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과 밤의 사색 19

by Aarushi

#왜 사는가

사람은 왜 사는가. 무엇으로 사는가.


“행운의 정자 클럽” 미국의 투자귀재 워렌버핏이 한 말이다. 대학 시절, 모 언론사 필기시험에 합격했던 글의 서두였다. 주제는 사회 양극화였고 작문을 썼다.


워렌버핏의 단어 선택은 참으로 탁월했다.


파리엔 노숙자들이 정말 많다. 한발 짝만 떼도 볼 수 있다고 해도 될 정도다. 우리가 선진국이라고 부르는 프랑스에 노숙자들이 이렇게 많다니. 프랑스보다 경제적으로 훨씬 더 가난한 나라들에서 조차도 길거리에서 이리 쉽게 노숙자들을 보지 못했다.


매일 아침 집 앞에서 마주했던 젊은 노숙인이 있었다. 그는 내가 지나갈 때마다 꼭 눈을 맞추여 봉쥬흐 마담.이라고 인사를 건넸다. 추운 겨울 아침마다 그와 마주치는 날이면 이 추운 날 이 자리에서 잔 건가. 이렇게 추운데.라는 마음이 앞섰다.


그는 단 한 번도 미소짓지 않은 날이 없었다. 그를 알게 된 후부터 빵과 비스킷을 사서 건넸다. 나라면, 내가 지금 그였다면 어땠을까. 난 그처럼 사람들에게 환하게 웃으며 미소 지을 수 있었을까. 빵 한조각이 없어 배고픔에 허덕이는데.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는 그인데 남에게 먼저 따뜻한 인사 한마디 건넬 수 있는 그 여유는 도대체 어디서 나오는 걸까. 잘은 모르지만 그 순간 내가 그보다 나은 건 하나도 없어 보였다.


이렇게 매일 자신의 삶과 정면으로 사투하는 사람들이 세상에 이렇게나 많이 존재하는데 이들보다 가진 게 많은 난, 무엇이 그리 우울하며 때로는 불행하다는 생각을 하는 건지. 그의 모습에 비추어 보니 혼란스러웠다. 부끄러운 마음마저 들었다.


그에게 삶은 생존이다. 그에게 삶은 하루살이고 사투다. 죽음에 내몰린 최악의 상황임에도 그가 구걸 한다는 것은 삶에 대한 강한 의지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무엇이 그를 살고자 하게 하는 걸까.



최소한의 삶이 보장되지 않은 삶은 비참하다. 사연은 알 수 없지만 무엇이 그를, 그들을 차가운 길바닥 위로 내몬 걸까. 내가 그들에게 느끼는 연민의 감정이 어쩌면 오만 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어떤 권리로 어떤 자격으로 그들에게 그런 감정을 갖는 단 것인가.


이 세상엔 우리가 말하는 평범함조차 없이, 평범함 조차 누리지 못하고 살아가는 우리와는 전혀 다른 삶을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행복하지 않을 거라는 것. 그들이 불행할 거라는 것. 그들에겐 희망이 없을 거라는 그 생각이 바로 오만함이구나.생각했다.


사람은 도대체 왜 사는가.

무엇으로 사는가.

어렵다.

인생 너무 그렇게 붙잡아가며 더 많이 가지려고 집착할 것도 없다는 생각이 든다.


그 시절 니체도 장자도 노자도 인간에 대해 깊이 고민했고 그 깨달음과 지혜를 남긴 걸 보면 인간이 곧 삶이고 삶이 곧 인간이라는 생각이 든다.


행운의 정자클럽.엔 선택권이 없다.

운빨이 기가 막힐 뿐.

우리는 안다.

결국 그 행운도 잠시 앉았다 갈 뿐 결국 인간의 죽음 뒤 우리 모두는 다시 평등해짐을.


