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과 밤의 사색 13

by Aarushi

#음양의 이치

글쓰고 책 읽고 사색하는 게 가장 즐거운 나는,

서른 중후반이 되어서야 비로소 내 삶에, 내 인생에 너그러워지게 되었다.

무심해지게 되었다.


음이 있으면 양이 있고 양이 있으면 음이 있다.

어둠이 있으면 밝음이 있고 밝음이 있으면 어둠이 있고,

낮이 있으면 밤이 있고 밤이 있으면 낮이 있고,

기쁨이 있으면 슬픔이 있고 슬픔이 있으면 기쁨이 있다.


모든 것은 동시에 존재하는 것이겠지.

그러니 일희일비 할 것 없다고.

삶에 나를 내맡겨 사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는 걸 깨닫게 되어서인지,

나의 무심함이 내 삶을 외려 더 자유롭게 한다.


그래서인지 언제부터인가 매 해, 한 해의 끝자락에,

내년엔 꼭 좋은 일만 일어나게 해주세요.라는 방식의 소망 내지 바람을 하지 않게 됐다.


평안하길. 평온하길. 성장하길...


#깊은 사람

나는 깊은 사람일까.

깊은 사람에게 매력을 느낀다.

호감이 있다.


깊은.이란 사람마도 다 다를진대,

내게 깊은 사람은

자신만의 순수가 있는 사람,

마음 따뜻한 사람,

인간미가 있는 사람,

사랑할 줄 아는 사람,

자기와 치열한 대화를 해본 사람,

질문해 본 사람.


그 모든 내연이 켭켭이 쌓여,

자신의 외연으로 무한하게 확장돼 빛이 나는 사람,

자신만의 분위기가 있는 사람.

눈빛이 맑은 사람.이다.


살고 있으니, 그냥 세상에 내맡겨 살아가면 된다.는 생각이 있다.

붙잡으려 놓으려 애쓰지도 말고 물 처럼,

흐르는 대로 흘러가는 것.


메이크업 하기 전, 얼굴팩을 올려놓곤

늘 그렇듯, 무심하게 사색을 통해

이런 방식으로 내 안의 나.를 만난다.


#황홀경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그리스인 조르바를 십여장 읽었다.

꽤 두껍다.

커피를 타 오곤 그리스인 조르바.책을 들었다.


커피를 내리며 한 시간 남짓 그리스인 조르바를 다시 읽어내려 갈 생각에

설렜다. 좋은 책은 늘 내게 이런류다.


날 가슴설레게 하는 것.

감동하게 하는 것.


어제 앞부분만 읽고선 느낌이 왔다.

이거 분명 몰입하며 휘리릭 읽게 되겠다!.

책을 읽다 말다 더 몰입하기 전에

니코스 카잔차키스가 궁금해졌다.

어떤 사람일까.

어떤 모습일까.

어떤 사람이길래 이렇게 깊고 유려한 문장들을 수놓을 수 있는 거지?


그러곤 책을 다시 읽어 내려갔다.

알렉시스 조르바가 자신을 소개하는 대목들에서,

나는 문득 왜 내 아버지가 떠올랐을까.


산투리를 연주하는 조르바가,

그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명징하게 와닿았다.

그러다 어떤 말들에선 정말이지 실소가 나오기도 했다.

공감하며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마치 그가 내 옆에서 말하는 듯 했다.

인간에 대한, 삶에 대한 그의 해석이 직설적이면서도

갖은 질문을 던지기에 충분했다.


이 책은 내게 무엇을 선물할까.

이 책을 덮고나면 나는 내 스스로에게 어떤 질문을 던질까.


명작을 읽는 즐거움이란,

환희다.


인간에 대한 경멸, 냉소, 자조, 모순.을 이야기하는

그의 말에 나는 한시도 눈을 뗄 수가 없다.

놓치고 싶지 않다.


자꾸 그리스인 조르바.가 날 부른다.


이 글을 쓰고 나면 나는 한 시간여 몰입하며 읽어내려 갈 것이다.


어서 조르바.를 만나러 가야지.

알렉시스 조르바를 사랑하게 될 것 같다.


짧을 단발머리를 용케도 질끈 묶었다.

머리를 질끈 묶는다는 건,

백팩을 메는 것처럼,

내겐 무언가를 야무지게 해보겠다.혹은

비장한 결심이 선 뒤다.


이틀째 그리스인 조르바.를 읽는데 푹 빠져있다.

오늘 이면 다 읽어내려가겠다.

천재성이란 이런 것이겠지?

읽는 내내 작가의 통찰에, 그걸 글로 표현해내는 마법에, 예술에

소스라치게 놀라는 경험을 하고 있다.


그리스인 조르바를 읽다 보스 양반이 언급한 T.S 앨리엇의 텅빈 인간.을 메모해 뒀다.

고전 읽을 때 작가가 글 속에 언급한 또 다른 책을 메모해뒀다 읽을 때가 있다.


책 읽다 이 작가가 언급한 책을 나도 한 번 읽어 봐야겠다. 읽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날 흥분시킨다.

왠지 그렇게하면 나도 그들처럼 소스라칠 정도의 지혜와 통찰을 가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상상 혹은 바람 때문일 것이다.


나는 이런 방식으로 어떻게해서든 내가 사랑하는 고전 작가들, 고전 철학자들과의 연결고리를 만들고 싶어한다.


오늘 오전, 겨울이란 계절의 본질에 속성에 결코 알맞지 않은, 어울리지 않은, 어색한 따스하디 따스한 날씨를 보며,

어제 그리스인 조르바를 읽다 밑줄 그어 놓은 문장 하나가 떠올랐다.

"날씨는 인간의 마음을 변화시킨다."


책의 마지막 페이지까지 얼마 남지 않은 그리스인 조르바.

마지막 장을 딱 덮었을 때, 나는 분명 어떤 질문 하나를 내게 던질 수 있을 것 같다.

인간, 영혼, 나, 자기 자신, 나 자신.


이런 순간들을 경험하다보면

어떨땐 황홀경,

어떨땐 그 모든 것이 아름다워 보이는,

인간과 우주가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설명하기 어려운 균형을 느낄 수 있다.


글쓰고 있는 지금 이 순간도 있는 그대로,

느끼고 받아들이고 수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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