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운명을 사랑하기로 했다
지난 주 운동화를 샀다. 이미 충분한데도 운동화 1개를 추가한 건 순전히 마음에서 일어서다. 웬일인지 자꾸만 신발 하나가 사고 싶은 게 아닌가. 무턱대고 사는 편이 아니라서 분명 다 이유가 있겠지.싶었다. 내면의 소리겠지. 내 안의 소리겠지. 직관의 소리겠지.
마음에 드는 디자인이 있어서나, 찜해둔 것도 아닌데 무튼 직감대로 했다.
사러 가는 길에 직관적으로 알 수 있었다. "너 새롭고 싶구나. 기운을 변화시키고 싶구나. 새 신을 신고 어디가게? 네가 원하는 곳으로 가고 싶은 거지? 정말이지 무언가를, 네 환경을 변화시켜 보겠다는 거지? 새로 나아가겠다는 결심인거지?"
한 달째 선택과 결심의 순간에 놓인 채, 자꾸만 상황을 회피하고 싶은, 모른체 하고 싶은, 미루고 싶은 걸 제 자신도 알아차린 탓이다. 더는 미룰 수 없다고. 생각만 멍.하고 있을 시간에 뭐라도 하라고. 일단 하고 봐야한다는 강렬한 내면의 아우성이었다.
생각이 너무 많아 가엾은 인간.자칭 스스로가 이토록 이해되지 않을 때가 있다. 도저히 모르겠을 때가 있다. 딱 그 시기였다.
"새 신을 사야겠어! 도무지 모르겠는ㅡ 앞이 꽉 막혀 빠져나오지 못한채 까만밤 속에서 사경을 헤매는 기분일 때 새 신발을 사지 않으면 안되겠어..." 새 신발이 꼭 나를 새로운 세계로 데려다 줄 것만 같았다.
신발을 사서 나오는데 이토록 개운한 기분일 수가. 개운할 때 돈을 쓰는 것도 큰 효과가 있다. 돈도 기운이라 꽁꽁 쥐고만 있으면 기가 막혀 순환하지 않는다. 내 기분과 개운과 성장에 도움이 되는 데엔 돈을 써야한다. 새옷을 잘 사지 않는 편인데, 유행에 민감하지 않은 성미인데도 새옷으로 개운하고 싶다는, 리프레시하고 싶다는 기분이 불쑥 일때가 있다.
그럴 때면, 내가 볼 때 내 스스로에게 알맞는, 잘 어울리는, 예뻐 보이는 옷을 구매한다. 꽉 막힌 기분일 때 치장을 하는 건 정말이지 즉각적인 효과가 있다.
신발 1켤레로 개운했고 만족했고 웃었고 기분 좋았으면 그걸로 되었다. 새신과 함께 새마음이 일었다. 자리이타의 마음이어야하고 성장이어야하고 분명 내가 좋아하는 것이어야 할 것. 조급해하지 말고 일단 해보기로. 한 발자국 한 발자국 꾹꾹 눌러 나아갈 것.
지지난해부터 일년에 한 번은 꼭 이맘때 마치 열병을 호되게 앓는 사람처럼 우울해하고 아파하고 힘겨워하고 길을 잃는다. 한 두달은 그렇게 호되게 겪고 나서야 깨닫고 또 깨닫게 되는데, 두 해나 겪었다고 그래서인지 그 세기가 점점 약해진다. 이 또한 모두 지나갈 것임을 너무도 잘 알게 되어서다.
이런 내 모습을 자책하려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슨 일이 있어도, 어떤 일이 일어나도 나를 존중하고 사랑해야 할 의무가 있다. 이런 나도 인정하고 받아들일 줄 알아야 성장할 수 있다.
비에 젖은 낙엽이 내 앞에 떨어졌다. "어맛, 이것도 우연은 아니겠지." 어떤 뜻이 있지 않아도, 소소한 것이라도 사소한 것이라도 세상의 모든 것들은 날 질문하게 한다.
어떨 땐, "아직도 방황하는 거야? 이젠 좀 안정적일 때도 되지 않았을까?"할 때가 있다. 다 소용없는 말인 걸 알면서도 방황하고 싶지 않을 때도 있다. 방황은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건 방황을 대하는 태도였다.
지난 10년을 돌아보니, 특히나 심적으로 이토록 총체적 난국.일만큼 어느 한 시절도 마음이 한 곳에 딱 붙어있던 때가 없었다. 마음을 통제하려고 하면 할수록 더욱 멀어져만 갔다. 그 10년이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될 수 있었고 사색할 수 있었고 사유할 수 있었고 성장할 수 있었다. 그땐 괴로웠지만 지나보니 모든 것은 나로부터였고 그 시간을 체험하기 위해 여기에 온 것이 아닌가.하고 깨닫게 됐다.
지난 10년에 정말이지 감사하게 됐다. 그 시절을 잘 견딘, 나도 기특하다.
내 운명을 사랑하기로 했다.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어땠을까. 다른 삶을 살았을까? 괴롭지 않았을까? 모를 일이다.
