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영혼의 숨
곧잘 찾아보는 사진이 있다.
쇼펜하우어와 보들레르의 사진이다.
그들의 사진을 보고 있으면,
이목구비, 옷 이런 것이 전혀 들어오지 않는다. 게다가 흑백사진이다.
내게 보이는 건 오직
명징하고 선명한 그들의 눈.이다.
눈빛, 눈동자가 이토록 명징하게 사람을 홀릴 수 있을까.정도의 설명할 수 없는 아우라. 분위기. 카리스마다.
압도적이다. 그럴 수 있는 건, 사색으로 점철된 앎, 통찰 때문이 아닐까.
닮고 싶은 눈이다. 그들의 눈에게서 나는 빛을 본다.
얼마나 영혼이 맑아야, 순수해야 저런 눈을 가질 수 있을까.
질문하게 한다.
파리의 우울을 읽다,
보들레르의 사진을 한동안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눈맞춤했다는 설명이 적확한데,
보들레르와의 눈맞춤에서 나는 무엇을 기대한걸까. 기대했을까.
어느순간부터 사람을 볼 때,
외모, 이목구비, 예쁜지 아닌지, 잘생겼는지 아닌지, 옷이라든지, 직업이라든지, 이런 것들이 소외되기 시작했다.
그렇다고해서 외모가 외면이 중요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는 점은 분명하다. 내면만큼이나 외면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있다. 내게 외면이란 단지 물질적인 것으로 치장되거나 둘러싸인 외면이 아니라, 분위기, 아우라.의 것이다.
그 사람이 가진 생각, 스토리, 메시지, 취향, 태도, 상냥함, 목소리, 말투...
이런 것들에 집중하게 되었다.
어느 시점부터 그리 되었다.
그러다보니,
사람의 눈.에서, 눈빛에, 눈동자의 맑음에 호감이 간다.
눈빛이 맑고 빛나는 사람은, 그 사람의 내면이 맑고 순수할 것이라는 믿음이 있다.
눈을 통해 그 사람의 영혼을 본다.
눈동자를 통해 그 사람의 순수를 본다.
눈빛을 통해 그 사람 내면의 빛을 본다.
보들레르의 선명한, 명징한, 강렬한 눈빛.은 그가 가진 내면의 힘.일 것이다.
어떤 수준이어야지, 어떤 정도의 내면의 깊이어야 보들레르와 쇼펜하우어의 눈빛을 가질 수 있는 걸까.
어려운 일이란 걸 알면서도 그들처럼 단단하고 굳은 사람이 되고 싶다.
거울에 비친 내 얼굴을 봤다.
다행히도 낯빛이 환하다.
눈동자를 보고선 내 눈과 거울 사이의 간격을
앞으로 갔다 뒤로 갔다 하며 어느 정도의 거리감을 유지하면서
내 눈빛의 안녕을 살폈다.
이목구비가 예쁘고 아름답고 화려하면 그 또한 아름다운 복일 수 있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경우, 정확하고 단순한 미.보다는, 평범해도 뛰어난 미인은 아니어도 내가 가진 매력.으로 나만의 분위기. 아우라로 나를 표현하는 사람이길 바란다.
나이들어서일까.
무튼 조촐하게 그렇지만 매력적이면서 어느 것하나 섹시하지 않은 신선한 영혼으로 존재하고 싶다.
그런 의미에서,
내 눈은 나라는 우주다.
나의 세계임이 틀림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