#노트

손 떼 가득 묻은 빛바랜 노트들이 꽤 된다. 수첩이라 하기엔 공책 같아서 노트라고 말하는데, 2016년부터 써왔으니 몇 권이 됐다. 그렇다고 엄청 꼼꼼하게 빼곡하게 그 모든 여백을 다 쓴 건 아니지만, 내 성격에 맞게. 나라는 사람 성향에 맞게 나름 잘 사용해왔다.


노트의 용도는 내겐 하나가 아니었다. 일기장도 됐다가 잊지 말아야 할 메모지들을 듬성듬성 붙여놓기도 어떤 페이지엔 숫자들이 가득 적혀있는 걸 보니 계산기이기도 했다. 겨울이 성큼 다가오고 있자니, 책장에 꽂혀있는 지난 나의 기록들이 눈에 밟히는 게 아닌가.


정확히 세보니 4권이다. 노트색은 검정에서부터 빨간색, 흰색, 반짝이는 형광의 은색 이렇게다. 얇은 수첩은 쩨쩨해보여 잘 안 쓰는 성미에 늘 두꺼운 노트를 사용했다. 냉큼 하나를 집어들고선 소파에 앉았다. 2015년 12월 떠난 스페인 여행에서부터 쓰기 시작한 반짝이는 형광 은색 표지 노트였다.


애정 가득한 노트인데 퇴사 직후 당시 내 고민과 다짐들, 그때 당시 내가 느꼈던 감정들이 일기처럼 고스란히 적혀있다. 그 노트를 들여다보고 있으면 그 해 그 겨울로 돌아간 듯한 기분이다. 어머머, 내가 이런 생각을 했었어? 흠칫 놀라기도 여러 번이다.


말은 아주 좋았다. 므흣. 그때의 다짐들은 도대체 어디로 사라진 거니.하고 미소 짓는다.


오랜만에 천천히 페이지 한 장 한 장 마르지 않은 잉크가 묻은 종이를 넘기듯 조심스레 읽기 시작했다. 딸이 혼자 사는 집에 왔다 나 몰래 내 노트에 오만 원 권 두장을 넣어놓고 간 엄마, 내 사랑 조카가 태어난 날 내가 조카에게 쓴 편지까지. 셀 수 없이 작고 소소한 나의 일상과 삶이 역사 속 한 페이지처럼 담겼다.


이런 물건과 감성은 내게 귀하디 귀하다. 어디 금반지와 다이아몬드와 바꿀 수 있을까. 내 삶과 역사를 고스란히 기록하고 추억하는 일. 지금은 이 모든 것들이 날 살게 하는 힘이다.


내 노트 어느 페이지에 오만 원 권 두 장을 넣어놓고 간 엄마가, 어릴 적부터 엄마 품을 떠나 멀리 떨어져 산 딸리 가질 마음들에 아파하며 그 아픔을 뒤로한 채 내 집을 떠났을 엄마 생각에 눈물이 앞을 가린다.


바르셀로나의 바르셀로나타 해변가에 홀로 앉아 저 멀리 출렁이는 파도와 갈매기 떼들, 날 향해 비추는 찬란한 겨울의 햇살을 온몸으로 마주하던 그때 적었던 나의 일기도 새삼 눈물짓게 한다.


요즘 왜 이리도 내 마음은 추억을 그리기만 하면 눈물 나는지. 갱년기가 오려면 아직 시간이 꽤 남았는데 말이다.


내겐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지난 나의 시간들이 자필로 적힌 노트들을 바라보고 있자니 내년도 미리 준비할 겸 내 취향이 담긴 노트 하나 새로이 장만하고 싶어졌다.


노트를 읽다 눈물을 훔치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떠올리다 생뚱맞게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나를 사랑할 수밖에 없는 사람.이라고 결론 짓고 만다.


참 도도한 것 같으면서도 생뚱맞고 허당인 나. 이마저도 이젠 사랑스럽게 느낄만큼 여유가 생겼다. 이번에 장만할 노트는 역시나 내 마음에 쏙 드는 걸로, 노트에 만큼은 작은 사치를 부려도 좋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낮과 밤의 사색 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