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 필요한 질문
샹티이 고성으로 향하는 길목에서 잠시 발걸음을 멈췄다. 1월 어느 날 마치 꿈꾸고 있는 듯한, 넷플릭스 영화 속 여주인공이 된 듯한. 그곳엔 덩그러니 나 혼자만 있었다. 이 경험, 살면서 또 할 수 있을까? 결코 자주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내겐 필연이었고 세상이 내게 주는 선물이었다.
결코 의도한 건 아니었지만, 샹티이 고성을 찾은 날 유난히 어둡고 스산하고 바람이 거세게 몰아치는 날이었다. 추웠고 축축했고 바람이 거세게 몰아칠 땐 공포스러웠다. 그럼에도 나는 기어코 샹티이 고성 그 길을 묵묵하게 씩씩하게 걷고야 말았는데, 여기까지 왔으니 돌아갈 순 없는 노릇이었고 또 기어코 샹티이 고성을 가야겠다는 내 나름의 고집도 있었다.
여행할 때 구글맵 하나로 해결하는 편이라, 구글맵 하나만 켜고 그렇게 샹티이 고성을 찾아갔다. 내 여행은 늘 그렇듯 목적지보다 그곳으로 향하는 길이, 그 과정이 더욱 생생하게 기억에 남는다는 건데, 성향이기도 하겠고 스스로를 방랑자.라 생각해서기도 하겠다. 정한 목적지가 결코 목적지가 아니란 걸 알면서 떠나는 나는 그런 류의 방랑자다.
얼마 전, TV채널을 돌리다 샹티이 고성을 소개하는 장면이 나왔다. 그때의 기억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가는 길에 큰 경마장이 하나 있었는데, 분명 거기였다. 스산한 날, 그것도 한겨울이었던 때, 모든 것이 멈춰버린 듯한 풍경이었는데 이런 곳이었구나. 내겐 굉장히 스산하고 어두웠던 기억. 자연이 내게 거센 바람을 불어대던 그곳이 이런 곳이었다니. 그저 생경하면서도 낯설면서도 인생, 삶, 여행, 여정, 나...로 귀결되는 통찰 앞에 절로 숙연해졌다.
바람을 뚫고서 지나는 길을 찍어뒀다. 꼭 찍어놓고 싶었다. 나의 방황을 기억할 수 있게. 나의 지난 시절을 기억할 수 있게. 그때의 나를 잊지 않기 위해서였겠다. 지금도 이따금씩, 두고두고 꺼내볼 때가 있는데 찍어두길 잘했다. 그 시절도 분명 순간순간이었을 것이다. 그 시절을 붙잡고 싶은 마음보단, 그 시절의 나를 통해 좀 더 분명하게 명징하게 지금의 나.를 보게 될 때가 있는데, 꼭 그런 마음이었을 것이다.
비가 올듯말듯 다소 스산한 오늘 오후 공기와 풍경 앞에 샹티이 고성을 떠올린 건 어쩌면 당연한 것이다. 그러고보면 하나에서 하나로 이곳에서 저곳으로. 실은 모든 것은 하나.라는 것. 모든 것은 연결돼 있다.는 걸 이런 방식으로도 직접적으로 느낄 수 있다.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는 데 동의하는데, 그렇게 생각하면 많은 면이 직관적으로 이해되고 많은 것에서 자유로워지곤 한다.
과거, 현재, 미래ㅡ 연속성이 아니다. 시공간의 확장성이 존재할 뿐. 찰나. 이 순간만이 존재할 뿐이다. 이 순간.도 실은 언어로만 표현하기 부족한 보이지 않는 그 너머의 무언가다. 직관적인 앎일 수밖에.
서른부터 시작됐을까. 실은 그 전부터였다. 모든 게 꼭 꿈 같다는 건 진실이다. 롤러코스터 같던 내 삶, 결국 내 생각이 만들어낸 것인데, 나는 왜 그토록 끌려가는 삶을 살았을까? 왜 그토록 진짜 내 삶을 살지 못했을까? 안타까움이 크다. 왜 나 자신과 마주하지 않았을까? 정말 몰랐을까? 아니면 피했던 걸까?... 다 부질없는 걸 알면서도 지난 시절에 대한 안타까움과 아쉬움으로 호되게 나 자신을 몰아세울 때가 있다.
어느 것이든 나 자신에게 던지는 질문은 옳다.는 생각이 있다. 단, 질문에도 질이 있다. 질문에 있어서 양.보단 질.에 집중한다. 많은 질문을 한다고 해서 내 삶이 달라지지 않는다. 많은 질문을 한다고 해서 내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결국 지금 이 시점에, 내게 진짜 필요한 질문, 꼭 필요한 질문을 해야한다는 것. 꼭 필요한 질문을 할 줄 안다는 것!이 삶을 변화시킬 수 있다.
꼭 필요한 질문이란 내게 제대로 된 질문을 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주말 내, 내 스스로 우울이란 동굴에 갇혔던 건, 제대로 된 질문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어떤 이유에서든 제대로 된 질문을 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꼭 필요한 질문을 던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여유가.없는 게 두렵다. 여유를 잃어버리는 걸 경계한다. 최근 몇 주 새, 여유를 잃어버린 나를 알아차린다. 여유가 없으니 무얼해도 흥이 나지 않는다. 몸이 자꾸 기어들어간다. 무언가를 시작할 용기가 나지 않는다. 분명 다 지나갈 것을. 나는 왜 또 이러고 있는가. 또 이렇게 흘러버릴텐가. 아니될 일!!. 머리카락이 쭈뼜 선다.
잃어버린 여유를 되찾으려면, 회복하려면, 꼭 필요한 질문을 해야 한다. 바른 질문이면 바른 길이 나오게 되어있다.