의 나. 내 세상을 분리해 따로 놓고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그러면서 일상을 삶을 자연을 관찰하고 관조한다.


조금 지났을까. 문득 머릿속에 떠오르는 문장을 적으려 에코백에서 노트와 펜을 들었다. 펜을 종이에 꾹꾹 눌러 담아 쓰며 다시 한 번 알아차린다. 그 순간 나는, 마치 버스 안 월든.을 경험한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 할아버지 부럽지 않다.


버스에서 내려 목도 축일겸 요즘 푹 빠져 있는 녹차 프라푸치노를 주문했다. 들고선 조용히 옛 정취가 묻어나는 단청 아래 마루에 앉았다. 사색하기 최적의 장소였다. 살랑이는 바람이 내 뺨을 두드리고 나는 그렇게 잠시 동안 머물다 왔다.


하루에도 몇 번은 기분이 왔다 갔다.하는 요즘이다. 감정과 기분은 내가 아니다. 일시적인 것 뿐. 머물다 가는 것 뿐.이라는 생각은 늘 효과 있다. 그럴 땐, 소소하게라도 내가 좋아하는 프라프치노라든지 샌드위치라든지내가 좋아하는 음식을 테이크 아웃.하면 그 순간 선물받은 기분이 든다. 그런 방식으로 나를 돌봐주는 것 아껴주는 것. 살뜰히 챙겨주는 것. 나에 대한 사랑이자 낭만이다. 기분전환에 굉장히 효과적이다.


버스 안에서 헨리 데이비드 소로 할아버지를 만났고 나만의 월든에 머물다 왔다. 나만의 월든은 어디에나 있다. 오늘은 버스 였을 뿐 집 앞 공원도 도서관도 내 침실도 내 거실도 사방이 온통 내겐 나의 월든이 된다.


사색과 사유의 이유,

글쓰는 이유,

책을 읽는 이유,

새로운 세계와 만나는 경험이다.

질문하기 위함이다.


#질문하라

존 윌리엄스의 스토너.마지막 장을 덮는 순간 잔잔한 여운과 감동이 밀려왔다. 아주 잔잔한 그 무엇.이 날 감쌌다.는 설명이 맞겠다.


스토너가 죽음 직전, 그 앞에서 던진 질문. "넌 무엇을 기대했나?"

스토너를 단 한 문장으로 말하라면 단연 스토너 자신이 스스로에게 건넨 이 질문일 것이다.

두꺼운 책 장 속 거의 막바지 장에 이르러서야 나오는 이 문장이 내겐 명료했고 깨끗하게 들렸다.


그러곤 스토너 그 자신의 질문을 내게로 옮겨왔다.

"넌 무엇을 기대했나?"

"너는 지금 네 인생에서 무엇을 기대하고 있나?"

이 문장을 알게 되었다는 것만으로도 이 문장을 얻게 되었다는 것만으로 엄청난 선물을 받은 기분이다. 이 문장 하나가 내게 오려고 이 책이 이토록 날 불렀나보다.


책도 인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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