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절 인연
언제부터인가 수시로 드는 생각은,
인연.
시절인연.
인연은 있다.
인연은 정해져 있다.
지나간 시절 인연들이 머릿 속에 스쳐 지나갈 때면,
연인이든, 친구였든...
그때 그 시절에 내가 꼭 만났어야 할, 사람들이었다는 것.
어떤 방식으로든지 내게 무언가를 알려주기 위함이었을 거라는 것.
무언가를 깨닫게 해주기 위함이었을 거라는 것.
분명 나도 그들도 본연의 임무가 있었기에 만났고
또 그 임무가 끝났기 때문에 인연의 끈이 끊어졌다는 것.
이는 필연이라는 것.
갈수록, 작고 사소한 깨달음이 많아 질수록
인연이라는 것에 명료해진다.
마음껏 사랑하라.
소리내어 표현하라.
친절하고 존중하고 다정하라.
사랑하고 또 사랑하라.
곧 스러져 갈 것이니.
반드시 흐려져 갈 것이니.
그러니 충분히 사랑하라.
아쉬움 없도록.
슬프지 않도록.
서글프지 않도록.
쓸쓸하지 않도록.
연연하지 않아도 된다.
아쉬워하지 않아도 된다.
쓰라릴 것 없다.
만남이 있기에 헤어짐이 있다.
언젠가. 때가 되면 자연스레 멀어져가는 것.
인연의 법칙이다.
시절 인연의 이유.
너와 나의 인연이 그저 다한 것 뿐.
때가 된 것 뿐.
너와 나, 그 누구의 잘못이 아니란 걸.
분명 우린 만나기로 예정돼 있었다.
분명 우린 헤어지기로 예정돼 있었다.
서로의 성장을 위해 만났고 완벽하게 그 임무를 수행한 뒤 홀연히 사라지는 인연의 궤도다.
그렇게 만났고 그렇게 헤어졌다.
#광화문 산책
가을맞이겸 옷정리를 했다. 과감하게 버렸다. 아무리 봐도 색이랑 무늬는 이쁜데, 유니크한 디자인인데, 혹시 몰라, 앞으로 입을 지도 몰라, 버리기엔 아까워...이런 류의 계산은 안했다. 가을엔 도톰한 꽈배기 가디건을 사랑하는데, 다가온 선선한 계절이, 차가운 계절이 반갑다.
정확히 말하면 10월 초중반, 바짝 2-3주간 서늘과 선선과 쌀쌀 그 주간의 바람과 온도를 좋아한다.
그 계절엔 동료 혹은 친구와 함께 광화문역에서 덕수궁 돌담길을 지나 정동길과 신문로를 지나 다시 광화문역까지 이어지는 1-2바퀴 산책이 내겐 더할나위 없는 순간이자 퇴근길이었다.
#옛날 사람
추억은 방울방울 하는 사람.
휘황찬란함보단, 자연의 경치가 풍경이, 바람과 공기가 좋다.
옛날 사람이다 싶은 게, 여전히 광화문과 서촌과 북촌, 오래된 골목길을 걷는 걸 좋아하고 재래시장 바이브에 흠뻑 취한다.
오래된 정서와 바람과 공기와 온도와 사람에 취한다.
나이 들어가고 있어서일까.
부쩍 오랜 것들에 대하여. 옛날 정취에 대하여. 오래된 사람들에 대한 애정이 짙어진다.
나에게도 분명 주름이 완연하게 자욱한 날이 오겠지. 얼굴에 삶이 보이는 날이 분명 오겠지. 젊음이 너무도 그리워지는 날이 분명 오겠지. 마음만은 소녀라고 므흣 미소짓는 날이 오겠지.
글쓸 때도 최신의 기기들 가령, 아이패드나 맥북처럼 키보드의 높낮이가 평평하고 세련돼보이는 것보다 키보드가 둔탁하고 투박하고 키보드 마디의 높이가 높은, 손가락 끝이 훅 들어가는 옛날 노트북의 키보드가 좋다.
옛날 키보드는 마치 프랑스 어느 시골에서 갓 나온 투박한 깜빠뉴같달까.
둔탁함에서 오는 그 특유의 바이브가 있다. 손가락의 움직임도 호흡하는 것이라서, 살아 숨쉬는 것이라서.
내게 세련됨이란 실은 지극히 이런 것들이다.
옛날 사람. 내겐 그 무엇보다도 세련됨이고 미친 바이브다.
선호와 취향엔 높고 낮음이 없다.
옛날 사람인 건가.싶으면 옛날 사람이다.
옛날 사람.이란 단어가 이토록 다정할까. 이토록 따뜻할까.
옛날 사람엔 다정한 온도가 있다.
살가운 온도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