내 운명을 사랑하기로 결심하자 감사함이 가장 먼저 내게로 다가왔다.
감사하니 모든 것이 아름다워보였다.
지금 이 순간이 살아졌다.
내 운명을 사랑하기 시작하자 힘들었던 지난 시절이 말랑말랑해졌다. 사소하지 않았다. 시시하지 않았다. 감사했고 지난 시절도 지금도 결국 다르지 않다. 하나라고 깨닫게 됐다.
그러니 그 어느 시점도, 순간도, 시절도 빛나지 않은 적이 없다는 걸.
늘 빛나고 있다는 걸.
내 운명은 내게 말해주고 있었다.
#시시한 시월 일일
집에선 주로 따뜻한 믹스 커피가 취향저격이다. 그 특유의 감성이랄까. 무튼 그런 낭만이 있다. 대학교 1학년 때 수업동 1층에 있던 자판기 커피 가격이 150원? 200원?이었던가.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1교시 아침 9시 전공수업 때면 꼭 한 잔을 뽑아 수업 들으며 홀짝홀짝 마셨더랬다. 그 한 모금이 얼마나 맛있던지. 믹스 커피 사랑은 그때부터였던 거다.
지점 근무 당시, 세콤하는 주엔 가장 먼저 출근해야했는데, 지점 문을 열고 캄캄한 안의 불을 착착 다 켜고 커피 머신 전원을 누르고 탕비실에서 믹스 커피 한 잔 타서 들고와 내 자리 컴퓨터를 켜고 이메일도 확인하고 오픈 준비하고 그렇게 나만의 소소한 일 루틴을 시작했었다. 점심 먹기 전 2잔 째 넘기는 것도 다반사였다. 플라세보 효과 혹은 각성효과 덕분인지 그렇게 믹스 커피 한 잔 마시고 나면 바짝 정신이 차려지는, 업무에 집중이 잘 되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쌩신입이 반포지점으로 발령받고 모든 업무가 생경하던 때, 이런 저런 배움과 호통사이. 속상하고 슬픈 마음을 달래려 탈의실에 들어가 몰래 흐느끼며 울던 그 시절의 나... 그때 참 아기였구나. 애였구나.싶다^^ 그러곤 눈물을 닦고 붉게 물든 눈동자 어떡하지.하며 거울로 한 번 스윽 매무새를 정리하고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 업무를 시작했던 그 때. 지금 생각해보면 추억이 됐고 아무것도 아닌 경험은 없었구나.싶다.
직장인 시절 믹스 커피 한 잔이 주는 위로는 실로 엄청난 것이었다. 지금도 커피 믹스를 탈 때면, 마실 때면 그 시절이 떠오른다. "참, 그때 그랬지. 그 시절이 그립기도 해..." 나만의 공적인 것 같으면서도 사적이기도 한 좁은 공간 그리고 간격, 책상, 의자, 은행 업무시 필요한 갖은 갖은 도장, 사무 도구들, 계수기... 아련한 그러나 생각하면 절로 미소짓게 되는 그런 류가 돼 버린지 오래.
믹스 커피를 타다 또 다시 그 시절 그 시절하고 있는 나를 보니, 옛날 사람인건가. 옛날 사람도 맞지 뭐. 옛날, 오래 된 것, 90년대, 2000년대 감성을 좋아하는 걸, 취향인 걸 어떡하나. 옛날 사람이라는 말도 내겐 이토록 록 낭만적이게 들린다.
지금도 어쩌다가라도 반포지점, 압구정 지점을 지나가기라도 하면 희한하리만치 지겨울만치 꺄악꺄악.한다. 눈물이 찔끔 날만큼 설명할 수 없는 요상한 감정이 인다. 광화문을 유독 사랑하는 것도 이런 이유가 아닐까.
맑은 날보다 이렇게 우중충하거나 비가 올락말락한 날씨, 비오는 날, 바람부는 날, 하늘이 짙은 회색잿빛같은 날, 땅과 공기 모두 축축한 날을 좋아한다. 아주 어릴적부터 비오는 날을 좋아했고 비오는 날을 반기던 어린 시절의 내가 정확하게 기억나는데, 그러고보면 나란 사람 실은 본래부터 좀 우울이 내재된 사람이 아닐까.싶다.
우울하다고 해서 부정적인 것은 아니니까. 우울이 내재된 게 어떨 땐 예민하리만치 예리하리만치 영민한 감수성이나 창작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결코 그 어떤 것도 잘못된 건 없다. 어떤 것도 문제는 없다. 모든 것은 하나다.
시월 일일.이라고 해서 별 다를 건 없다. 정말이지 여느 날이다. 이토록 시시한 시월 일일이라서 외려 내게 더 큰 안정감을 준다. 이 적막과 고요가 주는 평온함에 편안함에 잠이 솔솔 밀려온다.
이렇게 된 차제에 믹스 커피 한 잔이 무언가 아쉽다. 딱 한 잔만 더 타서 마시고 옷장을 활짝 열어야겠다. 니트와 가디건을 꺼내 이 계절을 맞이해야지. 살아지는 이 계절을 잘 나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