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과 밤의 사색 29

by Aarushi

#내면을 살찌우는 밤

족욕을 하고 있던 중 벨이 울린다. "뭐하고 있니~? 말차 바스크 치즈 케이크 했어. 다같이 먹게 어서와~!" 가까이 사는 언니의 전화였다. 꺄악. 족욕한 지 십분도 채 되지 않았으나, 지금 내게 중요한 건 뭐다?^^ 바스크 치즈 케이크다. 이러면서 후딱 족욕기에서 발을 뺐다.


필명을 치즈 케이크라고 지을까.했을만큼 가장 좋아하는 것 중 하나가 뉴욕 치즈 케이크, 바스크 치즈 케이크다. 치즈, 크림치즈가 들어간 것이면 무엇이든 환장한다. 김밥에도 치즈나 크림치즈를 듬뿍 넣어 먹을 만큼 치즈가 맛있다. 실은 요리할 때, 레시피가 대중 없고 늘 즉흥적이거나 순간순간 떠오르는 재료들의 조합을 즉석으로 재현해내는 타입이라 내 요리를 맛 본 주변 사람들은 처음 먹어보는 맛이다, 이국적인 맛이다.라고들 한다.


그래서 내가 요리한다.하면 분명 특색있을 거라, 보통의 재료들의 조합은 아닐 거라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오전에 삶아놓은 고구마도 챙겼고 가는 길에 장봐서 김밥을 싸야겠다.싶었다. 도착해보니 말차 바스크 치즈 케이크와 얼그레이 바스크 치즈 케이크 두 개가 영롱하게 냉장실에 있었다. 언니의 시그니처는 말차와 얼그레이 바스크 치즈 케이크 2종 그리고 얼그레이 스콘인데... 적당히 단데 참 맛있다.


장까지 봐와 김밥을 말겠다고 하니, 언니와 형부는, "이번엔 어떤 김밥일까? 늘 퓨전이잖아~!"했다. 김밥을 돌돌 말면서도 김밥마는 날 알아차린다. "나 지금 김밥 말고 있네? 김밥 말고 있구나..." 사특한 생각이 비집고 들어올 자리가 없다.


집에서 삶아온 고구마는 맛탕으로 만들었다. 확실히 날 위한 요리보다 타인을 위한 요리일 때, 더 큰 만족과 행복이 있다. 손이 큰 편이라 한 번 하면 많이 해야 한다. 부족한 것 보다 조금 남는 편이 좋다. 남는 건 또 다음에 곧장 먹으면 될테니까.


남은 음식을 훅 버리는데 익숙한 편이 아니다. 다음 한 끼에 먹으면 되니까.하는 생각이 있다. 가족들이 맛있게 먹으니 넉넉한 마음에 오늘 하루가 시시하지 않았다. 심심하지 않았다. 나약하지 않았다.


확실히 난, 요리할 때 가장 즐거워한다. 행복해한다. 요리는 내게 사랑이기 때문인데, 사랑을 나누고 전하는데 진심이고 실재하고 즉각적이고 직관적인 데에 요리만한 게 없다. 요리는 내게 가장 손쉬우면서도 그러나 결코 가볍지 않은 확실한 사랑의 방법 중 하나다.


그래서 특히나 사랑할 때면, 요리에 손을 놓지 않는 편이다. 내가 이 사람을 사랑하고 있구나.싶을 때도 계속해서 요리해주고 싶을 때, 그가 좋아하는 음식을 해주고 싶을 때, 그가 힘들지 않았으면 할 때, 그가 편안했으면 할 때... 내게 요리와 사랑은 하나다. 이토록 직접적일 수가 없는 것이다.


소화도 시킬겸 저녁 산책을 했다. 언니와 종종 이런 방식으로 산책하곤 하는데ㅡ 가로수 조명 아래 바라본 어두컴컴한 텅빈 하늘엔 초승달이 환하게 비추고 있었다. "신비로와... 모든게. 하늘은 텅 비어있잖아. 텅비었는데 텅비지 않음..."


가볍게 삼십분만 걷다 집에 가겠다고 나선 산책은 이야기하다보니 한 시간이 됐다. 그러고선 딱 한 바퀴만 더 돌자.하면서도 이야기가 계속 이어져 어느 순간 한 바퀴 더 돌자.는 말이 쏙 들어갔다. 중간에 벤치에도 앉았다가 그렇게 언니와 나는 사는 얘기, 인간 관계... 정말이지 보통의 나날들, 찰나의 삶에 대해 이야기하느라 시간가는 줄 몰랐다. 차가운 가을 밤도 두 시간이 넘는 우리의 산책을 방해할 수 없었다.


언니도 나도 무엇이 그리 할말이 많았을까? 무엇이 우리를 하나되게 했을까? 나는 위로받았고 경청했고 또 다시 위로 받았다. 경청하고 있는 나를 알아차린다. 대화하고 있는 나를 알아차린다. 담백한 대화는 실은 구구절절한 말이 필요없다. 구구절절하지 않아도 되는 사이, 대화는 꽤 큰 위로와 공감과 안정과 편안함을 가져다준다. 정직하고 다정하고 존중하는 대화는 내면을 살찌운다.


구구절절하고 설명할 것이 많다는 건 실은 무언가를 지나치게 의식하고 있거나, 판단하고 있거나 자신의 감정이나 태도를 인정하지 않고 있거나 받아들이지 않고 있거나 저항하고 있다는 방증이자 나 자신에게 조차 솔직하지 못하고 있는 상태란 걸 깨닫게 됐다.


무튼 나이 들어갈수록 화려한 미사여구보단, 아는체 하는 것보단 간결하면서도 담백한 언어들이 매력적이다. 어릴적보다 나이든 지금 사용하는 언어들이 훨씬 담백하고 솔직하고 투박하달까. 무언가 있어보이거나, 체하는 것보다 진짜 멋은 진짜 멋짐은 절로 드러남이란 걸 깨닫게 돼서겠지. 나의 언어도 나란 사람도 갈수록 담백했으면 한다.


슬슬 추위가 밀려올 때쯤, 이번엔 진짜 그네만 타고 헤어지기로 했다. "조급해 하지마. 시간을 좀 더 두라는 거겠지. 다 이유가 있을거야." 그네 위에서 건넨 언니의 말 한마디가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내내 구름 위에 앉아 절로 둥둥 구름타듯 날 편안하게 했다. 힘들지 않게 했다.


이토록 다정한 밤이었다.

이토록 달콤한 밤이었다.

외롭지 않았다.


#섹시함에 대하여

섹시함이란, 고도의 기술이자 현현한 드러남이다.

말하지 않아도, 드러내려 노력하지 않아도 절로 드러나고야 마는 직관적인 기운, 아우라, 분위기다.


섹시함은 총체적인 기운이다.

귀함이다.


외모, 목소리, 말투, 그 사람만의 언어, 태도, 기운, 눈빛이 곧 섹시다.

내면은 외면으로 드러나고 외면은 내면의 발현이다.

눈동자가 맑고 눈빛이 촉촉하나 영롱하게 빛난다.

내면의 순수다.


#진지함

진지한 사람이 좋다.

진지하기만 한 사람도 재미없다.


본래 진지한데 웃긴 사람이면 매력적이다.

진지함과 유머는 실은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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