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소녀는 비에게서 슬픔을 보았다
어린 소녀는 비오는 날을 유난히 반겼다.
모두가 잠든 밤, 창문을 열어 젖히곤 하늘 위를 바라본다.
2층 창가, 문턱에 양 손을 턱에 대곤 한참을 바라보다 잠이 들었다.
소녀는 무엇을 기대했던 걸까? 무엇을 바라보았을까?
까만 밤, 아래를 내려다보면 깜깜한 골목길이 내려다 보였다.
형체없이 내려오는 비는 색이 없다가도 소녀에게 가까이 다가오려는 순간 투명한 색이 되어 톡톡 건든다.
뺨에 이마에 입술에 얼굴 사방으로 튄 빗방울과의 접촉은 형형할 수 없는 상쾌함이었고 신비로움이었다.
누군가 비가 왜 좋아?라고 물으면 답했다.
"비가 꼭 내 마음까지 싹하고 씻겨져주는 거 같아."
어린 나이. 소녀는 무얼 알아서 대답한 것이 아니다.
직관적인 것이었다.
비를 좋아하는데 이유가 없다.
그냥 느낌적으로 운명적인 이끌림이다.
빗방울은 눈물이었다.
하늘이 우는 걸까? 하늘이 슬픈걸까?
내 마음이 슬플 때면 하늘이 날 위로하고 있다고 믿었다.
내가 너무 외롭지 않게, 그래서 더욱 슬프지 않게 함께 울어준다고 생각했다.
빗방울은 축복이었다.
하늘이 날 축복하는 걸까? 날 축하하는 걸까?
함께 축하해주는 거겠지?
내가 기쁠 땐, 하늘이 날 축하해주고 있다고 믿었다.
내가 기쁨을 충분히 만끽하도록, 그래서 더욱 행복한 사람이라는 생각을 할 수 있게. 세상에 감사할 수 있게.
서른 해가 흘러 어른의 나이가 된 소녀는 여전히 늦은 밤 비내리는 밤하늘을 올려다본다.
아름다운 비의 사랑 노래가 까만밤 이토록 눈부시다.
빗방울이 툭툭 얼굴에 내려앉는 촉감을 통해 살아있음을 느낀다.
살아있으니 죽어가고 죽어가니 살아있다.
비는 변함없이 날 위로한다.
두팔 벌려 날 안는다.
비의 메시지는 이토록 다정하다.
나도 비처럼 꼭 다정해야지.
꼭 그런 사람이 되어야지.
#지구별에 사는 시인
숲 속 작은 도서관을 찾았다. 숲 속에 있어서 한참을 헤맸다. 비오는 날 오르막길을 오르는 건 끄억.하는 소리가 절로 나올만 했다. 숲속 도서관 80m 표지판을 보는 순간, 꺄악. 드뎌 도착! 도서관 입구까지 굽이굽이 돌 길을 걷고 있으니 마치 영화 속 주인공이 된 듯한, 마치 숲 속의 공주가 작은 집으로 들어가는 듯한 재밌는 상상이 일었다.
우산을 잘 꽂아두고 도서관에 발을 내딛는 순간, 꺄악!!! 오길 너무 잘했다! 너무 좋으다!.라는 말이 절로 나왔다. 겉은 온화한척 차분한척 했지만 속으론 기쁨으로 가득했다. 가지런히 잘 배치된 시집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딱 알맞는 명도의 조명들, 쿠션들, 나무 책상과 의자들, 차분하고 잔잔하게 들려오는 피아노 선율, 숲 속이 시원시원하게 영화 속 스크린처럼 쫙 펼쳐진 통창 너머 풍경... 그 모든 것이 조화로웠다.
금요일 오후. 나는 어김없이 또 하나의 낭만을 내게 선물했다. 통창 너머 가까이 보이는 큰 숲 속의 나무 한 그루를 한참을 들여다보았다, 어느 순간, 이런 생각이 들었다. 실은 너와 나는 하나야. 나무 너와 나는 하나라고 너도 나고 나도 너라고. 일체감, 동질감이 들었다.
비오는 날의 숲 속 작은 도서관을 찾은 건 정말이지 탁월한 선택이었다. 잘한 일이었다. 반갑게 맞아준 사서 분이 내게 물었다. "혹시 그냥 오셨어요? 강연 때문에 오셨어요?" 나는 어떤 정보 없이 그저 검색해서 여행처럼 찾아온 것이었는데 알고보니 오후 2시에 미국 시인 루이즈 글릭의 시집을 번역한 번역가의 강연이 있었다. 루이지 글릭과의 만남은 실은 우연처럼 보이지만 인연이었겠다. 그 어떤 것도 그냥은 없다. 모든 것은 인연이다.
작년에 작고한 루이즈 글릭 시인의 시를 만난 건 행운이었다. 최초의 기억과 젊음이란 제목의 시가 날 생각하게 했고 질문하게 했다. 아름답고 차분하고 낭만적인 강연이었다. 문득 대학 시절 강의실 안의 내 모습이 오버랩됐다. 학생 시절로 돌아간 듯한 기분에 어떤 의욕이 불끈 샘솟았다. 아름다운 순간이었다.
숲 속 도서관이 워낙 아담해서 아래층이든 윗층이 구분이 없는 듯했다. 윗층에 올라 마음에 쏙 든 자리에 쿠션을 등에 기대 앉았다. 앞으로는 통창으로 너른 시야가, 오른쪽 옆으로는 통창으로 또 다른 너른 시야가 펼쳐져있었다. 이 순간 무엇이 부러울까. 무엇이 우울할까. 무엇이 불안할까. 무엇이 두려울까. 무엇이 힘들까.
숲 속을 찾은 것 역시 다소 즉흥적이었기에 치밀한 계획이 있었던 것은 아니기에, 그러나 이토록 만족스러울 수 없는 방문에 감동했고 감탄했다. 아래층의 강연은 강연대로 흐르고 있고 나는 윗층에서 시집을 읽다, 글쓰기를 하다 비오는 오후 숲 속 풍경을 바라보다를 반복하고 있다.
낭만은 정말이지 별 게 아니다. 낭만은 아주 작고 사소한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낭만이란 늘 우리 곁에 살아 숨쉬고 있다. 마치 숨을 들여마셨다 내쉬는 것처럼 너무도 자연스럽게 당연하게 생각하는 숨처럼.
자연스럽고 침착하고 차분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여유란 이런 것이다. 현재에 집중하는 것. 지금 여기. 이 순간에 집중하는 것. 창밖을 바라보고 있는 나를 알아차리는 것. 글쓰기 하고 있는 나를 알아차리는 는것. 책 읽고 있는 나를 알아차리는 것. 숲 속을 오르는 나를 알아차리는 것. 강연을 듣고 있는 나를 알아차리는 것. 명상이란 내겐 늘 이런 방식이다. 알아차리고 있는 나를 알아차리는 것. 고요는 풍요로움이다.
시집의 매력에 푹 빠져버린, 풍덩하고 완벽하게 잠겨버린 오후.
실은 어쩌면 우리 모두는 시인이 아닐까. 우리 모두는 저마다의 삶의 언어로 자기 시를 짓고 사는 영혼들이다.
우리모두는 지구별에 사는 시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