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딸이었을까
외로움을 넘어 고독과 친구가 된 지 꽤 오래 되었다.
외로움과 고독은 순전히 다르다.
얼마 전 친한 언니와의 통화에서,
무슨 말 끝에 나는,
"나는 외롭진 않아. 외롭진 않은데 늘 고독하지."
고독이 편해졌고 그렇게 고독이란
나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그 무엇이 되어버렸다.
사람은 누구나 고독하지 않을까.
사람은 누구나 외롭지 않을까.
나만 그런 것이 아니다. 나만 힘든 것이 아니다.는 생각은
조금은 날 위로하는 부분이 있다.
몇 년 전,
제주사는 엄마가 바다 앞에서 내게 영상통화를 걸어왔다.
그때 내 마음이 아주 힘든 시절이었는데,
엄마도 혼자였다.
엄마는 밝은 모습으로 활짝ㅡ 환하게 웃는 얼굴로
"딸~ 초아야! 바다 보이니? 뭐하고 있었어?"
엄마는 바다를 딸에게 보여주고 싶었던 걸까.
아님 엄마 자신도 혼자인 그 시간, 엄마의 외로움과 고독을
딸에게 위로 받고 싶었던 건 아닐까.
엄마 생각이 갑자기 났다.
눈물과 동시에 엄마가 보고 싶다.
나는 엄마에게 좋은 딸이 아니었다.
제 멋대로의 이기적인 딸.로 인해 엄마는 얼마나 많은 상처를 받으셨을까.
얼마나 많은 눈물을 속으로 삼키셨을까.
나만 상처받은 것이 아닐텐데.
나는 늘 그렇게 나.만 힘들었고 나.만 상처받은
전혀 멋스럽지 않은 딸이었다.
올해는 엄마가 살고 있는 제주에서 엄마와 많은 시간을 보내고 싶다.
올 겨울엔 제주 바다를 엄마와 함께 볼 수 있기를.
곧잘 생각하곤 한다.
나는 과연 좋은 엄마가 될 수 있을까.
서른 후반. 언제라 한들 이젠 노산의 나이인데.
결혼을 한다면 아이를 낳아야 한다.는 생각은 있는데,
어떨 땐 아이는 선택일 수 있다.
나의 배우자와 이야기 나눌 일이다. 혹은
내 생엔 어쩌면 아이.가 없을 수도 있겠다.하는 그런 생각들이 이따금씩 일 때가 있다.
이런 마음도 있다.
언젠가 아이를 낳게 되면,
아이를 낳는 날,
나를 낳았을 우리 엄마.생각이 앞서지 않을까.
그때서야 우리 엄마 마음을 나는 이해하게 될까.
왜 지금은 알지 못하는 것일까.
나는 어른인 걸까.
나 자신 그리고 가족을 어떠한 마음 없이 무한히 사랑하고 싶은 바람이 있다.
내 엄마도 내 아빠도 모두 다 엄마가 아빠가 처음이었으리라.
엄마 아빠 이전에 여자였고 남자였고 누군가의 귀한 딸, 아들이었다.
한 개인이었고 한 소시민이었다.
갑자기 눈물이 내 앞을 가리는 건, 그런 부모님의 모습에서 나 자신을 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어떤 방식으로든
어떤 방향에서든
부모님은 널 사랑해.
너도 부모님을 사랑하잖아?
그러니까 잘하자. 후회하지 말자.
사랑이 살린다.는 괴테의 말은 큰 울림이 있다.
지금껏 살아보니,
정말이지 진짜는.
결국은.
"사랑"이었다.
#좋은 딸이었을까
이제 조금은 알 것 같다.
아빠의 뒷모습에서 그의 슬픔과 상처와, 외로움과 고독을 읽는다.
대학생 시절이었던가.
명절 할머니댁에서 체해 앓아 누웠던 적이 있다.
그날 아빠는 딸의 손과 발을 꽤 오랜 시간 주물러주며 내 곁을 지켜줬다.
그 기억이 선명하다.
그날 나는,
"아빠가 딸을, 날 진짜 사랑하는구나. 이게 부모 마음이구나."
를 느꼈었다.
나이 들어가며 좋은 점은,
부모님을 이해하게 된다는 것.
부모님의 마음을 아주 조금 깨닫게 된다는 것.
부모님의 삶과 내 삶의 간극을 조금씩 좁혀 나가게 된다는 것.
조건없는 사랑.이 무엇일지 아주 조금은 알 것 같다는 것.
부모님에 대한 사랑만큼은,
부모님에 대한 깨달음만큼은,
늦은 깨달음이 아니었으면 좋겠다.
그 깨달음은 이르면 이를수록 좋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